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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다큐소설 전두환] <6> 10.26(Ⅱ)
지만원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06 00:00:52
국방부
 
9 30분경국방부 청사 2층 장관실에는 총리·국방·내무·외무·법무·문공·서종철 대통령 특보·유혁인 정무수석·김재규·김계원·정승화·신현확 부총리가 있었다이 자리에서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김계원이 총리를 향해 말꼬를 텄다.
김계원 :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를 열어야 하지 않습니까?”
총리 : “물론이지요계엄 사유를 무엇으로 할까요유고로 할까요서거로 할까요?” 유고인지 뻔히 알면서 정치적 타협 결과를 가지고 대국민 발표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김계원 : “대통령 각하 유고로 27 00:00부로 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총리 : “유고만 가지고 납득 하겠습니까무언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국무위원들도 내용을 알아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지요.”
김재규 : “유고는 안 됩니다국내 치안이 좋지 않아서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총리 : “국내에 데모가 난 것도 아니고계엄이 선포된 부산도 조용한데그건 이유가 안 됩니다대통령 유고를 어떻게 국민에게 안 알리겠습니까계속 보안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일이며우선은 국무위원들도 납득하지 못할 겁니다.”
김재규 : “왜 안 됩니까소련은 1주일 이상이나 브레즈네프의 행적을 발표하지 않고 있었는데 2~3일 동안 왜 보안 유지가 안 됩니까?”
총리 : “그러면 김 부장이 국무회의에서 사유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김재규 : “하지요.”
법무장관 : “비상계엄과 국장문제 등을 검토해야 합니다.”
김재규 : “지금은 보안을 유지해야지국장 문제를 앞세울 수는 없습니다.”
문공장관 : “비상계엄의 사유를 명백히 해야 합니다.”
김재규 : “소련의 브레즈네프는 1주일간이나 행적을 보안 유지했는데 우리는 왜 며칠간 보안 유지를 못 합니까국가에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면 되지 사유를 자세히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다.
 
김재규는 무슨 생각으로 유고 사실을 3일간이나 비밀에 부치려 이토록 집요하게 주장했을까눈치 보기에 급급한 수뇌부를 3일에 걸쳐 자기 체제로 종속시킨 후 계엄사령부를 혁명사령부로 곧바로 전환시키려 했을 것이다그 외에는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 ‘국민 여러분 오늘 본인은 반민주적인 유신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민주주의 세상을 열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여는 혁명선언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의사가 반영되기 어려움을 직감한 김재규는 답답한 마음에 김계원을 밖으로 불러냈다. 10 25분 경이었다김재규가 말을 꺼내려 하자 김계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사람아~, 어떻게 하려고 각하까지 그렇게 했어~.”
같은 배를 타왔던 사람이 혼자서 탈출해 살길을 찾겠다는 신호였다이에 김재규가 본심을 꺼냈다.
인제 와서 그런 소리가 무슨 소용이요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마세요사태 수습이 급선무입니다보안을 유지해야 합니다최단 시간 내에 계엄 간판을 내리고 혁명위원회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합니다.”
알았소.”
이런 서먹한 분위기를 안고 두 사람은 국방장관실로 들어갔다.
 
장관실 회의용 탁자의 제일 상석에는 국무총리가 앉고좌측 소파에는 김재규·서종철·유혁인(정무1), 우측에는 김계원·신현확·문공부 장관이 앉았다다른 사람들은 다 국방부 소회의실에 들어가 있었다일곱 명이 앉아 있었지만 김재규가 있는 자리라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이어서 김재규만 장관실에 남겨 놓고 회의실로 들어가 비상국무회의를 열었다 11 30분이었다.
회의실은 김재규가 없는 자리라 표현의 자유가 있었다.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데 왜 비밀에 부쳐야 하느냐.”
사망 여부부터 확인해야 할 것이 아니냐.” “계엄 선포 이전에 병원부터 가 봅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김재규의 주장이 먹혀들 수가 없었다이 분위기를 감지한 김계원이 국방장관실의 보좌관실로 갔다국방장관실에는 김재규가 홀로 앉아 있었고장관보좌실에는 국방장관 노재현과 정승화가 앉아 있었다. 11 40분이었다김계원이 김재규를 배신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각하의 시해범이 바로 저 안에 있는 김재규요여기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할 때 쓴 권총이 있소
이 청천벽력 같은 말에 노재현 장관은 소스라치게 놀랐고정승화는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이 권총은 김재규가 제2차로 대통령과 차지철에게 한 방씩 더 쏘려다가 장전이 안 되어 박선호가 미리 대비했던 다른 총과 바꾸어갈 때 김재규가 김계원에 얼떨결에 건네준 총이었다.
여보 총장당장 김재규를 체포하시오.”
노재현 장관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정승화는 과연 명령을 받들었는가?
 
이어서 국무회의가 열렸다국무회의에서는 대통령 유고의 원인을 밝히지도 않았고유고를 “졸지에 서거로 바꾸어 버렸다. ‘유고라 하면 사고의 원인을 밝혀야 하지만 ‘서거라고 하면 갑작스러운 병환 정도로 사망했겠거니 하고 지나칠 수 있었다이는 04시에 발표한 최규하의 특별담화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국민 여러분우리는 오늘 민족중흥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졸지에 서거하신 데 대해 그 충격과 애통함을 가눌 길 없습니다. ···헌법 제48조 규정에 따라 본인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계엄포고 제1호가 발령된 것이다.
 
한편 국무회의를 일찍 종결한 최규하는 가장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와 장관실로 가서 혼자 앉아 있는 김재규에 국무회의 결과를 알려 주었다. 00 25분이었다.
최규하: “비상계엄은 새벽 04시를 기해 선포하기로 했습니다계엄사령관은 정승화계엄합동수사본부(합수부)장은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으로 임명했습니다.”
김재규 : “잘 됐습니다고맙습니다.”
비상계엄을 간절히 원하던 김재규는 만족스러웠다.
최규하가 김재규에게 회의 결과를 알려 준 시각은 00 25 5분 후에 김재규는 전두환에 의해 연행됐다. 5 5분이 운명을 가른 것이다만일 정승화의 궁정동 행적이나 김재규 연행 사실이 국무회의 도중 알려졌다면 정승화는 절대 계엄사령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재규가 체포되자 이후 박흥주 등 시해 일당들도 줄줄이 체포됐다.
 
전두환의 등장
 
정승화가 B-2 벙커에 온 시각은 오후 8 05정승화는 헌병감까지만 부르고 정작 중요한 보안사령관만 쏙 돌려놓았다보안사는 어떻게 이 사건을 인지하게 되었는가? 10.26 김계원이 대통령의 시신을 싣고 서울지구 병원에 가려면 보안사 정문을 통과해야 한다정문 근무병이 이 사실을 보안사 당직 사령인 이상연 대령에게 보고했고이는 그날 늦게까지 일하고 있던 보안처장 정도영 장군(육사 14)에게 알려졌다정도영 준장이 병원장에 전화를 걸었더니 병원장은 중정 요원들의 밀착 감시를 받고 있어서 대답이 엉성했다.
코드 원이냐?”
.”
위독하시냐?”
.”
이에 이상연 대령이 즉시 전두환에게 전화를 했다이때 전두환은 서빙고 보안분실(대공분실)로 가던 중이었다.
사령관님각하의 용태가 위태롭습니다지구병원에서 감시 당하고 있습니다.”
전두환은 주요 간부들을 비상 소집했다. 8 30분이었다서빙고 수사분실에 도착한 전두환이 청와대 경호실에 전화했지만 통화 연결에 실패했다경호실장실에서도경호차장실에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바로 이때 보고가 들어왔다.
노재현 장관이 사령관님을 찾고 계십니다정승화 총장이 각 군 수뇌부를 B-2 벙커로 소집하고 있습니다.”
오후 9전두환이 B-2 벙커에 도착했다이때 김계원과 최규하는 청와대에 있었고정승화 총장이 바쁘게 상황 지시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총장실에는 김재규가 있었고상황실에는 노재현 장관과 군 수뇌들이 묵직한 얼굴을 하고 모여 있었다전두환이 노재현 장관에게 다가갔다.
전두환 : “대통령께 무슨 일 있습니까?”
노재현 : “대통령이 서거했다자세한 건 모른다.”
용태가 위태로운 게 아니라 서거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9시였다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전두환은 길 건너에 있는 육군본부 보안대 사무실에 임시지휘부를 차리고 상황 파악에 나섰다.
10 40노재현 장관은 김계원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정승화에게 김재규를 체포하라 했지만그동안 정승화의 석연치 않은 행동이 미덥지 않아 전두환을 호출했던 것이다.
김재규를 체포하라.” 노재현 장관이 전두환에게 직접 지시한 것이다.
11 50정승화가 전두환과 헌병감 김진기를 불렀다.
지금 국방장관실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있다헌병감은 중앙정보부장의 신병을 인도하여 보안사령관에 인계하라보안사령관은 신병을 인계받아 안가에 정중히 모셔라.”
 
김재규 체포 순간
 
국방부 울타리는 헌병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헌병 복장을 해야 김재규를 안심시킬 수 있고김재규를 태우고 나갈 때도 정문 헌병에 미리 명령해 두어야 무사 통과할 수가 있었기에 헌병감을 부른 것이며안가는 보안사가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두환을 부른 것이다전두환은 노재현 장관으로부터는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말을 들었지만정승화로부터는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장관으로부터는 김재규를 체포하라는 명을 들었지만정승화로부터는 부장을 안가에 정중히 모시라는 말을 들었다각하가 사망했다는 말과 김재규를 체포하라는 말을 합치면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한 범인이라는 의미가 되었다그런데 이에 대한 명령이 장관 다르고 총장이 달랐다여기에 더해 정승화의 분위기가 음산했다전두환은 길 건너에 있는 육군본부 임시지휘소로 가서 보안처 군사정보과장 오일랑 중령(갑종 155)을 불렀다.
오 중령너 김재규 얼굴 알아?”
네 압니다.”
김재규는 네 얼굴 알아?”
모를 겁니다.”
그럼 됐어국방장관실에 김재규가 있다너 곧바로 헌병복으로 갈아입고 김재규를 체포해무장을 해제시키고 정동 분실로 데려가라구정중히 대해야 해정동 분실에 허화평이 대기하고 있을 테니 허화평에게 인계해체포할 때는 ‘육본 B-2 벙커의 총장실에서 정승화 총장이 부장님을 모시고 오라 해서 왔다라고 해이렇게 유인해서 체포하라고만일에 대비해서 내가 참모장 차 레코드 등 세 대의 차량을 더 준비했으니 같이 행동해헌병감이 헌병들을 체포 현장에 배치할 것이니 헌병 지원을 받으라고.”
헌병감 김진기와 상의한 결과였다오일랑은 헌병 완장을 차고 차량 세 대를 인솔하여 국방부로 향했다국방부 정문에는 김재규 경호원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뒷문으로 들어갔다국방부 청사 앞과 뒤에는 이미 헌병 장병이 10여 명씩 깔려 있었다오일랑 중령은 중정 요원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국방부 청사 사방에 헌병 2명씩을 배치했다만일 연행 과정에 중정 요원들이 뒤를 따라올 경우에 대비해 연행 차량이 빠지자마자 출입문들을 일거에 봉쇄할 수 있도록 헌병을 배치했다오일랑 중령은 이런 조치를 해 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회의실에는 국무위원들이 있었고복도에는 장관 비서실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성거렸다이 사람들이 있으면 임무 수행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국방부에 파견된 보안대 김병두 대령을 만났다오 중령은 김병두 대령에게 사령관의 임무 사항을 말해 주면서 복도에 있는 사람들을 방으로 몰아넣어 달라고 부탁했다이내 복도가 조용해졌다.
 
오일랑 중령은 김진기 헌병감과 함께 장관 비서실장 조약래 준장의 안내를 받아 장관실에서 대기 차량이 있는 곳까지의 비밀 통로 코스를 사전 답사하여 체포 인원들과 함께 예행연습을 했다마지막으로 장관 비서실장인 조 장군에게 보안사령관의 지시사항을 말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있는 김재규를 옆방으로 유인해 달라고 부탁했다조 장군은 회의실 바로 옆 방인 장관 별실로 유인하겠다고 했다오일랑 중령과 김진기 소장(2)은 미리 장관 별실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다. 2분 정도 흘렀다마침내 조 장군이 김재규를 안내해 왔다두 사람은 거수경례를 붙였다보아하니 한 사람은 헌병 투스타이고 한 사람은 헌병 중령이었으니 김재규는 이들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김진기 장군 : “부장님저 육군본부 총장 비서실장입니다정승화 총장이 B-2 벙커에서 부장님을 모셔 오라 해서 왔습니다.”
김재규 : “그런가가세.”
 
비밀 통로로 유인하여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김재규가 갑자기 “박 대령박 대령하고 박흥주 대령을 찾았다오일랑 중령은 “곧 따라옵니다” 하면서 계단으로 내려가게 했다. “왜 이리 어두운 길로 가는가?” “이 길은 국무위원들이 다니는 통로입니다아까 최규하 총리께서도 이 길로 오셨습니다조금만 참으십시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배면 주차해 있는 레코드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차의 조수석과 뒷좌석 좌측에는 미리 헌병이 승차해 있었다오일랑 중령이 김재규를 강하게 밀어 뒷좌석 중간에 앉히고 자기는 우측 좌석에 탔다.
속았다고 생각한 김재규하지만 이미 덫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무장 해제 하겠습니다.”
무장?”
김재규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오일랑 중령이 잽싸게 그의 손을 잡고 먼저 김재규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꺼내 차 밖에 있는 헌병에게 건네주었다그리고 온몸을 훑어 다른 무장이 없음을 확인한 후 출발하여 뒷문을 통해 삼각지 로터리를 통과했다그 시각이 00:40분이었다중정 요원들이 뒤를 쫓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남영동으로 들어섰다.
자네누군가?”
육본 헌병대장 오일랑 중령입니다.”
조금 더 있더니 다시 물었다.
자네누구라고 그랬지어디로 가는거야?”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으니 조용히 계십시오.”
거기가 어디야?”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통령이 죽었단 말이야.”
8군 수송대 앞에 이르자 ‘통행금지’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었고 경찰관들이 나와 있었다.
나 육본 헌병대장인데 누구를 태우고 가는 중이다.”
당시만 해도 사회는 군을 우대하는 시기였다남영동 검문소가 또 나타났다같은 방법으로 통과하려 했는데 갑자기 시동이 꺼졌다뒤따라온 예비용 차량 2대 중 한 대에 나란히 이동시킨 후 경찰이 김재규의 얼굴을 알아볼까 봐 김재규의 고개를 꾸욱 누르고 통과했다전 국회의사당 건물과 덕수궁 사잇길로 들어가 보안사 정동 분실로 가려 했는데 오일랑 중령이 길을 몰라 헤매다 보니 인근에 있는 중앙정보부 분실로 가게 되었다분실 정문에서 예비군 복장을 한 장발의 경비병이 달려왔다김재규가 이를 보더니 반가워했다.
우리 분실이구먼.” ‘역시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다더니 나를 분실로 모시는구먼!’ 김재규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반면 아차 싶은 오일랑 중령은 차를 빨리 돌리라 했다차를 돌려 나오니 곧바로 보안사 분실이 보이고 사람들이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김재규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고거기에는 허화평 대령이 기다리고 있었다전두환은 오일랑 중령이 혹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도영 보안처장으로 하여금 오일랑 중령 모르게 뒤를 따라가면서 엄호하도록 조치했다임무를 완수한 오일랑 중령은 육본 보안대 임시지휘소로 가서 임무 완수 보고를 했다이어서 전두환은 시해사건 연루자들이 국외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부속자 박흥주의 운명
 
박흥주가 그의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부장의 무서운 지시를 받고 가방에 들어있는 9연발 권총을 꺼내 7발이 장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허리에 찼다시간이 조금 있어서 부속실인 내 방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며 생각해 보니 기가 막혔다부장의 위치로 보아 모든 계획이 확고히 서 있는 듯했다명령을 내릴 때 얼굴이 워낙 무서워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육군총장과 중정 2차장보를 식당에 대기시킨 것으로 보아 모두가 다 결탁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았다각하를 시해하면 김재규 세상이 된다그가 성공했는데 내가 가담하지 않으면 반역으로 몰려 살아남기 어렵게 될 것이고내가 공을 세우면 출셋길이 열릴 것이다반면 실패하면 나의 인생은 여기서 비참하게 끝나는 것이다하지만 나는 차마 그의 명령을 감히 거부할 수 없었다.“
김재규의 수행비서 박흥주는 육사 18당시 41세의 현역 포병 대령으로 부인과 1 2녀를 두고 있었다중위 시절인 1964 8월부터 1년 동안 제6사단장인 김재규의 전속부관을 했다그 덕으로 1969 3월부터 3년 동안 보안사에서 근무했고, 1978 12월부터 사고 당시까지 김재규의 수행비서로 있었다사고가 난 지 이틀 만인 10 28그는 합수부에서 이런 진술을 했다.
 
그날 새벽 2시경 국방부 청사에 있을 때 일등병이 오더니 저기서 누가 좀 보자고 한다며 따라오라고 했다따라가니 헌병 대위가 무장 해제를 한다고 했다권총과 무전기를 내주었다이때 중정 경호조장 홍 대위와 경호원 한 명이 나처럼 불려 가는 것을 보았다. “이젠 다 틀렸구나!” 부장 차를 타고 남산 순환도로를 거쳐 한남동 주택가에 정차시킨 다음 1시간 30분 동안 있었다심정이 착잡했다. 04 30분경행당동 내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처가 나왔다몹시 놀라는 처를 보면서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강변도로를 타고 잠실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고 운전수 유석문과 함께 있다가 07시 뉴스를 들었다김재규가 차지철을 살해해 계엄사에 구속되어 수사받고 있다고 했다. 27일 오후 3시경 나는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됐다.“
 
그는 1980 3 6경기도 소재의 한 야산에서 42세의 꽃나이로 총살형에 의해 생을 마감했고김재규와 박선호는 1980 5 24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재규의 실토
 
김재규를 연행하기 전까지의 세상은 그야말로 주인 없는 무주공산이었다최규하 내각은 무기력했다인물들은 모두 이후의 권력이 누구 손에 쥐어질 것인가를 탐색하기에 눈들을 반짝였다김재규가 이끄는 막강하다는 중앙정보부김계원이 장악한 청와대정승화가 이끄는 60만의 군벌이 결합하면 불과 이틀이면 정권장악이 가능했다만일 김재규와 정승화가 정권을 잡았다면 그들은 어떤 정치를 했을까시해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차단하면서 무서운 독재를 했을 것이다박선호와 박흥주에게 보여주었던 무시무시한 얼굴을 온 국민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이 모든 악몽이 김재규를 체포하는 순간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정동 안가로 연행된 김재규는 이제 막장의 카드를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묻지도 않은 말을 스스로 털어 놓은 것이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나에게 협조하라내가 대통령을 시해했다내일이면 세상이 바뀐다.”
이 말이 즉시 전두환에게 보고됐다전두환은 정승화를 압박했다. “대통령 시해범은 김재규가 확실합니다스스로 자백했습니다구속해야 합니다.”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정승화는 더 이상 김재규를 감쌀 수 있는 명분이 없어 결국 승인하고 말았다. 27 01 30바로 이 시각에 김재규가 정식 구속된 것이다김재규는 즉시 안가에서 서빙고로 넘어갔다. ‘무엇이 내게 이로우냐’ 이 철학으로 살아온 사람은 누구였고, ‘무엇이 정의냐의 철학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10 27김재규는 수사관 앞에 털어놓았다.
나는 1976 12 4일부터 정보부장으로 근무해 왔다정국이 시끄럽고 야당이 날로 극성을 부렸다이에 대한 나의 수습책이 실패를 반복하여 무능함이 노출됐다내 형제들이 이권 관련한 비리들을 저질러 경고 친서를 받았다군의 새까만 후배이고 연하인 차지철로부터 수차에 걸쳐 수모를 당했지만대통령은 이런 차지철만 편애했다곧 있을 중요 인사에 내가 포함될 것이라는 데 대한 불안감이 컸다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컸다부마사태의 소요가 서울·대구 등 5대 도시로 확산되면 경제가 몰락하고 정권이 끝장을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이때 거사를 하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으로 확신했다. 10.26 만찬 기회가 적기라고 생각했다.”
 
수사단장 이학봉 대령은 김재규와 잘 아는 사이였다김재규가 보안사령관이었을 때 보안사에 함께 근무했기 때문이다친화력이 좋은 이학봉 대령은 김재규가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필기를 하지 않고옛날의 상사와 부하와의 편안한 대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학봉 : “왜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저지르셨습니까?”
김재규 : “내 원대한 꿈이 앞섰다.”
이학봉 : “부장님은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 인정도 받고 빛이 나는 것이지대통령이 돌아가시면 부장님의 입지도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재규 : “모두가 나에게 절절매고 따르기에 거사 후에도 계속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다.”
이학봉 : “이번 거사에 어느 부대를 동원하려 하셨습니까?”
김재규 : “정승화가 내 편이라 그런 건 염려하지 않았다.”
이학봉 : “대통령을 시해하려면 누구를 시키든지 하시지 왜 부장님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셨습니까부장님이 직접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으시려고요?”
김재규 : “나의 심복인 안전국장 김근수를 시키면 내가 직접 하지 않은 것으로 다 처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전두환으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가 왔다.
네 접니다.”
이번 거사에 동원되는 부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그것부터 빨리 알아내.”
김재규가 단기필마로 그렇게 큰일을 저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이러한 전화 통화를 지켜 본 김재규는 전두환을 빨리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이학봉 : “이유만 정당하시면 금방이라도 만나 뵙게 해 드리지요말씀해 보십시오.”
김재규 : “지금 곧바로 혁명을 해야 해시간을 지체할 겨를이 없어매우 안타깝다빨리 만나야만 해.”
시간을 급하게 재촉했다하지만 이학봉 대령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면서 추가 정보를 유도했다정승화가 시해 현장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김재규와 차를 함께 타고 육본 B-2 벙커로 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김재규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다 된 밥에 김계원이 배신을 했다그러나 정승화는 나의 뜻을 받들었다육본 벙커에서 정승화는 부대 총출동 계엄 상황을 처리했다국방장관이 와 있었는데도 정승화는 나에게 보고도 하고 의논을 하면서도 국방장관을 돌려놓았다이것이 바로 그가 나를 받들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이학봉 대령은 이 부분을 또 전두환에게 보고했다전두환은 보안사 요원들을 궁정동 시해 현장으로 출동시켰다동시에 수사요원들을 국군서울병원에 보내 시신을 감시하던 정보부 요원들을 무장 해제시켜 체포했다서빙고 보안사 수사 요원들은 체격이 대단한 어깨들이었다이학봉 대령의 수사는 가속됐다김재규와 함께 차를 타고 B-2 벙커에 와서 국방장관의 승인 없이 병력을 동원한 정승화의 행위는 분명한 ‘내란 방조’ 행위라며 정승화를 체포할 것을 전두환에게 건의했다이에 전두환은 ‘알았어바로 체포해’ 하고 허락했다그러나 이내 다시 불렀다. “정승화는 이내 계엄사령관이 돼 있다지금 구속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극비로 내사를 더 하자.”
 
정승화를 추종하는 군벌이 동시에 들고 일어날 것을 염려했다그래서 10 28일 발표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제1차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정승화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김재규가 실토한 신문 내용은 실로 아찔했다.
11 8일과 17일 김재규는 ‘3단계 혁명계획을 털어놨다첫째정승화를 시해 현장에 유인하여 ‘공범자로 만듦으로써 ‘혁명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고 둘째정승화로 하여금 계엄을 선포케 하고 군부대를 동원해 주요 기관과 시설을 장악하게 하는 것이고 셋째, ‘혁명위원회를 발족하여 김재규가 의장이 되는 것이었다.
본인은 4월경부터 혼자 구상하여 왔습니다이조 이래 2인 이상이 역모를 해서 성공한 사례가 없었습니다김계원을 끌어들여 현장 목격자로 얽어 놓고정승화를 시해 현장에 끌어들여 공범자로 만들고정승화를 시켜 군을 동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였습니다본인에게는 분신과 같은 심복이 있었습니다안전국장 김근수입니다계엄이 일단 선포되기만 하면 즉시 중정으로 들어가 그에게 내가 주도한 범죄 내용을 자세히 말해주고 그에게 임무를 주려고 했습니다비밀보장을 위해 궁정동 현장에 남아 있을 중정 요원들을 모두 연행하여 남산에 감금하고현장 증거를 모두 인멸시키려 했습니다간부들을 소집해 대통령 사망에 대해서는 안전국장이 조사 중에 있으니 일체 잡음을 내지 못하도록 보안을 유지하려 했습니다육군 총장을 설득 또는 협박하여 혁명위원회를 발족하도록 하여 ‘10.26혁명 ‘국민혁명으로 전환할 계획이었습니다현 정부 조직을 최대한 그대로 활용함으로써 참여의식을 갖도록 하고 국민적 호응을 얻기 위한 홍보를 하려 했습니다혁명위원장은 본인이 하고부위원장은 총리가 하고위원장은 정승화로 하여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을 두고국회를 해산시키려 했습니다혁명검찰부와 혁명재판부를 설치하여 반혁명 분자를 처단하게 한 후 빠른 시간 내에 본인이 대통령으로 출마하여 집권하기로 계획을 짰습니다본인이 정보부장으로 정보를 분석해 보니 우리나라에는 지도자가 될 인물이 없고본인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면 대통령 시해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며중정의 조직력과 권력으로 군부세력을 장악할 수 있어본인은 일약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상의 김재규 구상을 보면 체포만 되지 않고 하루만 더 있었으면 성공할 수 있었다정승화는 김재규의 강력한 추천으로 참모총장이 된 사람이다특전사라는 최정예 부대를 지휘하는 정병주는 김재규의 안동농림학교 후배로 김재규가 5사단 36연대장을 할 때 대대장으로 인연을 맺어 계속 키워왔던 사람이고수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3군사령관 이건영은 김재규가 보안사령관을 할 때 주월 한국군 부사령관으로 내보냈고정보부장일 때 차장으로 데리고 있다가 3군사령관으로 내보낸 사람이다작전참모 하소곤수도기계화 사단장 손길남, 26사단장 배정도, 30사단장 박희모 모두가 정승화 군벌이었다이들 각자가 형성한 군 인맥이면 쿠데타를 한다 해도 성공할 수 있는 충분한 세력이었다이러하기에 전두환이 정승화 총장을그것도 방금 계엄사령관으로 날개를 단 정승화를 곧바로 체포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인물 김재규
 
궁정동에서 정승화와 식사를 같이 하고 김재규를 육본 벙커에까지 수행했던 차장보 김정섭은 1979 11 18 YH사건 처리에서 보여준 김재규의 과격성에 대해 진술했다.
 
“1979 8 9 10시경, YH회사 200여 명이 회사 내 문제를 가지고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였습니다이튿날인 10 10시경김계원과 김재규가 강제 해산을 결정했습니다사람들이 투신하면 그물망과 매트리스 등이 필요한데 당시는 숫자가 부족했습니다실무자들은 진압을 며칠 연기하자고 건의했습니다하지만 김부장의 강경 진압 지시로 안전 대책이 부족한 상태에서 11 02시에 경찰이 강제진압을 하다가 한 명의 여공이 투신 사망했습니다.”
 
“1979 8월 중순경, YH사건의 후유증과 도시산업선교회 및 가톨릭농민회 등의 반정부 활동에 대한 청와대 대책 회의가 있었습니다여기서 김재규 부장은 ‘긴급조치 9호로는 칼날이 무디니까 아주 강한 10호를 만들어 주시라고 건의했습니다이후 10월 하순경 CPX 훈련기간에 B-1 벙커에서 같은 회의가 있었습니다이때에도 김부장은 ‘각하긴급조치 10호를 만들어 주십시오그래야 정국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또 다시 건의했습니다이에 대해 각하는 ‘학생·근로자·종교인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 정국이 수습되겠느냐당분간 9호를 가지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시오.’ 이렇게 지시하였습니다.”
 
김 부장은 부산 계엄 현장에 다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산에 가 보니 300만 시민 중 70% 이상은 유신에 호의적이더라시가지와 항만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30% 이하의 반대 세력은 행정기관이 잘만 선도하면 회복될 것 같더라.’ 김재규 부장은 소영웅주의·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으로 그를 따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김정섭의 진술은 1979 11 9일자 김계원의 진술과 일치한다.
 
“1979 8 9 10:00, YH 노무자 200여 명이 신민당사에 집결하여 계속적인 취업을 요구했습니다배후에는 도시산업선교회가 있었고이에 노동계와 종교계가 합세하여 강력한 대정부 투쟁으로 진전될 우려가 커져 있었습니다수습책을 연구하기 위해 8 10, 10:00에 청와대 제 사무실에서 김재규·유인혁 정무1수석·고건 정무2수석·김정섭 등이 모여 논의했습니다중론이 나왔습니다보사부 장관이나 노동청장이 신민당사에 가서 해명과 시책을 설명하자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김재규는 ‘고위 관리가 신민당에 가서 사과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전례가 될 것이다금일 중으로 경찰을 투입해 강제 해산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날 야간에 경찰을 투입해 강제해산을 시켰습니다.”
 
그의 혁명계획에는 “반혁명 분자를 처단한다라는 구절이 들어있다이렇게 과격한 김재규를 ‘민주화를 내건 운동권들은 “유신의 심장에 활을 쏜 민주화의 투사라 극찬을 했다이 말을 처음 지어낸 사람이 바로 김대중이었다.
 
혐의 지우는 정승화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된 김재규의 다급한 입장은 무엇이었을까동물의 왕국에서 천적들끼리 싸울 때 저마다 몸을 크게 만들어 위세를 과시하듯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이미 돌아가고 있으니 자기에 협력하라는 제스처를 크게 취하는 것이었다국방장관실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었던 김재규는 이미 최규하로부터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것이 당시 계엄사령관의 위세였다이런 정승화가 시해 현장 바로 옆 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를 함께 타고 궁정동 안가로부터 B-2 벙커로 함께왔다는 사실정승화가 자기편에 서서 국방장관이 옆에 와 있는데도 무시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한 사전 조치를 취했고그 조치 사항을 자기에게만 보고하고 자기로부터 지시받았다는 사실을 수사관에게 또박또박 주입했다세상이 이미 김재규와 정승화 체제로 바뀌어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려 한 것이다전두환을 자기에게 불러달라고 다급하게 요청한 것은이 중요한 사실의 의미를 전두환이라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이 내용이 그대로 전두환에게 전달됐고김재규의 뜻대로 전두환은 김재규와 정승화 두 거물이 형성해 놓은 군벌 세력에 촉각을 곤두세웠고그 군벌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시해 사건에 정승화가 관련돼 있었다는 사실을 10 28일 발표에서 일단 제외시켰던 것이다.
 
김재규는 수사관에게 정승화는 자기가 키운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반면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는 본인은 김재규를 잘 모르고 가까이 지낸 사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정승화의 이중플레이가 시작된 것이다계엄사령관인 정승화는 수사관을 불러 받아 적으라고 했다. 11 1일이었다.
나는 김재규를 잘 모른다가까이 지내는 사이도 아니다그는 나를 이용하려 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에게 이용당할 사람이 아니다그는 나와 성격 차이가 크고관료적이며 고식적인 사람이다그와 같이했던 시간도 별로 없다내가 총장이 된 것은 그의 추천으로 된 것도 아니고 그의 영향력으로 된 것도 아니다.”
 
반면 김재규는 12 29 ‘정승화 내란 방조 사건’ 조사 당시 정반대의 진술을 했다. “정승화 총장을 이용할 계획은 1979 4월부터 줄곧 했다그가 내란에 가세할 것으로 판단했다그는 내가 총장으로 추천했다. 1979 1월 각하가 내게 총장을 추천하라고 말씀하셨다나는 감찰실장에 지시하여 박희동 대장·김종환 대장·정승화 대장 세 사람을 올리되정승화가 가장 적임자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작성하라 했다그 후 1979 2 1일에 정승화가 총장이 됐다나는 이 발탁 사실을 당시 1군사령관을 하고 있던 정승화에 전화를 걸어 미리 알려 주었다그와는 동향인데다 평소 친밀하게 지냈다.”
 
12.12로 전격 구속되자 정승화는 종전에 했던 말을 뒤집었다. 12 15일이었다. “오래전부터 많은 인연으로 자주 만났다김재규가 대통령 신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적극 접근했다그의 도움으로 총장이 되었다내가 총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각하의 결재 사실도 김재규가 가장 먼저 알려 주었다. 1979 10 추석 선물로 김재규가 300만 원을 주었을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1979 300만 원은 얼마나 큰 돈이었나강남 아파트 30평형이 200만 원김대중이 5·18 폭동 자금으로 광주 정동년에게 준 돈이 500만 원이었다지금 현재 강남의 30평형 아파트 가격이 얼마인가강남아파트 한 채 반값에 해당하는 이 엄청난 돈을 추석 선물로 받은 지가 불과 1개월 전이었으니 10 26일 당시 정승화의 김재규에 대한 충성심이 어떠했겠는가이 추석 선물은 계획적인 매수공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진실한 사실이었고이 진실한 사실은 전두환과 이학봉이 지휘하는 합수부(합동수사본부)의 상식이었는데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는 어떻게 이 진실한 사실을 지우려 했는가김재규가 서빙고 분실에서 위와 같은 진실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정승화는 끈질기게 주장했다. “나는 김재규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김재규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파악한 수사관들이 여기저기 찔러볼 때마다 정승화는 버럭 화를 냈다. “너희들이 감히 총장의 말을 못 믿는 것이냐?”
 
내사가 진행 중이라는 낌새를 눈치 챈 정승화, 10 28일 전두환에게 시해 당일의 정황을 설명해 줄 테니 수사관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10 29일 이학봉 수사1국장과 검찰에서 파견된 정경식 검사 등 2명의 수사관이 총장실로 갔다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4시간 동안 정승화가 말해준 요지는 간단했다.
나는 김재규와 교분이 전혀 없다.”
나는 안가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몰랐다. 10 26일에 간 것이 처음이었다.”
김재규가 대통령과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그 장소는 청와대 경내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자하문 밖에서 나는 몇 발의 M16 총소리를 들었다.”
노재현의 지시로 김재규를 체포했다.”
진술 내용이 앞뒤가 맞지 않을 때마다 수사관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하면그때마다 “당신들이 감히 계엄사령관의 말을 의심하느냐라며 윽박질렀다.
곰곰이 생각한 정승화는 두 차례 더 수사관들을 불렀다. 10 31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11 1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였다.
노재현의 지시로 김재규를 체포한 것이 아니라 총장 단독으로 김재규를 체포했다고 수정하라 했고, ‘차 안에서 20사단을 동원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을 삭제하라고 했다. ‘10.26 이전에 김재규를 만나 김영삼이 민주당 총재로 당선된 배경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라는 내용도 삭제하라 했다.
 
10 29일 오후 8시부터의 조사를 앞두고 정승화는 그날 낮에 조사에 영향을 주려는 심리전 공작을 했다. 1·2·3군사령관과 1군단·5군단·6군단 군단장들을 초청하여 오찬을 베풀었다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다음 자기를 중앙정보부로 유인하려 했지만 역으로 내가 그를 육군본부로 유인했다.”
김재규에 대한 체포도 내가 결심해 지시했다.”
 
김재규 내란 음모를 저지한 일등 공신이 바로 본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4성 장군 3명과 3성 장군 3명을 오찬 모임에 초대한 것이다자신의 범죄 행적은 지우고 본인이 김재규의 내란음모를 저지한 1등 공신임을 주위에 부각시킴으로써 입지를 강화하게 되면 그것이 사회 여론이 될 수 있었다이를 위험하게 여긴 이학봉 수사1국장은 11 2일 또다시 정승화의 일탈 행위를 보고하면서 연행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이 보고를 받은 전두환이 노재현 장관의 의사를 넌지시 떠 보았다노재현 장관은 몸을 사렸다아니 정승화를 보호했다.
계엄사령관을 지금 조사하면 난리가 나고 시국이 불안해진다정국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
맞는 말일 수도 있다하지만 사회에는 10.26 시해사건에 정승화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개입돼 있을 것이라는 의혹의 분위기가 팽배해 가고 있었다이런 판인데 정승화를 가만둔 채 어떻게 시국이 안정되겠는가바로 여기에 하나의 의문이 끼어들 수 있다. ‘노재현과 정승화가 한편일까?’ 노재현 장관과 정승화는 이미 과도정부 수립에 주역이 돼 있었다. ‘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 103~104쪽에서 정승화는 이를 인정했다.
“1979 11월 초노재현 장관은 국무위원들이 다음 대통령으로 최규하가 가장 무난한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왔다나는 이에 동의하며 군은 내가 설득할 테니 장관께서는 국무위원들을 단합시켜 최규하 총리를 잘 설득하시지요라고 말했다노재현 장관은 국무위원들이 자기의 눈치를 살피는 듯 하다고 말했다우리 두 사람은 최규하가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서 적임자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과도정부는 1년 전·길어도 2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했다다음날 장관은 국무위원들이 최규하 총리의 동의를 얻어냈다고 알려왔다.”
 
같은 책 105~106쪽에도 이 두 사람의 정치 개입 사실이 기재돼 있다. “대통령 후보 등록 마감일을 며칠 앞둔 11 15일 조찬회의가 있었다주요 논제는 김종필 문제였다김종필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나와 노재현 장관은 내가 공화당에 압력을 넣는 것이 좋겠다는 데 합의했다나는 공화당 길전식 사무총장과 장경순 정책위 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미 최규하 총리를 대통령으로 밀기로 합의했는데 공화당이 후보를 내면 혼란만 가중되니 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그날 공화당 의원 총회는 김종필을 후보로 옹립하기로 가결했고김종필이 이를 수락하지 않는 형식으로 입후보를 포기했다.” 정승화와 노재현이 정국을 주도했고정승화가 명실상부한 최고자였던 것이다.
 
10월 말부터 정승화는 합수부에 ‘김대중 내란 사건’ 조사를 빨리 종결하라고 여러 차례 압박했다사건을 자신이 관할하는 계엄보통군법회의에 빨리 송치하라는 압박이었던 것이다전두환의 수사망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총장 연루설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는 본연의 임무를 제쳐놓고 전방 지휘관들과 후방 지휘관들을 수시로 방문하여 자신은 시해 사실과 무관하며김재규를 체포하라 지시한 장본인이 바로 자기였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었다여기에 더해 대통령도 자기들끼리 정했다이런 전횡에 대해 내각과 정치계는 일체 함구했다이대로 가면 세상은 김재규·정승화·노재현 체제로 굳어지게 돼 있었다전두환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 수 없었다. 20일이라는 수사 종결 시한은 가까워지고수사 절차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고전두환은 초조했다. 11 6 전두환은 서둘러 12일 동안 조사한 결과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정승화의 압박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12 6일의 수사 결과 핵심 발표문은 두 가지였다.
군부 또는 여타 세력의 조직적 관련이나 외세의 조종이 개입된 사실이 없다.”
사건 당시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의 초청으로 궁정동 안가에 있었고그후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본으로 갔다.”
 
이 두 번째 항목은 전두환이 정승화와의 머리싸움 결과로 그나마 발표문에 넣게 된 것이다이 항목에 대해 국민은 처음으로 경악했다그동안 나돌던 ‘총장 연루설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정승화가 김재규 행위에 묵시적으로 동조한 사실이 드러나 있는데이 엄연한 동조행위를 왜 합수부가 조사하지 않느냐합수부도 야합세력이 아니냐여론이 한 단계 더 거칠어졌다.
 
하지만 전두환은 울분을 참으면서 정승화를 뺀 나머지 8명만 피의자로 하여 육본 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사건을 송치했다. 11 13일이었다이로써 김재규 내란 음모 사건은 전두환의 손을 떠나 정승화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이로써 합수부는 닭 쫓던 강아지 신세가 됐고김재규에 대한 생살여탈권은 정승화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정승화의 김재규 살리기
 
육본 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한 8명의 피의자 중에는 경호실 차장 이재전 중장(3)이 있었다전두환은 그를 직무유기죄로 구속한 상태에서 송치했다이재전은 직무를 유기한 것만이 아니라 범인 은닉행위도 범했다여기에서 ‘송치라는 말은 경찰이 검사에게 ‘기소 의견으로 보내는 절차를 의미한다시해 직후인 8 35분 경이재전은 김계원으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았다. “각하가 시해당했다경호실장도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다경호 차장이 직무를 대행하라병력 충돌을 일절 하지 마라보안을 지켜라경거망동하지 마라.” 이 엄포를 들은 이재전 장군은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고 김계원의 부당한 지시를 따랐다이것이 범행인 것이다그는 어떻게 했어야만 임무에 충실한 것이 되었는가대통령과 직속 상관인 차지철의 시신을 확인하고만찬 장소에 병력을 보내고 대통령 주치의를 병원으로 보내고비상자동규칙에 따라 경호대에 ‘호랑이 1를 발령하여 부대를 전투태세로 전환해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재전은 경호실로 돌아와 간부들에게 대통령 유고 사실을 숨기고 처장급 이상만 소집하여 병력 출동 금지령만 내렸다이에 따라 총소리를 듣고 안가로 달려가던 ‘태양 사찰 요원들이 가다 말고 철수했다거꾸로 경호실 간부들이 각하 시해 사실을 다른 곳들로부터 전해 듣고 항의하자 마지못해 처장회의를 열었다. “각하가 시해됐다상황은 이제 끝난 것 같다.” 처장들이 나서서 시신을 보호하고 현장 조사를 실시하자고 건의 했지만 이재전은 단칼에 묵살했다.
 
이렇게 명백한 죄가 있어서 합수부가 이재전을 구속 송치했던 것이다그런데 정승화는 집요하게 군 검찰에 압력을 넣어 불기소처분하게 했고그 어떤 징계도 내리지 못하게 했다. 12 5일이었다도대체 이재전이 무엇이기에 정승화는 여기에 다 걸기를 했을까이재전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린 사람은 김계원뿐만이 아니라 정승화도 있었다정승화가 B-2 벙커에 오자마자 조치한 것은 이재전과 전성각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접근금지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정승화로부터 이런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재전 재판 과정에서 알려지면 이는 정승화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재전이 재판정에 서는 것을 죽자 살자 방해했던 것이다정승화는 이재전뿐만 아니라 김계원에 대한 기소에 대해서도 적극 방해했다같은 이유에서였다김계원을 감히 기소하지 못하게 하다니!
 
김재규가 군법회의에 회부되자 시체에 까마귀 떼 덤비듯이 이른바 재야세력이 달려들었다. “영웅이다” “유신에 마침표를 찍은 민주화투사다” “유신의 심장을 쏜 민주화투사다.” 구명운동도 확산됐다김재규도 고무되었고 정승화도 고무되었다이에 따라 김재규의 말도 바뀌었다합수부에서는 “내가 집권하기 위해 대통령을 시해했다라고 했는데재판정에서는 “유신체제에 비수를 꽂기 위해 대통령을 쏘았다라고 했다재야세력이 ‘영웅이다’ ‘민주화 투사다’ 띄워주니까 그 스스로 더 떠올랐다오로지 그만이 대통령 자격이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나는 유신체제의 폐해와 부작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힘을 가진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대통령 시해 방법밖에는 없었다이런 뜻을 실행에 옮긴 후 자살하거나 망명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혼란한 정국을 설거지하고내가 구상한 대로 통치하기 위해서였다여당에는 인물이 없다김대중은 사상적으로 하자가 있다김영삼은 역량이 미미하다이철승은 사꾸라라서 지지기반이 없다그래서 이후의 정국을 이끌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란 음모 사건 소송기록 1079~1090쪽에 있는 기재다.
 
처음으로 정승화가 추임새를 넣었다아니 폭탄 발언을 했다이로부터 1주일 후인 11 24계엄 선포 이후 처음으로 민과 군이 참여한 ‘계엄확대회의가 열렸다. “10.26 사건은 애석하지만국민과 국가 전체의 불행은 아니다박 대통령 체제는 잘못되었으므로 시정되어야 한다.” 본심을 드러내는 놀라운 발언이었다이 발언에 경악한 장군들이 심하게 반발했다. 2군사령관인 진종채육사 교장 백석주, 3군사령관 이건영 등의 반발 발언에 이어 장군들이 뒤숭숭하게 수군거렸다. “대통령이 서거한 지 며칠이 지났다고 이런 말을 하느냐그런 말을 하려면 살아 있을 때 해야지 왜 지금 하느냐박 대통령 체제가 잘못되었다면 여기 있는 군 지휘관들도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냐···.” 모든 장군이 흥분했다회의는 중단됐다.
 
반면 정승화는 10.26 이전에는 이런 말을 했었다. “박 대통령은 이 나라의 태양이요민족의 지도자요우리나라 중흥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다.”
 
이 확대회의에 있었던 황영시는 전두환을 따로 찾아와 항의했다.
김재규 수사를 철저히 하라디디하게 하니까 이런 망언이 나오는 게 아니냐정승화의 말은 김재규가 영웅이라는 게 아니냐?” 이런 반발이 있었는데도 정승화는 이틀만인 11 26언론사 사장들과 편집국장들을 초청하여 이른바 ‘3김 비토론을 발표했다. “김대중은 사상적으로 불투명한 사람이다김영삼은 무능하다김종필은 부패했다만일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면 군은 쿠데타를 일으켜서라도 막을 것이다.” 1주일 전인 11 17김재규가 재판정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받아 언론에 발표한 것이다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이는 계엄사령관인 자기가 김재규를 반드시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힌 폭탄발언이었다. 1979 10 26일부터 12 6일까지는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는 시기였다최규하가 권한대행을 하고 있는데도 정승화에게는 최규하가 안중에도 없었다그가 김재규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최규하가 권한대행이라는 데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이 발언은 정가와 군에 엄청난 충격이었다야당도 반발했다그에게 최규하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로 증명이 됐다계엄군법회의로 넘어간 공소장에는 ‘최규하가 김계원으로부터 김재규가 시해범이라는 말을 들었다라는 기재가 있다정승화는 전창렬 군검찰부장에게 이 부분을 수사하라고 압박했다이 조사는 최규하를 주눅 들게 할 수 있었다최규하의 약점을 정승화가 꽉 잡고 있다는 점을 최규하에게 인식시켜주기 위한 제스처였다최규하를 주눅 들게 했으니세상에는 계엄사령관이 최고였던 것이다이 어마어마한 지시를 받은 전창렬 군검찰부장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생각다 못해 의논 상대로 전두환을 찾아갔다.
 
전두환 : “각하정승화 총장이 군검찰에 각하를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그래서 군검찰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최규하 : “좋다언제든지 와서 조사하라.”
 
이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는 정승화의 불꽃에 김재규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었다. 12 8김재규는 법정에서 ‘정승화가 자기의 범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협조했다라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이어서 12 10일에 열린 제3차 공판에서 김재규 변호인이 폭탄 발언을 했다. “계엄사령관은 내심 김재규의 선처를 바라고 있다.” 사실 이 말은 당시 돌아가고 있는 시국을 정확히 읽은 것이었다.
이 와중에 정승화는 1979 11 16그의 심복을 중용하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전두환 합수부장의 입장에서 보면 설상가상·점입가경의 경지였다사태를 더 이상 방관하면 정승화·김재규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여론도 확산됐다이학봉 수사1국장이 또 전두환을 압박했다. 12 6일이었다.
 
이학봉 : “더 이상은 안 됩니다정승화를 체포해야 합니다.”
전두환 : “12 12일로 한다.” 그리고 연행 지침을 내렸다.
 
1) 대통령 보고 시점에서 정확히 30분 만에 연행조를 총장 공관에 보내라.
2) 연행조는 우경원 합수부 수사2국장·허삼수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및 7명의 합수부 수사관으로 하라.
3) 총장 공관에는 1개 분대 규모의 헌병이 특별경계를 하고 있고외곽에는 50여 명의 해병대 병력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관을 보호하고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당시 합수부에 배속돼 있는 33헌병대 병력 60여 명을 활용하라.
  
서울구치소에서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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