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택시업계 ‘택시 대란’일까 ‘빈 차 대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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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1-29 00:02:30

“왜 자꾸 거꾸로 가는 거야. ‘빈 차 대란’이지 빈 차 대란. 저기 다 빨간 등 켜고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늦은 시각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서울 강북구 수유동을 지날 때 “요즘은 그래도 택시 대란이 없어지고 택시가 빨리 잡혀 좋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택시 기사가 내뱉은 넋두리다. 택시 기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실제로 ‘빈 차’ 표시를 띄워 놓은 택시들이 즐비했다.

코로나19 이후 지난해엔 심야 시간대에 택시가 잡히지 않는 ‘택시 대란’이 발생한 바 있다. 정부와 서울시의 부제 해제·택시 요금 인상 등의 조치로 택시 승차난은 다소 해소됐지만 지난해 성탄 연휴와 연말엔 택시 대란이 재현됐다.

그렇다면 택시 수요가 비교적 적은 평시에는 어떨까. 늦은 시간 수유동·명동·종로 등 번화가 앞엔 ‘빈차’ 표시를 띄워 놓은 택시들이 즐비하다. 늦은 시간까지 번화가에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겐 익숙한 풍경이지만, 기사들은 이 풍경을 ‘빈 차 대란’이라고 부른다.

연말 등 수요가 많을 때엔 ‘택시 대란’이 일어나고 평소에는 기본요금 및 심야 할증 요금이 인상되면서 시민이 이용을 줄이는 바람에 ‘빈 차 대란’이 일어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현 상황의 원인이 기사 인력난에 있다고 보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하나가 ‘선(先) 취업 후(後) 자격 취득’ 제도의 도입이다. 공식 택시기사 자격 없이 임시 운전 자격을 가지고 일을 먼저 시작한 다음 3개월 이내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안이다.

택시 요금 인상·부제 해제 등 조치에도 코로나19 여파로 이미 많은 택시 기사가 업계를 떠났고, 여전히 택시 운행 대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해당 제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서울시에선 택시 운전자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취업 문턱을 낮춰 기사 유입 효과를 보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제도는 현재 플랫폼 기반 법인택시에 적용되고 있으며 6000여 명의 기사 유입 효과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나온다. 임금 체계가 불확실하고 운송 수익도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는 열악한 처우에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택시기사들이 핸들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업에 종사 중인 기사들은 코로나19 이후 배달업계로 떠난 기사들을 다시 택시 업계로 복귀시키고,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인력 유인책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기자가 탄 택시의 기사는 “택시 일을 하기 쉽게 만들 것이 아니라 택시 일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 인력난은 업계의 열악한 처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에 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지면서 수익성까지 하락하자 택시 기사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업계를 떠난 것이다. 처우 개선에 이어 업계 복귀 등의 조치 후에도 수요·공급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때 선 취업 후 자격 제도와 같은 카드를 꺼내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부디 정부가 업계의 현실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택시업계의 현실에 맞는 대책을 세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김기찬 기자 gc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