더 이상 사라지는 아이들 없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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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 어린이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국가의 책무

더 이상 사라지는 아이들 없게 하자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4-14 00:02:40

‘버큰헤이드 전통’이란 게 있다. 배가 침몰할 상황이 되면 여성과 어린아이를 먼저 구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1852년 2월 영국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앞바다에 침몰하면서 생겨났다. 당시 승객은 600명이 넘었지만 구명보트는 세 척밖에 없었다. 선장 지시로 구명보트엔 여성과 아이들을 태웠고 나머지 승객은 모두 사망했다. 이때부터 위급 시 여성과 어린아이를 먼저 구하는 것은 ‘불문율’이 됐다.

요즘같이 남녀 간 갈등이 사회적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여성부터 구하는 것은 역차별이란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여성과 달리, 어린아이 먼저 보살피고 구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이론이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아이부터 먼저 챙기는 게 이미 관례가 된 지 오래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깔려 있어서다.

아이들이 최우선 순위(Child-First)인 경우는 스쿨버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에선 스쿨버스가 잠시 멈춰 있을 땐 뒤따라오던 차들은 앞지르기를 못 한다. 미국에선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까지 예외 없이 멈춘다. 스쿨버스가 출발해야 다른 차들의 주행도 가능하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이를 어기면 면허 정지나 벌금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한민국이 저출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위권인 일본(1.33명)이나 그리스(1.28명)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정부는 최근 출산율을 높이겠다며 세 자녀 이상 가정에 주어지던 다자녀 혜택을 두 자녀 가정으로 확대했다. 2030 청년세대가 중심이 돼 저출산 대책을 발굴하겠다며 ‘청출어람단’도 출범했다.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에 못지않게 지금 있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자라도록 보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아이들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충분하다고 느껴야 젊은이들도 아이를 낳으려는 마음이 생기질 않겠는가.

당장 국가가 챙겨야 할 아이들이 바로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이다. 한쪽에선 아이들이 부족하다고 난리면서 다른 한쪽에선 여전히 해외 입양아들이 생겨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국내·외 입양 현황’을 보면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이 3673명이나 됐다. 아이들 대부분은 미국과 캐나다·호주·덴마크 등으로 입양됐다. 숫자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6·25 전쟁통에서나 있었을 법한 일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아이를 버린 부모도 문제지만, 미래의 인력자원 유출을 눈뜨고 방치하고 있는 국가 또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종 사건·사고로 해마다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것도 부모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단적인 예가 음주운전으로 인한 어린이 사망사고다. 이달 초에는 대전에서 60대 만취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으로 돌진해 초등생 4명이 차에 치여 배승아 양이 끝내 숨졌다. 2020년부터 ‘민식이법’이 시행 중이지만 음주운전으로 인한 아이들의 참담한 희생은 끊이질 않고 있다.

학대가 원인이 된 아이들의 사망도 잊힐 만하면 한 번씩 언론을 도배한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멍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돼 계모와 친부가 경찰에 구속됐다. 또 며칠 동안 음식물이 공급되지 않고 집에 홀로 남겨진 2살 남자아이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아이들이 한 해 평균 40명 안팎이고 드러나지 않은 죽음은 4배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이들을 상대로 한 악행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법과 처벌이 약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 더욱 촘촘한 감시망을 만들어야 하고, 경찰 단속인력이 부족하다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포상하는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 또한 고의성이 다분한 살인 행위로 규정하고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 양육은 부모 책임이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부모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이들 모두 대한민국의 소중한 아들딸이자 국가의 미래 자산이다.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 국가는 보조역할만 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5월5일 어린이날이다. 올해는 특히 어린이날이 생긴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날 청와대 뜰에선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시끌벅적하게 열리고 일선 기관들도 여러 이벤트를 벌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 행사로만 그쳐선 안 될 일이다. 우리의 아들딸에 대한 국가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지금 있는 아이들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국가가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