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백낙청, 그는 가문을 배신한 남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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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는 자유우파 출판사·서점, 서울 명동에 차려
그걸 본뜬 창비는 좌익 상업주의로 지식사회 망쳐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11 06:31:30

지난주엔 몰락한 서울백병원의 백씨 가문을 둘러싼 궁금증을 짚어 봤다. 핵심은 해방 이후 반공에 충실했던 이북인 평북 정주 출신 명문가에서 등장한 백낙청은 돌연변이란 점이다. 더구나 1938년생 백낙청은 지금껏 좌익 진영의 숨은 실력자다. 20대 나이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뒤 계간지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그는 6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붉은 마왕’이다.

실제로 그는 좌파 시민사회를 총괄하는 원탁회의의 좌장이며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한다. 한물 간 노인네 한 명을 좀 과대평가하는 게 아닐까 싶겠지만 전혀 안 그렇다. 당장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 그의 무시무시한 정치적 목표다. 내년 총선에서 야권 연대라는 망국적 주문을 다시 외우는 것이 그의 숨겨진 꿈이다.

그렇게 해서 통진당 이석기 등 반국가 세력을 여의도에 다수 진입시키고, 민주당을 명실상부한 ‘붉은 정당’으로 완전 탈바꿈시키려는 전략이다. 백낙청식의 용어로는 그게 분단체제를 끝내고 연방제를 실현하려는 “대변혁이자 민족사적 과업”(백낙청 지음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서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몽상을 품어 온 백낙청에 대한 궁금증을 실은 생전의 파트너 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 저자)도 품고 있었다.

“나처럼 힘겹게 살아온 사람의 눈에는 (1960년대 시절) 처음 만난 그 편집인(백낙청)은 귀공자풍의 백면서생이요,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대표적 부르주아 계층에다, 내가 조금은 경멸하고 많이는 부정하는 소위 미국 대학 출신이라! 그의 집안 내력과 현재 상황 또한 그가 굳이 그런 깃발(‘창작과비평’ 창간을 말함)을 들고 나설 아무런 이유가 없는 터였다.”

실은 리영희도 몰랐던 게 백낙청의 선대(先代)는 의료업뿐만 아니라 문화사업에서도 선봉에 섰던 대한민국 원조 출판인의 하나란 점이다. 즉 백낙청 큰아버지 백인제·아버지 백붕제 두 형제는 의기투합해 해방 직후 서울 명동 한복판에 출판사·서점을 동시에 운영했다. 그러고는 자유우파 서적만 줄기차게 찍어 냈다. 좌익서적이 80% 이상이던 시절에 그건 이례적인 선택이고 용기 있는 행위였다.

두 형제의 문화사업에 대한 의지는 창비식의 좌익 상업주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스토리는 이렇다. 백인제·백붕제 형제가 기존의 백외과를 재단법인 백병원으로 한 단계 발전시킨 1947년 그해에 출판사 수선사(首善社)를 차렸다. 그 스토리는 4년 전 필자가 쓴 단행본 ‘좌파문화권력 3인방’에서 상세히 다뤘지만, 새삼 재음미해 볼 만하다.

백인제는 자신이 출판사 대표로 있으면서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에게 편집 책임을 맡겼다. 출판사 바로 옆에는 수선서림이라는 서점까지 차려 동생에게 운영을 맡김으로써 출판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수선사에서 펴낸 책 목록이 경이롭다. 그 어수선했던 시절 6·25 직전까지 3년 동안 펴냈던 20권 가까운 문학·교양서 목록엔 단 한 권의 좌익서적이 없다.

수선사의 첫 책이 ‘서재필 박사 자서전’인데, 당시 “자유주의의 교과서”라고 대대적으로 신문에 광고했다. 서재필 박사는 당시 미군정의 초청으로 귀국해서 과도정부 최고정무관으로 있었는데, 그를 새 나라의 지도자로 옹립하려던 게 두 형제의 구상이기도 했다. 실제로 창비에서 1999년 펴낸 단행본 ‘선각자 백인제’는 수선사 책 목록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유관순전’(전영택 지음), ‘조선신문학 사조사’(백철 지음), ‘현대 영시선’(양주동 옮김), ‘만세전’(염상섭), ‘황토기’(김동리), ‘철학 개론’(에루잘렘 지음), ‘조선민요 연구’(고정옥 지음) 등. 즉 이태준·김기림·임화 등 좌익 계열 작가가 쓴 것은 단 한 권도 찾아볼 수 없으며, 전체가 순수문학 일색이다. 백인제가 제헌의원 선거에서 중구에 출마했던 배경도 실은 그것이다.

당시 백붕제는 캠프 사무장으로 뛰었고, 조카 백낙환은 선거운동원 노릇을 했다.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의 성공과 함께 반공을 몸에 익힌 것이 바로 백씨 집안이었다. 그뿐인가? 백인제의 경우 평안도 출신의 도산 안창호·춘원 이광수 등과 두루 교유했다. 우리의 중간 결론은 명쾌하다. 백낙청은 그런 자신의 집안을 배신한 사람이 맞다. 백 번, 천 번 그렇다. 그래서 그 배경이 더욱 궁금하다.

그가 출판사 창비를 차린 것은 큰아버지와 아버지의 수선사를 본뜬 것이 맞다. 단 선대와 다르게 집요할 정도로 좌익 상업주의에 매달려 왔고, 그 결과 대한민국 지식사회와 문화계 전체를 오염 내지 파괴시켰다. 그게 미스터리다. 지금도 새삼 궁금하다. ‘붉은 마왕’ 백낙청의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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