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오욕의 6년… 사법부 흑역사 만들고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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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농단’ 극복하겠다더니 스스로 ‘사법 적폐’ 신세 전락
울산시장 선거 소송 3년8개월… ‘지연된 정의’ 비난 쇄도
30년 만에 ‘대법원장 공백’ 사태 초래… 사법부 시계 멈췄다

류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9-25 20:56:04

▲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22일 퇴임식을 마치고 관용차에 탑승하고 있다. 그는 24일을 끝으로 6년 임기를 마치고 대법원장을 퇴임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6년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했다. 숱한 논란 속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대법원 청사를 빠져 나가는 길에 김 대법원장 규탄 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관용차에 계란 등 물건을 투척할 것을 대비해 차량 주변에 그물망을 펼쳤다. 명예롭지 못한 퇴임이라는 국민 여론이 극명하게 드러난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 많다.

김 전 대법원장은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이 연루된 이른바 ‘사법 농단’이라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2017년 9월25일 취임했다. 취임 당시 그는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한다”며 “사법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6년 임기를 마친 지금 사법부는 그야말로 ‘재판 지연’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오래된 명제가 다시 소환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재판 하나에 수년이 소요되는 현상이 일반화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민사합의 사건의 1심 재판소요기간은 평균 14개월이었다. 김 전 대법원장 취임 초기인 2018년에는 평균 9.9개월이던 재판소요기간이 4개월 넘게 늘어난 것이다. 민사단독 사건 또한 지난해 평균 5.5개월이 소요됐는데, 이는 2018년에 비해 9개월 가량 증가한 수치다.

재판 지연 현상의 원인으로는 김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도입된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꼽힌다. 판사들의 추천으로 법원장이 뽑히면서 대법원장의 인사권은 약해졌지만 반대로 법원장 후보들의 후배 눈치보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법원장을 꿈꾸는 부장판사들이 투표권을 가진 후배 법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업무부담을 늘리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말로 풀이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또한 재판 지연 현상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법관 줄 세우기가 사라진 대신 법관들이 승진을 위해 노력할 유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고법 부장판사라는 ‘법관의 꽃’이 없으니 법관들의 의욕이 저하되고 결국 재판 지연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김 전 대법원장을 논란의 중심에 서게 한 것은 그의 ‘정치 편향성’이었다. 문재인정부에서 이른바 ‘코드 인사’를 주요 정치 사건에 배정하면서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가장 컸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문 전 대통령의 30년 절친 송철호 전 울산시장 당선을 위한 청와대 선거 개입 사건이었다. 그러나 담당 판사는 온갖 핑계로 재판을 미뤄 결심 공판까지 걸린 시간만 3년8개월이었다. 조국·윤미향·최강욱 사건에서도 재판부의 스케줄은 정치적으로 결정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처럼 임기 6년 동안 사법부의 흑역사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김 전 대법원장에게 여당은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강사빈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김명수 사법부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해 판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다”며 “재판이 지연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고 지적했다.

강 부대변인은 이어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받는 황운하 의원, 조국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최강욱 전 의원 등 유독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들에 대해 재판 지연이 빈발했고 이들은 임기를 거의 다 채울 수 있었다”며 “윤미향 의원과 조 전 장관의 경우에도 ‘내 편 지키기’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소 후 1심 선고까지 2~3년이 걸렸다”고 비판했다.

한편 김 전 대법원장이 임기가 만료되면서 25일 0시부터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30년 만에 현실화됐다. 선임 대법관인 안철상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상당 기간 사법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한 처리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안 대법관 역시 내년 1월1일 임기가 끝나는 만큼 공백 장기화 시 대책도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사안에 따라서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시스템이 멈출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사청문회와 국회 본회의 일정까지 감안할 경우 올 11월까지 공백이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 일간지와의 통화에서 “국회가 ‘대법원장’ 자리의 무거움을 헤아려 줘야 한다”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법원장이 만든 사법부 6년의 흑역사는 수많은 난제를 남겼다. 멈춰버린 재판 시계를 다시 돌리는 것에서부터 특정 정당과 정권의 입맛에 맞는 법관들로 채워진 정치 편향성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그만큼 사법부가 국민들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는 혁신과 회복을 이뤄낼 수 있을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류혁 기자 ryuh@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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