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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11] 나당 외교 ②
당과 함께 백제를 친다면 고구려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겁니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17 06:30:20
 
 
이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보게, 괜찮은가?”
은고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웃고 있는 미마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과 합일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가 말하는 것은 무용에 뜻을 둔 자라면 누구나 다다르기를 소망하는 궁극의 목표였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만큼은 무념무상이야.”
은고는 순간 묘한 질투심이 솟구쳤다. 어린 시절에도 늘 앞서 가더니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자신이 따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는 벗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완성된 미마지의 춤을 간절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자왕은 처소에서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분을 삭이고 있었다. 금화가 국왕의 화를 풀기 위해서 갖은 아양을 떨었지만 그의 마음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의자왕은 자신이 백제를 새롭게 일으켜 세웠다고 자부했다. 성왕이 신라에 당했던 치욕을 되갚아 주었고, 고구려와 동등한 입장에서 우호 협정을 체결하여 백제의 위상을 드높였다. 백성의 희생이 어느 정도 있기는 했지만 나라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런데 귀족들은 이를 부풀리고 왜곡해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
의자왕은 대귀족의 반발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거센 비난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의자왕은 성장한 백제의 위상에 걸맞은 왕실의 위엄을 주변국에 보여 주고자 했다. 궁궐과 성벽을 새로 짓는 역사도 그 일환이었다. 이에 관해 귀족들은 사치와 방종에 빠져 국부(國富)를 흥청망청 낭비하고, 이도 모자라 백성의 고혈을 빨고 있다고 매도했다.
 
궁궐에서 가무 공연이 자주 열린 것은 의자왕이 총애하는 금화가 이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많은 후궁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금화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임금이란 신분을 떠나 남자로서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흠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귀족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금화를 나라를 망치는 요녀라 부르고 국왕을 폭군으로 몰아갔다.
의자왕은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금화가 좋아하는 기악무를 통해 자신을 비난한 일에는 분노가 치솟았다. 예인(藝人)은 민심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이를 이용하는 것은 자신을 능멸하는 일이요, 줄곧 쌓아 온 국왕의 권위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었다. 분명 그 뒤에는 대귀족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좌평 성충(成忠)이 폐하를 뵙고자 합니다.”
시위의 전언에 의자왕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이 행하는 일이라면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려 드는 성충이었다.
지금 짐이 몹시 피곤하니 다음에 다시 들라 하라.”
말을 전하러 갔던 시위가 난처한 목소리로 다시 아뢰었다.
국가의 중대사라서 지금 꼭 뵈어야겠답니다.”
국왕으로서 나라의 중요한 일에 대해 의논하고자 하는 대신을 내칠 수는 없었다. 의자왕은 마지못해 알현을 허락했다.
금화는 아름다운 외모만큼 현명한 여자였다. 자신을 보는 대신들의 눈이 곱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되도록 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건너갔다.
 
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성충이 들어와서 의자왕에게 절을 올렸다.
이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오?”
국왕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소신 성충, 불충의 죄를 범했습니다. 당장 엄벌에 처하신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늘 오만한 인물이 들어서자마자 죄를 고했기에 의자왕은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대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오?”
성충은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답답해진 국왕이 부드럽게 다독였다.
그대가 사심을 품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소. 어서 말해 보시오.”
좌평은 그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실 미마지를 궁으로 들여보낸 것은 소신입니다. 폐하께 많은 간언을 올렸지만 받아들이지 않으시기에 개로왕의 고사를 떠올려 이와 같은 계책을 썼습니다. 미마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그를 풀어 주시고 대신 신을 벌하소서.”
의자왕이 말이 없자 성충이 다시 말했다.
폐하께서 언젠가는 정도(正道)로 돌아오실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악무를 통해 일깨워 드리려 한 겁니다.”
개로왕의 고사에 빗대었다는 말이 의자왕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의 말에 수긍한다면 자신이 폭군이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었다.
의자왕은 울분을 참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대의 충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독선이고 아집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니 참으로 슬프구나.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여봐라, 이 자를 옥에 가둬라!”
의자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밖에서 시위들이 뛰어들어와 좌평을 끌어냈다. 성충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순순히 끌려나갔다.
의자왕은 군사들에게 붙잡혀 가는 성충을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비록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신하지만 나라와 백성을 아끼는 마음 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성충이 감옥에 갇히자 의자왕을 둘러싼 세력 간의 갈등이 더욱더 고조됐다.
 
한편 금성에 도착한 인문은 성문으로 들어선 후 잠시 머뭇거리다가 궁궐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 그의 식구들이 사는 곳은 사가(私家)가 아니라 대궐이었다.
궁궐로 뻗어 있는 큰길은 여전히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궁성 앞 계림(鷄林)의 푸름도 변함이 없었다. 도성 안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분위기였다. 당항성을 거쳐 오지 않았다면 신라가 전란의 위험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년 만에 보는 낯익은 거리와 정겨운 사람들의 복색, 그리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신라 말이 그의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인문은 잠시 시름을 잊고 고향의 내음을 즐겼다.
궁성문을 지나려 하니 수비병이 막아섰다.
무슨 일로 오셨소?”
부리부리한 눈매의 군사가 나서며 물었다.
인문은 군사들의 근무 태도를 알아보기 위해 짐짓 꾸며댔다.
폐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소. 이는 나라의 백년대계에 관한 일이오.”
인문은 나라가 부흥하려면 언로(言路)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몇 년 동안 고종의 측근으로 지내면서 나라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당 조정은 태종 이후로 혼란스러웠던 분위기를 추스르고 백성을 하나의 테두리로 묶어 나갔다. 이를 위해서 많은 정치적 배려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차별 없는 인재 등용과 각 지방의 요구와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점이었다.
 
인문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능가하는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신분 차별 없이 우수한 인재를 키우고,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백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라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왕통을 잇는 성골과 귀족 세력을 이루는 진골만이 정치의 주류에 편입될 수 있었다. 6두품 이하 품계나 지방 호족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신라 사회는 법제를 통해서 신분에 따른 차등을 공식화하고, 5등급 대아찬 이상의 고위 관직은 진골 이상의 귀족만이 오를 수 있게 했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인재가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사장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인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나라의 큰 손실이었다. 게다가 이 때문에 생겨나는 위화감은 나라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했다.
 
인문은 부왕이라면 골품제의 폐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리라 여겼다. 그는 성골만이 왕위를 계승하는 법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 왔고, 김유신과 같은 소외된 가야계 인사들을 적극 포용하고 있었다. 이제 신분제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었다.
인문은 언로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궁성문에서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자 했다.
잠시 기다려 주시오. 그리 중대한 일이라면 당장 안에 연통을 넣으리다.”
수비병은 인문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지난날이었으면 당장 경을 치고 쫓겨날 일이었다. 인문은 병사의 행동을 보고 신라의 앞날이 어둡지 않다고 여겼다.
이때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돌아왔으면 어서 가서 부모님을 뵐 일이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인문은 웃으며 돌아봤다.
대장군께서는 여전하시네요.”
그에게 대장군이라 불릴 사람은 김유신뿐이었다.
그동안 좀 야윈 것 같구나.”
고향 산천이 눈앞에 어른거려 침식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외숙부님 얼굴에 근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인문의 어머니가 유신의 누이였으니, 사적으로 그는 인문의 외숙이었다.
너도 당항성을 지나왔을 테니 그곳의 상황을 보았을 거다. 당항성을 빼앗기면 신라는 적들에게 둘러싸이는 형국이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하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구나.”
인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신은 금세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안으로 들자. 어서 폐하를 배알해야지. 무척 기뻐하실 거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수비병은 그제야 자기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당나라에서 숙위로 있는 둘째 왕자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뒤늦게 군례를 올린 후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나는 당대 최고의 장군이자 대왕의 둘도 없는 막역한 벗이고, 다른 하나는 학식과 인품으로 당나라 임금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문사(文士)이자 무열왕의 총애를 받는 왕자였다. 보기만 해도 가슴 뿌듯해지는 인물들이었다.
 
무열왕을 알현한 인문은 그동안 가슴에 쌓아 두었던 그리움을 마음껏 풀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급박히 돌아가는 정세는 그에게 마음 편히 귀향의 소회를 털어놓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인문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당나라는 조만간 고구려를 공격할 겁니다. 다만, 그에 앞서 백제를 먼저 쳐서 협공당할 위험을 없애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당과 함께 백제를 친다면 고구려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군과 합류할 수 있는 거점인 당항성을 수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문은 무열왕에게 당 고종의 의중과 조정의 상황을 설명했다.
먼저 당항성의 병력을 보강하고 그곳으로 통하는 길목에 성채를 쌓아 이중삼중으로 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합니다. 언제 다시 고구려군이나 백제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서둘러야합니다.”
인문은 토목(土木)에 조예가 깊었기에 공사 책임자로서 적격이었다.
 
[글 임동주 그림 이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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