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산의 울림] 들녘의 풀도 자유와 독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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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산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06 06:31:00

시집간 딸의 가족이 추석에 오면 먹일 준비를 한다며 시장에 나갔던 아내가 가을냉이가 벌써 나왔다며 한 움큼 사다가 국을 끓였기에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탈북인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하겠지만 나도 얼마 전에야 봄이 오면 냉잇국과 달래 간장·쑥떡을 즐겨 먹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짐승처럼 풀을 너무나 많이 먹어서인지 봄나물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한국에 온 이후에 왜 이렇게 입맛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봄이 오면 나물을 캐려고 산과 들을 헤맨다. 한국처럼 건강을 위해서나 별미로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풀이라도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어머니가 온종일 캐 온 나물을 삶고 데쳐서 거기에 강냉이 가루나 콩깻묵 가루를 조금 넣고 뭉쳐서 떡을 만들거나 죽을 쑤어서 먹곤 했다. 소나무 껍질이나 쑥을 80% 이상 넣고 만든 강냉이 풀떡은 너무 쓰고 깔깔해서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으나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만 했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먹어 본 냉잇국과 쑥떡은 참으로 향기롭고 매끄럽고 달더라. 그래서 산과 들에 나는 풀에 관한 이야기를 몇 자 써 본다.

독재 국가의 땅에서 자란 봄풀에는 독이 있다. 탈북인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봄철이면 쌀알 구경을 못 하고 능쟁이나 비름·쑥 같은 풀만 계속 먹어대면 사람들이 풀독이 올라서 끔찍할 정도로 몸이 붓고 숨이 차고 사망에까지 이른다. 철부지 어린이들이 퍼렇게 풀독이 올라서 죽음을 기다리는 21세기 사회주의 가짜 천국 북한 땅에서는 독이 없다는 봄풀들마저도 독재를 먹고 자라서인지 독을 뿜는다.

인간 세상에는 ‘행복한 변비’ 환자와 ‘불행한 변비’ 환자가 있다. 세상에 변비 환자치고 행복한 변비 환자가 어디에 있으랴만 한국의 변비 환자들은 사방 천지에 먹을 것이 넘쳐나니 너무나도 섬유질이 없는 가공된 고급 음식만 먹기 때문에 걸리는 그야말로 ‘행복한 변비’ 환자라고 나는 감히 칭한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이 걸리는 변비는 ‘불행한 변비’다. 그들은 식량이 없어서 풀과 소나무 껍질을 주식으로 먹다 보니 불행한 변비에 걸린다. 병원에서는 변비약이라고 설사약을 주는데 몸이 허약한 어린이와 노인네들은 설사를 멈추지 못해서 그대로 저세상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집마다 할머니들이 백두산 3대 장군의 초상화 앞에서 꽉 막힌 손자의 항문을 나무꼬챙이로 파내곤 한다.

식량이 없으니 북한 주민 누구나 눈이 녹기 시작해서부터 눈이 내릴 때까지 풀을 뜯어서 근근이 연명한다. 그러니 풀마저도 얻어먹기가 힘들다. 그런 데다 사람들이 발을 붙일 만한 산들은 모두 곡식밭이니 짐승을 키울 만한 풀판이 전혀 없다.

그래서 “풀과 고기를 바꾸라”는 하늘의 계시보다도 더 무서운 수령의 교시와 말씀이 3대째 대물림을 해 오지만 염소 몇 마리 키워 낼 땅과 풀이 없어서 그 말씀은 대를 두고 빈 구호로만 남았다.

들녘의 풀도 자유와 독재를 느낀다. 사람들은 흔히 하찮은 존재를 풀대에 빗댄다. 그렇게 하찮고 생명이 없는 풀들마저도 독재 밑에서는 자라지를 못 한다. 그 맛 또한 쓰고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독풀로 변한다.

그러나 평화롭고 자유로운 땅에서는 풀들이 왕성히 자란다. 그 맛 또한 달며 인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천연 보약이 된다. 이것이 독재국가인 북한과 자유국가인 한국의 두 체제하에서 해마다 돋아나는 풀들을 직접 먹어 본 나의 인생 ‘풀 철학’이다.

남과 북이 한날한시에 독립을 맞이했는데 어찌하여 남쪽은 산과 들에서 나는 풀이 달콤한 보약이 되고 저 북쪽은 같은 풀마저도 쓰디쓴 독약으로 변하는 나라가 되었단 말인가. 이름 없는 풀들도 자유를 향유할진대 하물며 자유를 생명으로 여기는 인간들에게야 이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 것이겠는가. 한국 땅에 자유가 없었다면 과연 오늘과 같은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게 가당키나 했겠는가.

공산주의 사회인 북한에선 자유가 없었기에 그 주민이 짐승처럼 살다가 인류 문명 시대인 21세기에 300만 명이나 굶어 죽었다. 만약 북한에도 한국처럼 자유만 있었다면 300만이 아니라 3명도 굶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들의 선대가 이루어 놓은 오늘의 이 자유를 절대로 빼앗기지 말기를 간절히 당부하며 펜을 놓는다. 서울에서

김태산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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