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처리 때문에 바빠서 실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팀장이 돌아보았다. 남편에게 동행이 있었느냐는 하운의 질문에 팀장이 다시 한 번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 미. 숙.”
하운이 더듬더듬, 여자의 이름 세 글자를 중얼거렸다. 팀장의 얼굴을 본 그녀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아서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팀장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운은 아무도 없는 복도에 버려진 듯 혼자 서 있었다.
동우는 죽지 않았다. 지난밤 교통사고라도 났다면 경찰에서 연락이 왔을 것이다. 그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하운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동우가 죽었을 거라는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처럼 그가 살아 있다는 확신 속에서 그녀는 또다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미숙은 가구 수입 업계에서 재력과 능력 모두 손꼽히는 여성 사업가였다. 동우가 사업을 확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했다. 부부 동반으로 몇 번 만나서 함께 저녁 식사도 했다. 매년 1월과 4월에 열리는 쾰른과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그들이 함께 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와 동우 사이를 의심했던 적은, 어리석게도 한 번도 없었다.
태풍이 남긴 바람은 선선했지만 구름이 사라지고 난 뒤 햇볕에 달궈진 자동차 실내는 뜨거웠다. 운전석 옆을 더듬어 생수병을 찾았다. 반도 채 남지 않은 데다 자동차 안에서 데워진 물은 하운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하운은 하마터면 휴대전화로 동우의 전화번호를 누를 뻔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동우가 자신이 타고 온다고 했던 여객기의 사고 사실을 알고 있다면 먼저 전화를 했을 것이다. 일이 생겨서 바로 앞 비행기로 먼저 도착했다거나 다른 지역을 경유해서 조금 전 도착했다거나, 어떤 변명이든 해야 아내를 속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만큼 동우는 멍청하지 않았다. 하운은 옆자리에 놓아 둔 생선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운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에어컨을 켜는 대신 창문을 내렸다.
그즈음 하운은 매일 산부인과에 다니며 경구용 배란 유도제 클로미펜과 과배란 주사제 폴리몬을 맞았다. 벌써 세 번째 시도였다. 결혼 7년째였지만 아이가 없었다. 가끔, 자식 이야기를 늘어놓는 자리에선 소외감이 들긴 했지만 시집에서도 채근하지 않았고 동우도 문제 삼지는 않았다.
하운의 삶은 적절히 고요하고 적당히 평온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와 전시매장처럼 앤티크 가구로 꾸며 놓은 실내장식, 지난봄 서른세 번째 생일날 동우가 선물한 외제 승용차도 있었다. 화장품이든 옷이든 백화점에서 가격표를 의식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동우 이름의 신용카드도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가사도우미가 와서 청소와 빨래를 하고 맛깔스러운 반찬들을 냉장고에 채워놓았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도 있었다. 대학 때 문학서클에서 활동했던 그녀는 졸업 후 출판사에 근무했고, 이제는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충분한 건 아니었다.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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