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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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Q. 빈곤의 지옥을 만드는 이념적 휴머니즘에 현혹되는 시민들이 있는데
A. 이념적 휴머니즘은 인간의 신체적 죽음 못지않은 공포를 주는 사회적 죽음을 파고든다. (516쪽 : 신체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마지막에 일어날 만큼 미래와 현재에 대한 사회적 생존은 진짜 죽음 이상으로 사활이 걸렸다) 이념은 사회적 소외에 대한 공포를 세력화 하면서 자유시장에 기생해 왔다. 다만 지성적 시민들은 사회적 소외에 적절히 대응해 현혹되지 않는다. 사회적 소외를 오히려 얽힘의 촉매제로 삼는 지성적 시민들이 많다. 하지만 이념은 군중들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사회적 소외를 공포로 키운 뒤 선전선동을 통해 공포 연대를 확산시켜 지성적 시민들을 흔든다. 이념주의는 시민들에게 환상적인 휴머니즘이 두려움을 해소시켜 줄 최고의 해독제로 부지불식 여겨지게 한다. (197쪽 : 이상적 공동체와 그 삶을 추구한 공산·사회주의가 사실상 용도폐기된 것은 인간의 탐욕이 손쉽게 휴머니즘으로 전환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려움은 자신 안에 똬리를 튼 감정이라고 했다. 두려움이 외적 요인에 의해서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휴머니즘을 부르짖으면 이념의 환상이 진짜처럼 보인다. 따라서 지성적 시민들은 일시적으로 현혹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심연에 있는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극복하는 정면 돌파를 해간다. 집단지성의 얽힘은 사회적 소외를 막을 수 있는 최고의 안전장치인 탓이다. 시민들은 얽힘을 통해 책임·사랑, 상생·협력의 조화를 중시한다고 했다. 반면 이념의 허구성에 현혹되면 신기루를 좇을 뿐이다. 몽상적인 이념일수록 본능적인 환상을 이용한다. 신기루는 반드시 존재할 것 같은 환상이다. 집단지성의 얽힘이 느슨할 때 이념은 신기루를 보며주며 두려움을 심고 물어뜯어 지성의 네트워크를 파괴한다.
Q. 신기루를 좇을 때 이타적 정의감이 이기심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A. 이념적 휴머니즘은 신기루처럼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몽상적 그림이다. 사회적 소외에 대한 강력한 저항감이 인간 본성 중 으뜸이기 때문에 이념적 휴머니즘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기루로 탄생하고 또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몽상적 현실은 절대 실현 불가능하지만 절대 없어지지 않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197쪽 : 인간은 신체적 생존 자체의 조건에 사회적 소외가 필연적으로 걸려 있는 존재이기에 휴머니즘이 필수적 지향 방향이다) 소외감이 크면 클수록 누구나 두려움을 키운다.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자동 발걸음이 환상적 휴머니즘을 향하고 이념이 이 틈을 파고들어 세력화 할 때 구성원들의 이타심이 이기심으로 변질된다. 두려움이 많은 무능력자일수록 변질된 휴머니즘에 빠지거나 잘못된 휴머니즘을 자가발전시켜 이기심을 극대화 한다. 두려움을 피할 때 거짓과 변명을 내세우고 그것을 숨기는 과정에서 추함을 느끼면 자신을 학대하는 우울증이 동반된다. 두려움, 무능력, 우울증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 이를 교묘히 이용해 세력화 하는 이념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소외의 이면에 얽힘의 본질인 사랑을 희구하는 본능을 먼저 보아야 한다. 인간은 선(善)이 본성이라고 했다. 선은 철학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사랑이다. 사랑은 이타심이며 조화다. 사랑은 두려움을 벗어나게 해준다. 두려움의 깊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면 사회적 죽음을 끝내 피하지 못한다. 동시에 두려움의 심연 속에서 타자에 대한 이타심이 일어나는 것을 의심하면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용기다. 두려움의 바다에서 빠져나올 그 용기는 마치 초능력자의 힘처럼 대단히 크다. 자유시장의 바퀴를 크게 돌리는 힘이 두려움 속에 있다. 자유시장의 진화는 이른바 명량대첩의 이순신 철학을 소환하고 있다. 자유시장 내 구성원들의 두려움이 용기로 전환될 때 모두를 잘 살게 하는 부가가치가 커진다.
Q. 지성적 시민들이라고 해도 휴머니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 않을까
A. 신성을 거부한 인간상(人間像)만을 갖고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휴머니즘은 애초 가능하지 않다. 본래 인간상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신성의 절대성을 찾는 일이다. 인간상만으로는 절대성이 실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악이 공존하는 불완전한 인간이 절대적 신성과 견주는 이상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과도한 탐욕이다. 선의 절대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성의 절대성을 끌어와야 한다. 종교적 신의 존재 유무가 아니다. 절대선(絕對善), 극선(極善), 전선(全善) 등의 상징적 이상성이 휴머니즘 요소에 필요하다. 인간은 종교를 믿지 않아도 이 같은 선의 절대성에 의존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선에 대한 이성적 본능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선의 본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악의 대칭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선악의 공존을 나쁘게 보면 안 되는 이유라고 했다. 실제로 인류가 꿈꾸는 절대선과 절대정의는 지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상에서는 악한 요소들이 절대선과 절대정의를 추구하는 선의(善意) 속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다. (211쪽 : 악마적 환경이 선의의 씨앗이 되면서 대상성으로 작용한다. 직지인심(直旨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이르는 자신을 향한 눈이 내면의 악마성을 확인할 때 선의가 발아된다) 내면에 웅크린 하나 된 선악의 본질을 볼 때 선의가 커진다. 자유시장에는 악의가 많지만 그것을 악의로 대하면 선의가 생명력을 잃는다. 지성적 시민들은 휴머니즘에 대한 선의 환상을 갖고 있지만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 무아(無我) 속에서 환상을 비울 줄 알기에 선한 현실을 실천적으로 만들어갈 능력을 가졌다. 무아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있음의 원리라고 했다. (211쪽 : 자유시장의 얼굴에도 인간의 내면처럼 악마적 환경들이 가득하지만 스스로 자유시장의 자유에 대한 자기모습을 들여다 볼 때 무아와 같은 선(善)의 절대성을 확인할 수 있다)
Q. 선악이 공존하는 내면을 자기관리하면서 선의(善意)를 실천해 가는 길은
A. 선악의 실체를 바로 보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은 선악이 따로 없다는 신념과 상통한다. 따로 존재할 수 없음은 상호 보완적으로 필요한 상보성이다. 자연계에 존재할 수 없는 음수·허수도 양수·실수와 상호 보완적으로 서로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선악은 실제 교차하고 섞이며 혼돈을 일으킨다. 그 속에서 선을 좇는 임계선상의 노력이 선이라고 했다. 선악의 파동성은 이처럼 양수·실수를 빛나게 하는 음수·허수의 원리를 닮았다. 선만을 추구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이상적 원칙은 인간 내면으로 보면 교만이다. 교만은 자신을 속이는 줄조차 모르거나 알아도 실시간으로 합리화 한다. 교만을 통제하지 못하는 신념은 몽상적·환상적 이념으로 전락한다. (265쪽 : 자본시장에 실재하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출발이 교만을 자기통제한다) 교만은 인간 본성의 불완전함 중 가장 위태로운 감정이다. 교만의 칼날은 타인을 향하지만 끝내 자신을 찌른다. 특히 악을 배척할 때 교만이 싹트는 패러독스가 작동한다. 그래서 선을 통해 태어난 악을 품고자 할 때 교만이 통제된다. 악은 존재하지 않지만 선을 존재하게 돕는 일종의 허수다. 선을 빛나게 하는 허수는 악의 현상처럼 본래 없지만 없다고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없음)으로 규정해 배척할 수 없다. 선을 위해 꼭 악을 품어야 할 이유다. 이 때 선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안의 교만을 보는 마음이 악을 품는 지혜이고 선을 지향해 선악이 따로 없음을 인지한다. 교만을 억제하는 지혜는 악해질 가능성을 없애거나 줄인다. (265쪽 : 아무리 강해 보이는 삶도 교만의 태도가 보이면 내적 동력은 아주 약한 부류다)
Q. 악을 품고 사는 것이 지혜라 해도 그것이 악해질 가능성을 높이지 않나
A. 허수(虛數)는 상상의 수이지만 실존하는 인류문명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없음이 있음의 화려함을 만들 때 그 없음을 없다고 하지 않는다. 인류는 수천년간 음수(음의 정수)를 상식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했다. 사과가 마이너스로 존재하는 것을 셀 수 있다는 것은 사과를 사과로 보지 않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사과를 에너지로 볼 때 음수가 되는 ‘셀 수 있음’은 개체성이 아닌 파동성이라고 했다. 허수 또한 음수처럼 수용하기 어려운 수이지만 만물을 에너지 파동성으로 볼 때 풀리는 수많은 해(解)들이 나타난다. (640쪽 : 허수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수이지만 기막힌 역할을 수행하는 자연의 질서자중 하나로 강력히 근거된다) 음수는 1차원 수직선상의 영(없음)을 기준으로 역방향의 크기이지만 허수는 2차원 복소평면상의 영을 기준으로 역회전의 크기다. 음수가 없는 방정식을 상상할 수 없듯이 허수가 없는 수많은 자연 원리 또한 마찬가지다. 음수와 허수의 존재는 파동성이다. 선이 움직일 때 악이 태어나 따른다고 했다. 이는 선만을 추구할 때 선악의 필연적 공존성이 모순 같기에 선악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지와의 연장선에서 궤를 같이한다. 선악이 따로 없다는 것은 선과 악을 굳이 구분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다. 악을 품는다고 해서 진짜 악해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함을 지향하는 강한 내공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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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념적 민중과 지성적 시민의 차이는 무엇인가
A. 자신의 실존을 고민하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유일하다. 고등동물이라고 해도 자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이념적 민중은 자신의 존재성을 판단하기 어렵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념이 우선되는 민중은 민중의 실존 보다 이념의 확산이 먼저다. 민중은 이념을 위해 존재하는 들러리로 한정된다. 지성적 시민은 항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지혜를 가졌다. 자유시장의 수많은 변수들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도 자신을 객관화 하는 것을 우선한다. 이는 신성이 깃든 능력이다. 생명유지속성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노력은 타자를 통해 존재하는 자신을 보는 일이다. 존엄성이 타자들과의 얽힘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선악의 공존성이라는 이율배반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사건의 섭리라고 했다. (352쪽 : 생명체가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거나 그 존재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은 대단히 특별한 사건의 섭리다) 지성적 시민은 자아를 보는 눈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자아성찰은 시작과 기준을 정하는 일이다. 신성이 깃든 창조력을 극대화 하는 길에 자아성찰이 있다. 자신을 중심에 두는 일은 책임·사랑과 상생·협력을 실천케 하는 원동력이다. 지성적 시민은 주인정신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주인은 시작과 기준을 늘 반복한다. 자아성찰은 시작이자 기준의 실시간 임계 동선이다. 이를 통해 수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자연과 만물의 원리를 익히며 지혜의 탑을 쌓는다. (353쪽 : 자신을 인지한 것으로부터의 사유는 자신뿐만 아니라 신성이 본유(本有)된 자연에 대해 본질을 의심하고 탐구하며 학습하는 힘이다)
Q.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국운을 개척하는 시민정신의 실체는 무엇일까
A. 이념적 민중론의 허위성을 똑바로 보는 것이 시민정신의 실체를 보는 시작이다. 사회정의 깃발을 유독 많이 내거는 이념적 민중론은 사회정의를 결코 완성하지 못한다. 이념적으로 사회정의를 완성한 역사적 전례가 전무한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이념적 사회정의가 갖는 배타성이 권력을 키우고 오만한 정의를 만들어 휴머니즘을 압살했다. 이상사회를 동경하면서 이상사회를 짓밟는 행태가 이념적 사회정의의 변하지 않는 결말이었다. 시민정신이 살아 있으면 거짓된 정의의 깃발이 걸리지 못한다. 시민정신은 진실한 사회정의뿐만 아니라 국운을 개척하는 의지가 모인 신념의 집합이다. 시민들에게 사회정의는 ‘치열한 체인’의 이치와 같다. 얽힘의 조화 속에서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것을 지성적 시민들은 당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사회정의는 이를 통해 생산되는 부가가치다. 이 결실은 삶 또는 생명 자체이기에 존엄하다. (554쪽 : 치열한 삶의 터전을 가꾸는 모든 생명들은 천사의 일을 수행한다) 사회정의는 자연의 질서다. 이를 거스르는 암적 존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심에만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것이 악한 것인 줄조차 모르기에 이념의 유혹의 쉽게 빠져 자신 안의 악의가 위장된 거짓 선의로 발전하고 만다. 이념의 두 얼굴은 필연적 결과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시민정신은 이념이 파먹는 부가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헛된 민중론의 망상을 제어한다. 국운의 큰 길을 먼저 보는 시민정신은 마치 벌처럼 사생결단 벌집과 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시민정신의 사회정의는 모두에 이롭고 국운을 꽃 피게 만들지만 이념적 사회정의는 서로의 피를 흘리도록 만들어 그것을 서로가 마시게 하면서 끝내 모두의 보금자리인 국운을 위태롭게 만든다.
Q. 국운을 꽃 피우는 지성적 시민들이 가질 수 있는 권리는
A. 모든 생명의 존재감은 삶 그 자체에 있다. 인간 또한 생명유지속성이라는 본능 속에서 자존감을 갖는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치열한 속성이 유지되도록 보장해 주는 시스템이 지성적 시민들에게는 최고의 권리다. 자유시장은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운동장이다. 그 속에서 뛰어 노는 것 자체만으로 권리를 누린다고 생각하면 풍요가 선사된다. 마치 가장 소중한 생명의 공기를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무한한 감사를 느끼는 마음이다. (634쪽 : 인간의 자유는 만물의 창조를 주관하는 신성으로 확장된다) 당연한 것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기심이지만 감사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타심이다. 지성적 시민들의 권리는 이타심이다. 신성이 깃든 사랑의 정체가 이타적 심성이다. 공기처럼 주어진 자유시장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지성적 시민의 자격이 부여된다. 자유시장의 지성적 시민들 사이에서는 절대 게으를 수 없고 결코 나태할 수 없는 마음들이 충만하게 일어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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