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5]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해진 에델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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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 배경은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높은 산 바위 틈에 피는 솜다리꽃… 꽃받침에 털이 송송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01 09:25:04

설악산이나 한라산 같은 높은 산지, 바위틈에 주로 피는 솜다리꽃.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자란 꽃받침을 보면 이름을 그 모습에 어울리게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피기도 하지만 꽃 색깔이 화려하지 않고 크기도 작다. 곁에 있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꽃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덕분에 유명해졌다. 솜다리가 아닌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으로.

내 조국 영원히 축복해 주길…

‘사운드 오브 뮤직’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원작은 영화 주인공 마리아 폰 트라프의 회고록 ‘트라프 가문의 가수들 이야기’다. 영화에서 트라프 대령과 마리아가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 오스트리아는 나치 독일인 제3제국에 합병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트라프 대령이 집 앞에 게양된 제3제국 국기를 찢으면서 심각한 갈등이 예고되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치에 반대하는 트라프 대령에게 소집 명령이 전해진 것이다.

다음 날 당장 출두하라는 영장을 받은 대령은 가족을 이끌고 오스트리아를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대문 앞에서 게슈타포에 붙들리자 민요대회에 가는 중이라고 둘러댔다.

결국 그들 가족은 독일군의 감시를 받으며 민요 대회장으로 향했다. 무대에 선 트라프 대령은 “내 조국을 영원히 축복해 주길”이라는 가사로 마무리되는 노래 ‘에델바이스’를 부른다.

역사를 공유한 오스트리아와 독일

원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민족은 같은 게르만계로, 두 나라는 동프랑크 왕국부터 신성 로마 제국까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19세기, 이들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이라는 두 강국을 유지하면서 서로 자기 나라 중심으로 독일이 통일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인 1871년, 오스트리아가 제외된 상태로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 독일 제국이 탄생했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되는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번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제국은 독일과 함께 패전국이 되었다. 그 결과 제국은 완전히 분해되었고 오스트리아는 작은 공화국이 되었다.

이 오스트리아 공화국과 독일 통합이 꾸준히 거론되는 가운데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았다. 그는 오스트리아 린츠 출신이다. 1936년에 맺은 독일·오스트리아 협정으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약속하고 오스트리아 나치당의 정치 활동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1938년 독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희망한 오스트리아에서는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히틀러는 크게 화를 내며 “이는 사기 투표이니 독일은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고, 독일군은 3월12일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었다. 예상과 달리 독일군에 대한 오스트리아 국민의 저항은 없었다.

독일군은 오히려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오스트리아로 진주했다. 독립을 추진하던 미크라스 대통령이 사임하고 권한대행이 된 자이스잉크바르트는 3월13일 빈에서 히틀러와 만나 병합에 관한 법률안에 서명했다.

3월14일 히틀러는 고향인 린츠를 방문했고 다음 날인 3월15일 빈의 헬덴 광장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나의 조국이 독일국에 들어왔음을 선언하노라. 독일 민족의 가장 오래된 동쪽 지방이 이 시점으로부터 독일국의 가장 새로운 요새가 되었다. (…) 나의 정치적인 투쟁은 국민의 사랑으로 쟁취한 것이다. 내가 국민의 사랑을 직접 경험한 것은 국경을 넘어 들어왔을 때였다. 우리는 군림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해방자로서 온 것이다.”

‘에델바이스’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노래

독일군이 오스트리아 전역을 접수한 이후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나치당 감독 아래 치러진 투표 결과 병합 찬성이 97%로 집계되었다. 투표지가 찬성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고 독일군 앞에서 공개 투표를 한 곳도 있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이 완성된 것이다.

이듬해인 1939년 독일이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같은 편에서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는 독일과의 통일을 영원히 금지하고 영세중립국 지위를 유지한다는 조건을 스스로 내걸었다. 그 대가로 1955년 점령군이 철수하고 오스트리아는 주권을 회복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에델바이스’ 노래는 오스트리아의 민요이며 그 꽃은 나치에의 저항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런데 영화 속 노래는 브로드웨이 공연을 위해 미국에서 만들어진 노래다.

아이러니하게도 에델바이스 꽃은 나치 독일군 산악부대의 상징이었고 1939년 만들어진 나치 독일 군가의 소재로도 쓰였다. 이 군가는, 가사에 나치는 물론 전투에 관련된 내용도 전혀 없기 때문에 오늘날 독일 군대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꽃은 어떤 국가나 이념의 전유물로 머무르지 않음을 이 사례가 보여 주는 듯하다. 꽃은 그 자체로 강인한 생명력을 발하고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울림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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