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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라인야후 사태와 영화 ‘하얼빈’ 기시감
▲ 임명신 국제·문화부장
라인야후 사태가 소강 국면이다. 애당초 업무적 차원에서 수습할 일이지 외교 문제로 비화시킬 사안은 아니었다. 연내 개봉 예정인 영화 ‘하얼빈’ 스틸컷 공개 후 안중근 역 현빈을 보고 일본 팬들 충격이 크다는 소식을 접하니 더 착잡했다. 라인야후 사태든 ‘하얼빈’이든 매사를 선악(善惡) 구도로 몰아 가는 우리 사회의 관성을 느낀다.
 
지난달 일본 당국이 개인정보 51만 건 유출을 문제 삼아 네이버가 대주주인 라인야후의 지분 조정을 권고했다. 이 소식에 국내 여론은 ‘IT 후진국 일본이 한국산 플랫폼 라인을 강탈하려 한다’며 들끓었다. 운영사가 중국에 있다는 점을 들어 데이터 안정성 의문을 제기한 1차 행정지도에 라인야후 측 대응이 미흡했고 실제 사고가 터져 ‘지분 조정’까지 거론된 것으로 보인다.
 
‘라인’은 일본 최대 검색포털 야후와 함께하며 소프트뱅크와 50%씩 지분을 보유한 현재의 라인야후로 성공적 현지화를 달성했다. 일본 전체 인구 1억2000만 명 중 9600만 명이 사용한다니 일본의 국민 메신저다. 택배‧우편물 등 일상생활 및 행정 업무에까지 이용되는 가운데 라인야후의 기술 지원 주체인 네이버클라우드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개인정보 유출은 그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네이버클라우드와 라인야후의 공동출자로 일본 내에 관리 회사를 하나 만들면 된다, 지분 조정까지 갈 필요 없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일본 당국이 요구한 답변 기한 7월1일까지 그저 시장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 될 것 같다. 한국 측 관련자도 ‘구국 논리’ 대신 ‘비즈니스 논리’로 임하는 게 최선이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모로 상보적이다. 서로 다른 기질‧성향, 그로 인한 상이한 장기(長技)가 잘 어우러질 때 윈윈한다. 지난 수십 년간 증명된 사실이다. 그런데 20세기 말까지 효과적인 협업·참조 대상이던 한·일 관계가 21세기 들어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외교에 유연했으나 그가 영입한 청년 인재들의 세계관·역사관이 반일‧반미 기조인 것과 무관치 않다. 이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주류로 성장하면서 한‧일 간 크고 작은 트러블에 합리적 수습을 방해한 혐의가 짙다. 2019년 여름 반일 광풍을 돌이켜 보자. 
 
발단은 이른바 징용공 소송 판결 및 후속 조치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에 끌려간 게 아니라 고수입을 위해 자원한 해외 취업이었기에 ‘일제시대 조선인 노무자’라고 지칭하는 게 맞다. 전쟁 발발로 일터에 발이 묶여 원치 않는 노동을 강요당한 것에 대한 위자료 요구가 소송의 본질이다. 다만 이는 1965년 청구권협약 때 정리된 것으로 봐야 할 사안에 속한다. 
 
일본은 한반도 내 자국인 자산을 포기하며 우리나라에 유·무상으로 5억 달러를 제공했다. 일본에게도 큰 금액이었다. 여기엔 전쟁 말 혼란기 1~1.5개월의 미불 임금 등 일본 측을 대신한 모든 금전적 처리가 포함된다. 이런 돈을 개별 분배한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박정희정부는 일부만 지급하고 대부분 경제개발에 썼다. 훗날 노무현정부 시절 위로금 등의 추가 지급도 이뤄졌다. 
 
그러나 해방된 지 73년도 넘은 2018년, 대법원 담당 판사가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후 국내 일본 기업 자산을 처분해 배상할 것을 명했다. 외교적 타결 노력에 문재인 정부가 일체 응하지 않자 일본은 우방국 대상의 통관절차 면제 혜택(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뺐다. 반도체 관련 업계의 타격에 민심이 흉흉해지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촛불집회 등으로 난리가 났을 때 오피니언 리더들은 물론 대통령과 민정수석까지 반일 감정을 부추겼다. 
 
그 시기 예기치 못한 수확이 tvN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다. 문 정부가 주도한 남북 우호의 기만적 측면이 얼마 안 돼 드러났으나 대북 유화 무드 속에서 나온 이 드라마는 대박을 쳤다. 분단국가 특유의 사연을 담은 서사와 뛰어난 연출력·연기력·선남선녀 배우들이 일본 시청자에게 큰 감동과 재미를 안긴 것이다. 
 
여성 팬 위주였던 ‘겨울연가’와 달리 ‘사랑의 불시착’의 인기는 남녀·계층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만큼 ‘빈 사마’ 현빈의 새 영화가 일본 팬에겐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내 우려는 ‘하얼빈’을 연출한 감독의 역사관이다. 이 영화가 세계사적 지평에서 20세기 초 동북아 정세를 가늠하는 시각을 담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안중근을 흠모한 일본인 간수가 아니었으면 그 절절한 휘호를 우리는 볼 수 없었으리라.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의 고향에선 두 사람을 함께 기념한다. 우리도 안중근의 이상주의와 인간적 품격뿐 아니라 일본 역사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가지는 의미, 그가 조선의 식민지화에 반대한 이유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옳은 것·불가피한 것들 간의 충돌이 인간사의 진정한 곤경이다. 그런 사연을 그려낸 그리스 비극 류의 전통이 없어서인지 우리는 여전히 매사에 선악 나누기에 쉽게 휩쓸린다. 라인야후 문제가 필요 이상 꼬인 것은 2024년을 살면서 1909년 하얼빈의 감성을 되살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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