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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열쇠 시즌2’···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
국민 영혼 흔드는 유아독존 민중론 위선의 공동선
[대한민국 번영의 지혜<60>]-제5장 민중은 가공됐다 : 민중론(2)
평등 품은 이념 소모적 갈등···평등 품은 자유 부가가치(富) 확산
자유·평등 조화 주인의식···적대적 민중의식에 주인 자존감 신음
알앤알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5-19 00:42:27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스카이데일리
[전편에 이어]
  
Q. 이념적 민중이 아닌 자유시장에서의 민중 개념은
 
A. 자유시장에서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평등은 양립하지 못한다. 자유와 평등은 시소게임을 벌인다고 했다. 주인자격을 갖춘 국민은 시소게임의 중간지대에서 자유와 평등을 아우르지만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평등 상태를 희망하지 않는다. 주인은 현실과 이상을 정확히 판단할 역량이 있다는 의미다. 반면 민중을 내건 이념은 완전한 양립상태를 좇기에 허상에 빠진다. 나아가 자유에 제한을 건 평등만을 좇는 중심에 민중을 놓아 위험한 이상주의 문을 수시로 연다. 주인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자유시장이 문 안에서 역동한다. 이상주의 문을 열 때 이념의 허상이 드러나는 패러독스다. 그 허상은 스스로 열고 들어간 자유시장이라는 치열한 현실을 통해 드러난다. 평등만을 우선한 이상사회가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는 강한 현실인식이 국민을 주인답게 하는 이유다. (650쪽 : 자유와 평등은 교란상태로 생명의 질서인 시장에서 호흡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이 길항하고 교란하는 현상을 매개하는 힘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가려는 저마다의 자존감이다. 주인은 자존감이 있으며 자존감은 주인의식으로 무장돼 있다. 자존감이 자유와 평등을 매개할 때 허상의 민중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반면 민중은 생명의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 가학적이고 자학적인 자존감의 상처를 입는 민중은 주인이 될 기회를 가질 수 없거나 스스로 차 버린다. 자유와 평등이 시소를 타면서 만들어 내는 시장의 에너지는 자유가 평등을 위해 그리고 평등이 자유를 위해 상호 보완하는 상보적 모습이다. 자존감이 그 속에서 숨 쉰다. 대립 같은 조화가 사실상 하나 된 운동이다. 자존감은 조화 속에서 더 크게 핀다. 완전한 양립의 이상이 아닌 불완전한 양립의 현실성이다. (650쪽 : 자유와 평등의 양립은 자유시장의 변증법적 생존술이다) 시장의 생존술이 강인할수록 국민은 주인 의식을 갖는다. 주인의식이 강할수록 민중 의식이 자랄 곳이 작아진다.
 
Q. 자유시장에 민중이 없다면 자유와 시소를 타는 평등이 무의미한 개념 아닐까
 
A. 선은 악과 동행한다. 선이 움직일 때 악이 발생해 선의 존재를 확인시킨다. 정의는 선한 의지를 지속하는 과정이지 선의 완성이 아니다. 선의 과정은 곧 선의 목적이며 그 목적이 달성되면 또 시작되는 선의 지속성에서 악은 선에 눌려 선을 빛나게 하는 역할에 머문다. 평등 또한 마찬가지다. 자유는 생명이라고 했다. 중력계 또는 가속계에서는 움직임이 없는 멈춤조차 자유다. 원운동이 가속운동이듯 중력·가속계에서 멈춤 또한 강열한 가속운동이다.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의 뒤틀림뿐만 아니라 가속운동이 중력의 정체라는 것을 발견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그 행복은 자유의 정체였다. 모든 생명은 자유 없이는 소중한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가지 못한다. 자유에는 신성이 깃들었다. 평등은 이 같은 자유의 소중함이 빛을 발하도록 돕는다. 경쟁과 차별 속에 책임과 사랑이 커진다고 했다. 자유시장은 경쟁과 차별의 연속이다. 이 작용의 반작용인 평등은 자유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존재를 밝혀주며 시장의 역동성을 강화시킨다. 평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빛을 낼 경우 위험한 이념적 민중을 생산한다. 평등을 품은 이념은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을 촉발하지만 평등을 품은 자유는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자유가 확장될수록 평등이 조응하면서 자유를 더 키운다. (490쪽 : 끝없이 외연으로 나아가면서 자유시장의 원리를 따를 때 치열한 경쟁을 수렴하고 긍정하는 용기가 생긴다) 차별은 자유에 따른 책임이라고 했다. 책임감을 가질수록 자연스럽게 사랑을 키운다. 모든 차별을 수렴하는 용기는 진정한 자유정신이며 사랑이고 궁극적으로 차별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책임·사랑의 강자논리는 포기하지 않으려는 꿈과 희망이라는 것이다. 혼돈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의지가 꿈과 희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자유에는 신체적 생명의 운동성 못지않게 정신적 생명을 좌우하는 신성이 깃들었다.
 
Q. 이념적 민중은 자유에 따른 책임을 수렴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A.이념은 차별을 악의 근원으로 본다. 또한 사적 재산을 차별의 원천으로 보는 만큼 소유에 대해 공개념(公槪念)을 축으로 한다. 하지만 한국적 공개념은 이념적 개념이 본래 아니다. 자유시장을 중시하는 정권에서 토지공개념이 도입되고 또한 활용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같은 공개념이라고 해도 시장적 시각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발전에 초점을 두는 반면 이념적 시각은 부가가치 생산과는 무관한 평등에 방점을 둔다. 이념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공개념을 시장주의 시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억지일 뿐만 아니라 왜곡이라는 것이다. (537쪽 : 경쟁을 통해 돈이 순환하면 돈의 횡포를 줄이거나 막을 수 있다. 시장은 차별을 만들지만 동시에 평등을 위해 기능한다) 차별적으로 보이는 시장은 이념적 차별일 뿐 실제로는 평등을 지향한다. 시장은 성숙할수록 순환의 정밀성이 고도화 되면서 분배의 평등에 가깝게 간다. 사상적 유토피아의 실패를 대신할 기술적 유토피아 형태다. 따라서 이상사회는 틀에 가둔 이념 속에서 결코 자라지 않는다. 첨단 고도문명이 성숙한 시장에서 이상사회로 가는 길이 보인다. 절대적 이상사회는 물론 없다. 차별 속에서 차별이 사라져 보이는 과정 자체가 이상사회에 가깝다. 차별은 존재하지만 차별을 느끼지 않으려는 의지들이 모일 때 시장은 이타적 얽힘으로 단단해 진다. 이기심 가득한 시장이 이타심으로 진화하는 양상은 차별에 대한 관점의 변화라는 점이다. 본질이 차별인 시장은 순수이성의 관점상으로 없다. 반면 이념적으로 차별이 아닌 시장도 없다.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과 의지가 이념적 민중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념적 민중이 없으면 자유에 따른 책임이 차별이라며 거부되지 않는다. 차별은 책임을 만들고 선의를 끌어오며 사랑을 키운다. 차별을 차별로 받아들이면 증오를 만들고 적대감을 끌어오며 적의감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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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적을 작위적·고의적으로 세워 권력을 지향하면 가공된 민중이 동원되는 것인가
 
A. 이념적 민중은 평등을 기치로 분배를 정의로 삼을 때 빛을 발한다고 착각한다. 누구도 부가가치(富)를 생산할 의도를 갖지 않은 채 정의를 위한 정의의 깃발만이 나부낀다. 부가가치 없는 분배는 있을 수 없고 분배가 없는 평등 또한 불가능하다. 이념적 민중은 결국 타자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결실을 훔쳐 파먹지 않고서는 존립이 불가능하다. 이를 정의라고 할 수 없기에 자유시장이 떠받치지 않고 공개념만을 기반으로 한 민중은 존립하지 못한다. 사기행각이나 다름없는 이념적 민중은 누군가의 소중한 물질을 탐하기에 응분의 대가를 치른다. 탐하는 의도조차 모르거나 애써 간과할 때 악의가 커진다. 하지만 그 악의조차 허울의 정의로 가려진다. 결국 이념적 민중은 결실을 생산한 타자의 가속운동(일)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기에 자신의 생명 시공간인 가속계에서 존엄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는 유아독존 이기심을 확장시켜 영혼의 가치까지 흔든다. 영혼이 무너지는 원인조차 적을 세워 날을 갈고 정의의 깃발을 건다. (299쪽 : 영혼의 부(富)는 에고와 타자의 동일성을 보는 일이다) 자신조차 속이는 정의는 이기심만으로 뭉친 에고의 모습이다. 이 같은 에고는 상생·협력은 물론 책임·사랑의 에너지를 갖지 못한다. 나아가 타자와의 얽힘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에고는 끝내 자신을 향해 비수를 꽂는다. 파동성 에너지인 영혼은 타자와의 얽힘을 존재가치로 한다. 영혼이 자유에 따른 책임을 기꺼이 수용하는 이유다. 이념적 민중이 얽힘을 보지 않거나 외면할 때 영혼의 얽힘 존재 자치를 긍정하지 못한다. 가장 정의로운 갑옷을 입은 듯한 이념적 민중은 이념가 또는 그들이 작동시킨 권력만을 위해 존재한다.
 
Q. 민중이 가공됐다면 자본주의 지배·피지배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나
 
A. 생명은 생명유지속성 자체가 존엄성이지만 죽음까지 염두한 생명의 배수진을 칠 때 존엄성이 극대화 된다. 모든 생명은 죽지 않으려는 생명유지속성을 갖고 있다. 생명의 유지 목적에 죽음이 대척점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성한 생명과 아름다운 생명의 가치에 죽음이라는 음울함이 빛을 비추고 있다. 자본주의 또한 마차간가지다. 지배·피지배라는 용어를 대립과 갈등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이념적 왜곡이다. 지배를 책임·사랑의 강자논리로, 피지배를 상생·협력의 약자논리로 각각 치환이 가능하다. 얽힘의 약자·강자 논리가 진짜이고 지배·피지배라는 계급 논리가 가짜다.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할 수 있는 배경에 인간의 배타적 이기심이 자리한다. 이를 교묘하게 파고든 이념은 민중을 대립과 갈등의 적시타용 타자로 내세운다. 민중이 대립과 갈등의 타점을 얻으면 자유시장은 온기를 잃고 죽어간다. (348쪽 : 지식을 넘어 지혜를 갖는 최상의 부가가치에 죽음까지 수렴하는 생명의 온기가 가득 서려 있다) 지식은 자신을 향하고 지혜는 타자를 향한다고 했다. 시장의 부가가치를 지배·피지배의 원천이라고 보는 것은 신성이 가미된 결실에 대한 왜곡이자 부정이다. 죽음까지 수렴해야 탄생되는 부가가치는 생명의 온기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긍정의 약자·강자 논리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며 생산되는 부가가치는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은 얽힘의 사랑이다. 무한자애의 모습을 띤 부가가치는 고독한 자유다. 부가가치를 전제로 한 자유의 속박은 비자유가 아니라 무한자유라고 했다. 얽힌 자유가 무한히 펼쳐질 때 그 자유를 속박됐다고 하지 않는다. 상생·협력이자 책임·사랑의 자유인은 얽힌 자유 속에 있다. (348쪽 : 생명가치가 신성으로 유지되는 한 번뇌조차 생명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절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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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유시장의 부자와 빈자는 계급이 아니고 무엇으로 설명되는가
 
A. 부자는 빈자로, 빈자는 부자로 순환하는 것이 자유시장이다. 영원한 부자·빈자가 없다고 했다. 자유시장은 순환 속에서 평등을 이룬다. 이념주의는 열려 있는 시장의 순환을 보지 않은 채 순환하지 않는 시장의 감옥만을 본 채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 한다. 철창에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않으려는 의지를 정의로 착각한 탓이다. 자유의지를 철창에 가둔 이념의 정의는 시장의 순환을 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는 법을 모른다. 아니 시장의 순환을 피하려는 비겁한 꼼수를 계급논리로 무장해 들이대고 도망간다. 이념의 이런 속성은 마약과 다름없다. 자유는 가속계 운동의 생명이라고 했다. 모든 생명은 에너지 얽힘의 본질 구조를 갖는다고 했다. (370쪽 : 인간에게 무한히 수렴하는 수용의 에너지가 잠재돼 있다. 수용할 수 있는 힘은 훨씬 더 큰 힘을 발산하는 힘을 갖는다) 흔한 말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는 얽힘의 파동성을 상징한다. 누구든 타자를 무한히 수용할 그릇을 가졌다. 이처럼 큰 그릇을 작디작은 그릇으로 만드는 것이 이념적 민중론이다. 상대를 수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애초 수용할 생각이 없게 만드는 왜곡된 민중론은 에너지 본질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기에 인간이 만든 허상이다. 엄밀히 권력용 가림막이다. 인간이 이에 현혹되거나 환호하는 것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동시에 배척해 끝내 공짜로 얻으려는 악마적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속성조차 나쁘지는 않다.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은 품고 가야 하기 때문에 악하다고 하면 안 된다. 품고 가면서 선을 비추는 역할을 하도록 할 때 악마성은 선한 역할로 바뀐다. 이념적 민중론을 고집하면 그 반대다. 뻔히 예견된 실패를 실패할 경우 이념적 민중론은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 이념은 인간의 악마성을 이용하기에 선한 정의의 보복을 받는다. 가난은 허위의 형벌이다. (370쪽 : 타자들의 순수 에너지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로 모아지면 그것을 끌어들인 자아는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성공시킨다)
 
Q. 부가가치를 독점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다수의 약자는 민중일 것 같은데
 
A. 에너지는 흐르거나 순환하는 성질을 갖는다. 절대 멈추지 않는 속성을 에너지가 갖고 있다. 부가가치는 에너지다. 시장에서 독점일 것 같은 독점도 시공간을 늘려서 보면 독점이 아니다. 독점이 없다면 다수의 약자가 민중이라는 것도 허위다. 독점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현상의 반복일 뿐이다. 이기심이 충만한 에고는 독점을 현상의 반복으로 보지 않는다. 이념은 에고의 속성을 떨쳐내지 못한다. 에고는 본능적으로 기생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기생하기 위해 필요한 허위의 적대적 대상이 독점이다. 이는 악으로 규정한 독점의 결실을 빼앗기 위한 전술이 된다. 이념주의 민중론이 독점을 부가가치 현상으로 인정하고 선의로 세우면 빼앗는 행위를 정의로 세우지 못한다. 에고가 벌이는 극적 이기심은 이처럼 잔인하다. (296쪽 : 에고는 타자를 거울로 삼아 기막힌 위장전술로 기생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타자다) 이타성을 내세워 이기심을 드러내는 기생성은 이념이 갖는 위선의 본질이다. 결실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념의 본질은 독점을 반드시 적으로 삼아 타자들을 끌어들이고 적대 전선을 확산시켜야 한다. 국민은 안타깝게도 에고와 타자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허위의 이타성에 잘 빠져든다. 때로 이념이 주인정신을 잃은 자기안의 노예 또는 광인(狂人)으로 치부되는 이유다. 하지만 더 큰 위선이 이념의 배를 채우면 스스로 무너진다. 민중혁명 대부분이 오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권력형 비위로 비운을 맞는 배경이다. 부가가치를 독점하는 과정은 있을 수 있지만 독점을 만드는 것은 가공된 민중이 권력욕을 갖기 때문에 일어난다. 자유시장의 자기정화 기능은 독점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국가의 인위적 개입은 일시적일 뿐임에도 그 과정에서 오히려 가공된 민중을 양산시킨다. 다수의 약자나 민중 등의 개념은 시장의 자유인이자 소비자다. 국민으로 불리는 이들이 독점을 견제하며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일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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