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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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동포 25명의 주중 스페인대사관 진입 전모가 21년 만에 베일을 벗었다. ‘한원채인권상’을 수상한 김상헌(91·사진) 북한인권제3의길 대표는 21일 “이 사건은 한국 언론의 영혼 없는 말쟁이들에 의해 많이 왜곡됐다”며 “사건을 주도했던 사람으로 20년의 침묵 끝에 이제 그 진실을 밝힌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성헌 대표가 본지에 밝힌 사건의 전말이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 25명이 2002년 3월14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스페인대사관에 진입, 난민 지위 부여와 한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했다. 여섯 가족 22명과 별도의 개인 3명 등 모두 25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오전 9시52분쯤 베이징 중심가의 싼리툰 대사관 구역에 위치한 스페인대사관 부근까지 관광버스를 타고 와 관광객 차림으로 대사관 정문에 접근한 뒤 정문 앞에 있던 중국인 경찰을 밀치고 대사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이날 철저한 사전 준비를 거쳐 기습적으로 ‘거사’를 단행했다.
이들이 스페인대사관 진입에 성공하는 데는 외국 인권 단체와 인권 운동가들이 조직적으로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 부근에는 미국의 CNN방송과 AP통신 등 일부 외국기자들이 미리 연락을 받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들의 진입을 취재했다. 이들은 한국행을 요구하다 15일 중국 측에 의해 추방돼 필리핀에 체류하다가 18일 낮 12시40분쯤 대한항공 KE-622편으로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을 출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대탈출’ 계획~대사관 진입 막전막후
김동식 목사가 제안… 김희태 목사와 실행 본격화 협의
외국 인권단체서 많은 지원… 기습 진입 위해 철저 준비
관광객으로 위장… 가까운 면세점에서 동태 면밀히 살펴
정문경비 1명 있는 것 보고 전원 돌진… 번개처럼 진입
2002년 3월14일 탈북 동포 25명이 주(駐) 베이징 스페인대사관 진입에 성공했다. 국제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후 지금까지 이 사건은 한국 언론의 영혼 없는 말쟁이들에 의해 많이 왜곡됐다. 사건을 주도했던 사람으로 20년의 침묵 끝에 이제 그 진실을 밝힌다.
▲사건의 목적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각종 인권국제협약은 모든 국제 조약의 상위법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다. (유엔헌장 103조). 국제인권협약은 난민 여부와 상관 없이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 피난처를 구하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강제송환을 엄격히 금한다. 중국 헌법도 이를 인정한다. (제32장)
1950년 창설된 유엔난민기구(UNHCR)가 세계 곳곳에서 단 한 사람의 강제송환도 없이 난민을 당당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과거 70여 년 이를 반대하거나 거역한 국가나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이 1990년도 후반부터 우리 동포가 기아와 탄압을 피해 북한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등 국가로 탈출하기 시작했을 때의 시대적 배경이다. 북한에서 중국 등 국가로 탈출한 우리 동포는 난민 지위 여부와 관계 없이 응당 중국에서 보호받을 당당한 권리가 있었다. 특히 탈북은 그 자체가 반(反) 북한 정치적 의견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중국은 난민이 아니라는 엉뚱한 구실로 이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다. 이 새롭고 힘찬 시대정신 대명천지에 처음 발생한 중국 공산당다운 만행이었다. 우리 동포는 글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가혹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해당 지역 한국 대사들을 위시해 대한민국 관계 관료들은 중국에서 중국 법을 어겼으니 어쩔 수 없다는 잠꼬대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바로 대원군 시대의 우매함 그대로였다.
나는 탈북동포의 당당한 지위를 위해 꾸준히 설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국가고시 합격의 우월감의 몸체인 한국 관료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나는 그들에게 북한동포들이 북경 주재 외국 공관에 진입해 국제 사회의 당당한 보호를 받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현실을 보여 주면 이들도 이제 새로운 세계를 바로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이것이 이 사건을 벌인 목적이었다.
▲계획과 진행
탈북동포들이 외국 공관에 진입해 보호를 받는다는 생각은 당시 하늘이 놀랄 일이었다. 이 생각은 김동식 목사의 제안이었다. 그는 그 후 연길 불고기 집에서 납북돼 북한에서 사망했다.
오직 불타는 마음이 있을 뿐 조직도 자금도 없었다. 일본의 북조선난민구호기금의 대표 가또 히로시 선생과 의논했다. 계획에 찬성하나 사건의 대담성과 모험성 때문에 일본 단체는 뒤에서 모든 지원을 하고 표면적으로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머뭇거렸다.
그러나 나에게는 남서울은혜교회 담임 홍정길 목사의 격려와 이름 없는 교우들의 후원이 있었다. 그리고 천군만마에 비길 장비와 관운장 같은 장수의 한 사람인 김희태 목사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을 얻고 계획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첫 난관은 대담하고 위험한 이 계획에 동의하고 참가할 탈북동포의 선정이었다. 인원은 많을수록 좋겠으나 보안 유지와 비용 관계로 20·30명 선으로 제한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앉아서 죽느니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다 죽겠다는 사람들 중심으로 하얼빈·연길 그리고 장춘 등 지역에서 총 25명을 선정했다.
이제 이들을 중국 당국의 감시를 피해 여러 곳에서 이동하게 해 베이징 내 비밀 장소로 집결시켜야 했다. 우리는 주중 독일대사관에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동포들이 독일대사관에 진입할 때 독일인 북한인권 현장 활동가 노버트 훨레츤이 대사관 문을 열어 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거사 몇 주 전 그에게 독일대사관 현장 조사를 의뢰했다. 김희태 목사와 나는 2002년 3월14일 오전 10시에 거사하기로 결정했다.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해선 국제인권조직의 모습을 갖춰야 했다. 국제 언론기관에 보낼 보도자료와 북한동포들의 호소문 등 모든 준비를 국제인권조직의 이름으로 마쳤다. 거사 직전 일본 단체의 간접 협력을 다시 확인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프랑스 여성활동가 두 분이 CNN과의 비밀 접촉을 맡았다. 이번 거사에는 일본인·독일인과 프랑스인 등이 참가해 국제인권조직이라는 모습을 갖추게 됐다.
거사 이틀 전 우리 동포 25명은 이미 베이징 비밀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과연 김희태 목사였다. 이제 그들에게 외국 대사관 진입이라는 전대미문의 모험을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할 차례가 됐다. 그들에게 이번 계획의 배후에는 돕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 줘야 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북한인권 활동가 문국한 선생·도희윤 선생·배재현 장로에게 처음으로 우리 계획을 알리고 거사 전날 25명 탈북동포들과의 마지막 저녁 만찬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들은 중국 당국에 의한 구속도 각오해야 하는 나의 이 위험한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거사 전날 오후 나는 독일 활동가 훨레츤·일본 활동가 가또 선생과 불란서 여성 활동가 두 명과 함께 현장을 다시 답사했다. 우리가 조사한 장소는 독일대사관이 아니고 독일대사관 직원들의 주택과 학교가 있는 독일대사관 소속 별도 지역이었다. 실망했지만 같은 치외법권 지역이 틀림 없기 때문에 나는 그 계획을 그대로 진행하자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 활동가들이 25명의 생명이 달려 있는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너무 안일하다고 크게 항의했다. 그들의 제안으로 우리는 스페인대사관을 현장 답사했다.
큰 대문이 열려 있고 약 10m 안쪽에 대사관 건물이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지 않을 경우가 걱정됐으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훨레츤 씨가 스페인대사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 동포들의 대사관 진입을 돕기로 했다.
대사관 진입~한국 오기까지
대사가 따뜻하게 맞아… 모든 창 가리고 침대·음식 제공
CNN 등에 미리 귀띔… 현장서 생생한 드라마 세계 송출
세계 여론 두려웠던 中, 강제북송 않고 필리핀으로 추방
신분 감추자던 獨활동가 약속 깨고 회견… 신변위협 귀국
거사 전날 마지막 저녁 전원 회식 비밀 장소에는 김희태 목사와 나 이외 3개 국적의 외국인 5명(프랑스 기자 한 사람 포함), 그리고 한국인 현장 활동가 3명이 참석했다. 북한동포들이 처음으로 두 사람이 아닌 당당한 국제조직을 만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스페인대사관 진입 계획을 처음으로 설명했고 지금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이 있던 본래 장소로 안내하겠다고 설명했다. 전원이 스페인대사관 진입을 찬성했다.
우리는 거사 당일 아침 9시 베이징 외국인 중심 지역 모 국제 호텔에서 계획을 재점검하고 스페인대사관으로 향했다. 거리와 소요 시간을 면밀히 계산했으나 좌회전 금지 구역을 계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약간의 차질이 있었다. 김희태 목사는 우리 동포 25명과 관광버스를 약속 장소에 대기시켰고 나는 그들과 합류해 현장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우리 계획을 다시 설명하고 만약 스페인대사관 현관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대사관 경내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내 외국인 면세점에 도착했다. 25명의 여행객 모습이 자연스러운 장소였다. 과연 김희태 목사다운 면밀한 계획이었다.
독일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가면 된다고 알렸다. 독일 사람이 없을 겨우 길 건너편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나를 주목했다가 내가 허리를 굽혀 신발 끈을 묶을 때 그 건물로 뛰어 들어가라고 했다.
우리 동포 25명 대사관을 향해 걸어 가기 시작했고 나는 길 건너편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200~300m 상당의 거리로 기억한다. 마침내 스페인대사관에 도착했으나 독일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길 건너 편에서 허리 굽혀 신발 끈을 매었다. 그들은 약속한 대로 번개 같이 대사관 내로 뛰어 진입했다.
한두 사람이 중국 공안에게 잡혔으나 먼저 진입했던 우리 동포들이 되돌아 와서 그들을 끌고 전원 진입에 성공했다. 현관문이 열릴까 초조한 순간도 잠깐 그들은 현관문을 활짝 열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때 독일인 활동가가 헐레벌떡 현장에 도착했다. 그도 좌회전 금지 구역을 몰랐기 때문에 몇 분 늦은 것이었다.
몇 분 후 두 사람의 프랑스 여성이 자전거로 유유히 현장을 확인하면서 지나갔다. 물론 서로 아는 체하지 않았다. 참으로 늠름한 모습으로 나치스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머리가 숙여졌다. 가또 히로시 대표의 현지 연락 즉시 도쿄에서 팩스로 베이징 주재 모든 외신에 보도자료를 일제히 발송했다.
스페인대사관 뒷골목 작은 찻집에서 가또 히로시 대표와 나는 우리 동포들이 추방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약 한 시간 정도를 지켜봤다.
그날 저녁 연길에서 TV를 보면서 CNN의 대대적인 현장 보도를 보았다. 그러나 뜻밖에 훨레츤이 현장에 홀로 남아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현장에서 즉시 떠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 그가 같은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신분이 노출될 수 있어 나와 김 목사는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다음 날 귀국했다.
▲뒷 이야기
1. 우리 동포들은 제지하는 스페인대사관 직원들을 밀치고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부엌까지 밀고 들어가자 뒷마당이 나와 다시 건물 중심부 복도로 되돌아왔다. 소동에 놀란 스페인 대사가 2층에서 내려왔다. 그에게 호소문을 제시하고 읽자 대사는 빈 방 하나를 내주며 커튼으로 모든 창을 가리고 야전용 목제 침대 25개를 구입해 이들을 쉬게 했고 음식과 음료를 제공했다. 선진 대국다웠다.
2. 중국은 다음 날 신속하게 이들을 제3국인 필리핀으로 이송했다. 북한으로의 강제 송환은 어림도 없었다. 한국 정부는 필리핀에서 이들을 인수했고 25명 전원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 정부의 개입은 없었고 중국의 일방적 결정을 수동적으로 따른 것이다.
3. 독일 활동가의 기자회견, CNN의 현장 보도 그리고 도쿄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등은 중국 정부에게 이번 사건의 배후가 국제인권 조직임을 확신하게 했다. 중국은 배후 조사를 하지 않았다. 그 후 국내 북한 인권활동가들의 보호막 역할 덕분에 지금까지 김희태 목사와 나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던 점은 다행이다.
4. 나는 중국 정부가 이들의 강제 송환을 고집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국제적 논쟁을 기대했다. 한국 관료들의 각성도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이 강제 송환이라는 범죄를 이렇게 두려워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의 강제 송환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의 기회가 이렇게 사라졌다.
5. 탈북동포에게는 당당한 권리가 있음이 백일하에 증명됐다. 이후 재외공관을 통해 많은 동포가 한국에 도착했다.
6. 이 사건 전개 과정에서 25명의 신상이 공개됐다. 나의 실수였다. 이들을 보호했던 일부 조선족 협력자들이 중국의 부당한 처벌을 받게 됐고 나는 오랫동안 이 일로 크게 시달렸다.
7. 일본 단체는 추후 이번 활동 비용의 상당한 부분을 부담했다.
▲끝맺음
1. 중국의 북한동포 강제 송환으로 북한 동포가 엄청난 고통을 겪는 비극은 전적으로 대한민국의 책임이다. 여야 정치인들과 통일 관련 관료들·대사와 재외공관 직원들의 피를 토하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2. 북한 인권은 국제 문제다. 따라서 북한 인권은 국제 시민의 몫이다. 반공과 북한 비난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북한 인권 활동의 바른 길을 보여 주는 모범적인 본보기였다.
3. 지금이라도 천편일률적인 북한 비난 일변도의 잘못을 깨닫고 국제 시민과의 공동 전선이라는 큰 길을 바로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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