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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정치인 가운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사람으로 최석정(1646~1715)을 들 수 있다. 그는 조선 숙종 때 정치가이면서 유학자·문장가·음운학자·수학자로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석정은 현실 정치가이자 학자로서 성균관 대사성(지금의 서울대 학장)과 홍문관 부제학(조정의 문서 관리와 국왕 자문 역할)을 지냈으며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그의 조부는 인조반정의 공신이자 불세출의 외교관이었던 최명길이다.
석정은 유학자면서 특이하게도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송대 유학자 소옹의 상수학을 이용해 훈민정음을 설명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정음학(正音學)의 기원을 열어젖혔다는 평을 얻고 있다.
말년에는 정치에서 물러나 ‘구수략’이라는 수학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수가 도(道)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1·3·5·7·9의 홀수는 하늘의 수로, 2·4·6·8·10의 짝수는 땅의 수로 설명하고 있으며 사칙연산을 가(加)·감(感)·승(乘)·제(除)에 대응했다. 그 밖에 정수·대수·소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재밌게도 이 책에는 지금의 수도쿠와 비슷한 마방진이 소개돼 있다. 그는 서로 직교인 9×9 라틴방진(Latin Square)을 정리해 구구모수변궁양도(九九母數變宮陽圖)라 명명했다. 이는 서양 수학기호의 아버지 오일러보다 앞서는 것으로 해외 학계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장서가로도 유명한데 혼자만 책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누가 빌려 달라고 하면 선뜻 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식솔들에게도 “서적은 공공의 물건이니 개인이 사사롭게 차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책을 모을 만한 힘이 있었기 때문에 책이 나에게 온 것뿐이다”며 빌려 준 책을 찾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처럼 뛰어난 인물이지만 정치적으로 정적이었던 노론은 그가 직무를 게을리했다며 삭탈관직을 추서하는 것도 모자라 그가 저술한 ‘예기유편’을 소각해 버렸다. 졸기의 경우에도 노론이 주도한 숙종실록에는 인격 모독의 내용이 풍성하다. 반면 소론이 쓴 숙종실록보궐정오에는 “성품이 청명하고 기상이 화락하며 총명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좋게 쓰여 있다.
최근에는 대한수학회에서 그를 기리는 ‘올해의 최석정상’을 신설해 2021년부터 수여하고 있다. 연극계에서는 최석정 이야기를 소재로 한 ‘수학놀이극 마방진’ 공연을 준비 중이다. 조선 시대 수학자라니!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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