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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178] 도미 부인 ③
천지신명이시여, 악행을 일삼는 포악한 왕을 벌해 주소서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27 06:30:10
 
 
백제의 도성 인근 벽촌에 도미(都彌)라는 사내가 살았다. 시골의 필부였지만 성품이 고결하고 약속을 천금처럼 여겼기에 뭇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천하의 절색이라 할 만큼 아름다웠으며 행실이 바르고 지조가 있어 주변의 본보기가 됐다.
도미 부부에 대한 소문은 방방곡곡으로 퍼져 개로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국왕은 무엇보다도 도미의 부인이 절색이라는 말에 관심이 생겼다.
국왕의 심중을 꿰뚫어 본 시위 맹흠은 은근히 권했다.
도미 부인이 제아무리 절개가 곧다고 해도 감히 왕명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여염집의 부녀자를 함부로 취할 수 있겠느냐.”
개로왕이 망설이자 맹흠은 간사한 웃음을 흘렸다.
계책을 써서 취하시면 됩니다. 도미라는 자는 한번 내뱉은 말에 꼭 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이 점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개로왕은 시위의 말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일만 성사된다면 너에게 많은 상금을 내리마.”
왕은 도미에게 입궐하라는 명을 내렸다.
도미는 왕명을 받고 도성으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도미의 부인은 마음이 불안했다.
아무래도 안 좋은 일이 생길 듯합니다. 가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백성으로 어찌 임금님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소.”
도미는 웃으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인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도미가 입궐하자 개로왕은 넌지시 말했다.
네 명성은 익히 들었다. 말한 것은 꼭 지킨다 하더구나. 네가 이 나라의 백성인 게 자랑스럽다. 짐의 홍복(洪福)이 아닐 수 없도다.”
국왕이 다정하게 대했기에 도미는 마음을 놓았다.
곧이어 주안상이 들어왔다. 개로왕은 도미에게 연신 술을 권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개로왕은 은근슬쩍 마음에 품고 있던 얘기를 꺼냈다.
무릇 아낙네가 갖춰야 할 덕 중 제일은 정결이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좋은 말로 꾀면 넘어오지 않을 여인은 없을 것이다.”
도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신의 아내 같은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짐이 네 부인의 절개가 굳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다만 왕명으로 은근히 권하면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자신이 있다면 내기를 해 보겠느냐?”
자꾸 술을 권하는 통에 잔뜩 취한 도미는 아무런 생각 없이 대답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 아내 마음은 변치 않을 겁니다.”
개로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못을 박았다.
그렇다면 내기를 받아들인 걸로 알겠다.”
도미는 순간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왕 앞에서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개로왕은 도미를 처소로 물러가 있게 한 후에 맹흠을 도미의 집으로 보내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부인은 기다리던 남편의 소식 대신 왕이 행차한다는 전갈을 받고 일이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자 개로왕이 근신들과 함께 도미의 집에 이르렀다. 도미의 부인은 황망히 엎드려 왕의 행차를 맞았다.
개로왕이 부인을 보니 한 떨기 수국(水菊)처럼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과연 천하의 절색이라 불릴 만했다.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도미 부인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짐은 오래전부터 네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속으로 흠모해 왔다. 그런데 마침 입궐한 네 남편과 환담을 하다 보니 바둑으로는 자기를 이길 자가 없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너를 걸고 내기 바둑을 두었는데 짐이 이겼다. 이제부터 너는 짐의 소유다. 오늘은 함께 밤을 보내고 내일 날이 밝으면 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개로왕이 흉악한 속내를 드러냈다. 도미 부인은 자신이 솔개의 날카로운 발톱 아래 놓인 병아리 신세임을 알아챘다. 그녀는 당장 달아나고 싶었지만 왕의 호위 무사들이 물샐틈없이 집을 에워싸고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도미 부인은 정신을 가다듬고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로왕은 넌지시 부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도미 부인은 마음을 다잡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한다.
임금 앞에서 어찌 허언(虛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아비가 폐하께 약속을 했다면 저 역시 따라야겠지요. 먼저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귀한 분을 모시는 자리이니 소첩은 정결하게 씻고 오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니 절대 불을 밝히지 마십시오.”
부인이 순순히 말을 듣자 개로왕은 들뜬 마음으로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이미 비단 금침이 깔려 있었다. 왕은 기대에 차서 옷을 훌훌 벗고 불을 껐다.
도미 부인은 시비를 불러 은밀히 일렀다.
네가 나를 위해 해 줄 일이 있다.”
시비는 시키는 대로 부인 복색을 하고 왕이 기다리는 침소로 들어갔다.
개로왕은 어둠 속에서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도미 부인인 줄로만 알고 달려들어 품에 안았다.
짧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됐다.
밖에서 맹흠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 이제 돌아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국왕의 체통에 밤이슬을 밟고 다니는 모습을 백성에게 보이는 것은 좋지 않았다. 개로왕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의관을 정제하고 밖으로 나왔다.
궁으로 돌아온 개로왕은 정무를 마치고 처소에 들었다. 맹흠이 들어와 도미 부인을 별궁에 모셨다고 보고했다.
개로왕은 지난밤의 여운(餘韻)을 되새기며 별궁으로 향했다. 방 안이 환한 가운데 부인이 침상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국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침상에 앉은 여인은 지난밤 보았던 도미 부인이 아니었다.
개로왕은 여인을 다그쳐 자초지종을 들었다. 도미 부인의 계략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왕은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개로왕은 궁궐 처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미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워 두 눈알을 빼고 작은 배에 태워 강물에 띄워 보내라 명했다. 그리고 금군을 시켜 도미의 아내를 잡아들이게 했다.
 
침전으로 끌려온 도미 부인을 마주한 개로왕은 날 선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네 남편은 네가 짐을 속인 죄로 극형을 받았다. 양쪽 눈알을 모두 뽑고 강물에 띄워 보냈으니 지금쯤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래도 짐을 우습게 여길 수 있느냐?”
개로왕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도미 부인에게 달려들었다.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부인은 온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궁궐을 빠져나가 남편의 뒤를 따르고 싶었다.
도미 부인은 국왕을 밀쳐낸 후에 체념한 듯 말했다.
남편을 잃은 아낙이 되었기에 앞날이 막막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미천한 몸을 어여삐 여겨 주시니 어찌 마냥 거부만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지금 제 몸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다른 날을 받아 목욕재계하고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개로왕은 부인의 맑은 눈망울에 취해 다시 그녀의 말을 믿기로 하고 물러났다.
다음 날, 도미 부인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궁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남편이 버려졌다는 강가로 달려갔다.
강변에 도착한 도미 부인은 강물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내 당신 없이 어찌 살겠습니까. 곧 뒤를 따르겠습니다.”
부인은 하늘을 우러러 빌었다.
저는 오늘 이곳에서 죽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악행을 일삼는 포악한 왕을 벌해 주소서.”
도미 부인이 강물에 몸을 던졌다. 이때 기슭에 배를 대고 있던 사공이 이를 보고 물에 뛰어들어 부인을 갑판 위로 끌어올렸다.
정신을 잃었던 부인이 깨어나자 사공이 물었다.
무슨 연유로 귀한 목숨을 함부로 버리십니까?”
도미 부인은 그의 선량한 눈빛에 이끌려 자신이 이제껏 겪었던 일을 털어놨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난 뱃사공은 탄식했다.
이런 기연(奇緣)이 있을 수가!”
뱃사공이 경이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남편이 계신 곳으로 인도하리다.”
도미 부인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뱃사공은 말없이 노를 저었다.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조그만 섬이 모습을 나타냈다. 뒤에 들은 바로는 섬의 이름이 천성도(泉城島)였다.
뱃사공은 부인을 부축해 섬에 내려줬다.
이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집이 한 채 보일 겁니다. 그곳에 남편이 계십니다.”
뱃사공은 중얼거리듯 작별 인사를 하고 노를 저어 떠나갔다.
도미 부인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사공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갔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언덕 위에 올라서니 사공이 말한 대로 낡은 집 한 채가 보였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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