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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택의 동물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이 간결한 문장을 통해 ‘자유’가 인간 존재의 근간임을 강조했다. 사르트르의 말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특히 ‘소비’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매 순간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자유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단순한 구매 행위였던 소비는 이제 자신을 향한 끝없는 대화이자,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존재론적 행위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 ‘옴니보어(Omnivore)’라는 새로운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것을 먹는 자’라는 뜻의 옴니보어는, 본래 잡식 동물을 일컫는 생물학적 용어다. 하지만 오늘날 이 단어는 고정된 정체성이나 취향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문화와 경험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비하는 현대인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한다. 이는 획일적인 분류와 규정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흐름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몸짓과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취향과 소비 행태를 통해 특정 집단에 소속되거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경향이 강했다. 예를 들어, 힙합 문화를 즐기는 사람은 스트리트 패션을 소비하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옴니보어 소비자는 이러한 경계를 허물고,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만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구축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옴니보어 소비는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흔히 2030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N잡러’나 ‘크로스오버’ 소비 행태가 이제 50대 이상 시니어 세대에게서도 발견되고 있다. 60대 이상이 틱톡(TikTok) 챌린지에 도전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남성 팬덤의 영역이었던 야구 경기장에 대규모 여성 팬들이 모여 열광하고, ‘아재’들의 취미로 여겨지던 등산이 MZ세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는 현상은 소비의 경계가 나이·성별·계층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옴니보어 소비자는 단순히 유행을 쫓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준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예컨대, 가성비를 따지는 합리적 구매부터, 지속 가능성이나 브랜드 철학을 중시하는 가치 소비,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는 ‘가심비’ 소비 등이 선택의 기준으로 동시에 작용한다.
이러한 다층적인 선택 과정은 소비를 단순한 물건 구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존재 가치’를 표현하는 행위라는 의미가 붙는다. 소비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유롭고 다채로운 선택은 자신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들은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탐험가처럼,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자기 자신과 조우한다. 이 과정에서 얻는 만족은 단순한 물질적 쾌락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의 발견’이며, 자신의 삶을 한 편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할이 크다. 유튜브의 상세한 리뷰 영상, 인스타그램의 감각적인 후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고받는 진솔한 정보들은 소비자가 자신만의 취향을 탐색하고 다듬는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소비는 더 이상 정적인 소유 행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역동적 과정이 되었다. 이는 브랜드와 마케터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단순히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제 브랜드는 소비자와 함께 ‘삶을 짓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소비자의 내면과 일상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가치관에 공감하며, 삶에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더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옴니보어 현상은 현대 소비문화가 단순한 경제 행위를 넘어 ‘존재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경계 없는 탐험과 자기 확장을 통해 개인은 자신만의 복합적이고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표현한다. 과연 이 행위를 ‘일상의 시학(詩學)’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이제 ‘소비’란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서 단순한 구매를 넘어, 자기 표현과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가장 심미적이고 역동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미래 소비문화는 자유와 창의성이 만나는 거대한 서사시가 될 것이며, 옴니보어는 그 변화를 주도하는 가장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선옥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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