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석칼럼] 가상화폐에 정신 팔린 국회의원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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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석 편집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5-19 00:02:40

고위공직자를 비롯해 국회의원의 가상화폐(가상자산) 보유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는 물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사회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최근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6개 단체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남국 코인 사태를 두고 고위공직자의 재산신고 등록 목록에 보유 중인 가상자산이 누락돼 온 것을 지적하며 현행 공직자윤리법을 뜯어고쳐 이제는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암호화폐는 더 이상 가상(假想)이 아닌 실생활에서 거래 지불화폐로 통용된 지 오래다. 일부 편의점에선 암호화폐로 물건을 살 수 있다. 또 게임사들이 만들어 놓은 메타버스 공간뿐만 아니라 쇼핑몰 운영자가 자체적으로 발행한 암호화폐를 지불 수단으로 인정하는 등 그 지불 영역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통화수단으로 점차 확장돼 가는 추세다.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암호화폐는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로 얼마든지 환전가능한 돈(money)이다.

가상자산거래소에는 증권사들의 모바일 매매 창에 오르내리는 주식처럼 암호화폐가 거래소 자체 심의를 거쳐 상장돼 있다. 이러한 수백 종의 코인과 NFT(대체불가능한토큰)로 분류된 암호화폐들은 주식을 매매하는 방식으로 현금 출납 계좌를 만들어 놓고 거래되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의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한때 천정부지로 오를 때 1코인 당 10만 달러를 호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 테라&루나 사태 이후 미국 가상자산거래소들의 연이은 부실 운영으로 다소 가격이 주저앉았지만 여전히 2만 달러 후반과 3만 달러 초반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종류와 가격대는 코인과 토큰별로 천차만별이고 단가가 한화로 몇십 원부터 몇천 만 원에 이른다.

‘김남국 코인 사태’의 본질은 그가 어떤 종류의 코인에 얼마를 투자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중 본분을 망각했다는 데 있다. 초선의원인 그가 자신의 지역구인 안산 단원에선 주민들과 악수하고 해맑게 웃으며 지역 발전을 위한 의지를 다지고 기대를 한 몸에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당내 계파 간 이전투구를 떠나 의정활동과 지역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한 초선의원의 시간이 자기 자산의 증식을 위한 코인 투자에 집중되었으니 정신이 홀딱 팔린 상태였다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코인 거래는 주식거래와 성격이 좀 다르다.

공휴일을 빼고 오전 9시에 개장해서 오후 3시반 경이면 폐장하는 일반 주식시장도 단기매매라면 거래창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리게 만들 지경인데 하물며 공휴일 없이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가상자산거래소에 꽂아둔 그의 눈은 오죽했을까. 코인 투자에 넣은 돈이 한두 푼이 아니고 억 단위 이상이었다면 거래창을 들여다보는 것에 시종일관 밤낮이 없었다는 얘기다.

우리 국민은 한심하게도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 이런 수준의 정치인을 또다시 마주하고 있다. 국회에서 지역과 나라를, 민생과 나라 살림살이를 잘 챙겨 달라며 신뢰와 응원을 받았을 그의 정치적 주가가 이제 한 톨도 건질 게 없는 휴지 조각이 되어 바닥을 뚫고 폭락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남국 코인 사태의 파장은 크고 넓게 서서히 국회의원 회관에 앉아 있는 고위공직자들에게 옮겨붙을 공산도 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이 재산신고 목록 밑에 꽁꽁 숨겨 놨을 비자금이 백일하에 드러나기를, 김남국 코인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국회의원들의 가상자산 지갑까지 탈탈 털리길 바라 본다.

이번에 국민 여론이 요구하는 대로 암호화폐의 취득원가로 등록하든 보유 현황이든 간에 여의도1번지로 출근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신고 내역 항목에 추가하는 것부터 뜯어고칠 법 개정은 반드시 처리해 주길 바란다. 국민이 느낄 자괴감과 박탈감을 해소해 주는 것이 정치인이 해야 할 도리라는 걸 이해하고 있다면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돈 봉투 전당대회 사건이 터진 뒤로 국민이 체감하는 배신감과 실망감은 채 가라앉지도 않았다. 정치 인생 내내 금권선거 몰아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하에서 울고 계실 것이다. 김 의원이 코인 사태로 탈당하는 건 무슨 행태인가. 탈당만 하면 민주당 일원으로서, 이재명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서 저질렀던 과오가 곧바로 지워지는 것인가.

국민적 지지를 먹고 사는 정당 정치는 최소한 낯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뒤돌아서서 비겁하게 아등바등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도대체 민생 챙길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돈 벌려고 국회의원 하고 당 대표 되려는 것인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당(黨)으로 전락했다는 세간의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다.

덧붙이자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들에게 주어진 입법권을 자기방어용이나 편의 수단으로 부디 이용하지 않기를, 한 명 한 명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꼭 인지하기를. 총선이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고동석 편집국장 kd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