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월19일 저녁 미국 뉴욕주 오스닝 소재 싱싱교도소에서는 원자폭탄 기밀을 소련에 넘긴 혐의 등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로젠버그(Rosenberg) 부부의 형이 집행되었다. 미국 역사상 민간인이 간첩 행위로 사형당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들 부부는 사행 집행 전까지 간첩 혐의를 부인했다. 체포 당시부터 수사와 재판 내내 무죄를 주장했고, 죽음 앞에서는 진실해진다는 속설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 부부는 마지막 말도 거짓이었다.
남편인 줄리어스 로젠버그는 1918년 5월 뉴욕에서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 부부의 막내로 태어났다. 1915년 9월 태어난 부인 에델 그린글래스도 유대계였고 가정 형편이 비슷했다. 줄리어스는 뉴욕시립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며 공산주의 학생운동에 열중했다. 에델도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 다녔다. 1936년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그해 국제선원노동조합의 파업 현장에서 줄리어스를 처음 만나 1939년에 결혼했다. 1940년 줄리어스는 자신의 공산당 경력을 숨기고 육군신호부대에 민간인 기술자로 채용되어 레이더 장비를 연구했다. 에델과 그녀의 남동생 데이비드 그린글래스도 열성 공산당 지지자였다. 1945년 줄리어스는 공산당원이란 이유로 육군 신호부대에서 해고당했는데 그때도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미국은 1942년부터 원자폭탄 개발 비밀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이에 소련은 원자폭탄 정보를 빼내기 위해 다방면에 스파이망을 구축했다. 그 스파이 중 한 명이 독일계 영국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본지 스파이세계 제7회 연재)였다. 푹스의 간첩 활동은 미국과 영국의 소련 암호통신 해독사업인 ‘베노나(Venona) 작전’을 통해 드러났다. 푹스는 1950년 2월에 체포되었고 그의 상부 연락책인 화학자 해리 골드도 검거되었다. 해리는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에서 ‘맨해튼 프로젝트’ 조직에 기밀유출자가 한 명 더 있다고 자백했는데, 그가 바로 에델의 남동생 데이비드 그린글래스였다.
데이비드는 육군 상사 출신의 기계공학자로 맨해튼 프로젝트 수행 연구소인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원자무기연구소)’에서 18개월 동안 근무했다. 당시 누나와 매형이 원자폭탄에 대해 관심이 많아 설명해 주었고 이후 매형의 소개로 해리 골드를 만나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해리 골드는 이들에게서 핵 개발 정보를 빼내 뉴욕 주재 소련 부영사로 위장한 소련 정보기관 KGB의 요원 아나톨리 야코블레프에게 전달했다.
1950년 7월17일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체포되었고 뒤에 부인 에델도 체포되었다. 1951년 3월29일 로젠버그 부부는 간첩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고, 그해 4월5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어빙 카프먼 판사가 선고한 유죄 사유 중 하나로 한국전쟁(6·25 전쟁)에 미친 영향을 들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본인은 피고들의 죄가 살인죄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에 원자폭탄을 넘겨준 피고들의 행위는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야기시켰고 그로 인해 이미 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고들은 반역 행위로 역사의 흐름을 미국에 불리하게 바꿔 놓은 것이 명백하다.”
당시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유럽 각국에서 로젠버그 부부의 사형에 반대하는 청원이 잇달았다. 공산주의자였던 유명 화가 파카소와 철학자인 사르트르뿐 아니라 반공주의자인 교황 피우스 12세도 이들 부부의 구명을 위해 노력했다. 물리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미국 대통령에게 사형 철회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직접 핵 개발 정보를 넘긴 푹스가 14년, 데이비드가 15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로젠버그 부부에게 내려진 사형 판결은 너무 잔인하다고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러나 로젠버그 부부의 사형은 결국 집행됐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로젠버그 부부 사건에 대한 새로운 결정적 증거가 나왔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로젠버그 부부에게서 핵 개발 정보 도움을 받았으나 소련의 핵 개발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고 언급한 녹음 내용이 공개되었다. 또한 1995년 기밀이 해제된 소련 암호통신 해독(베노나) 문서에 따르면 로젠버그의 암호명은 ‘안테나(Antenna)’와 ‘진보주의(Liberal)’였다. 다만 그가 빼돌린 기밀은 주로 전파탐지기 관련 정보였고 원자폭탄 정보도 일부 있었다.
핵 기밀을 소련에 전달한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30년형을 선고받았던 머튼 소벨의 증언도 결정적이었다. 그는 1969년에 형기를 앞당겨 18년 만에 석방되었는데 계속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다가 2008년 뉴욕타임스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소련의 스파이였음을 인정했다. 나아가 2011년 ‘위클리 스탠더드’와의 대담에서는 자신이 로젠버그 및 다른 2명과 함께 기밀문서들을 복사했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로젠버그 부부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는데 1973년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죄와 명예 회복을 주장하다가 2008년에야 아버지의 간첩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어머니의 무죄와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로젠버그 부부의 옥중편지가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사랑은 죽음을 넘었어라’(들불·1989)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다.
로젠버그 부부 사건에 대해 당시 미국 및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연계하여 스파이 조작 사건이라고 선동 공세를 벌였지만 소련 붕괴로 각종 기밀이 해제되고 관계자의 증언이 나오는 바람에 진실로 밝혀졌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가 진보로 위장한 종북좌익 분자들의 거센 가짜뉴스 공세에 엄중히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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