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정체 불명의 소스코드가 심어진 선거프로그램이 국가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지방선거·대통령선거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사법부, 입부부 등은 선관위 눈치보기에 급급해 이를 사실상 방치하다시피하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은 더해지고 있다.
주목되는 사실은 미국·독일 등 해외 선진국은 물론 한국에 비해 정치·경제적 후진국으로 평가받은 베네주엘라·브라질·아르메니아 등도 우리나라와 달리 선거제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선진국 문턱을 두드리는 현 시점에서 선거제도가 국가이미지는 물론 국가신뢰도 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전투표용지 소스코드 공개’ 관련 대법원 재판에 이목 집중
내달 14일 대법원에서 ‘대전광역시장 선거무효’ 소송 변론재판이 열린다. 변론재판의 쟁점사항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사전투표용지 QR코드 사용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전투표용지 발급프로그램 소스코드 미공개의 적법성 △소스코드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비밀투표 위반) 등이다. 그러나 이전 유사 재판에서 사법부가 번번이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사전투표 관련 프로그램 공개 검증이 성사될 지는 미지수다.
지난 18일 열린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사전투표 프로그램 미공개로 비밀투표가 침해되고 있다’고 주장하다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선거의 자유를 방해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의 원고는 중앙선관위였다. 당시 판결은 재판부가 ‘사전투표용지 QR코드 생성과정 사실조회’ 자료 제출을 거부한 중앙선관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대전광역시장 선거무효’ 소송 피고측은 변론재판 기일 전 대법원에 ‘사전투표의 전자개표’ 관련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재판부 기피신청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부로부터 사전투표 발급프로그램 소스코드 공개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베네수엘라·필리핀 등 후진국들 조차 전자투표 검증 또 검증…오류 발견 땐 즉각 사용중지
국민 참여형 전자선거 프로그램 검증제도가 안착된 해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의 전자선거시스템이 폐쇄성을 띠게 된 배경에는 △정부·국회의 견제의지 상실 △중앙선관위의 권력 비대화 △국민들의 무관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전자선거시스템을 도입한 해외국가들이 부정선거·개표오류 방지를 위해 수십 년에 걸쳐 전자선거프로그램 검증대상을 확대하고 일반 국민들까지 검증작업에 참여토록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정치·경제 환경면에서 한국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나라다.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1인당 국내총생산)는 2700달러로 한국의 8% 수준에 불과하다. 장기집권의 여파로 정국 또한 불안하다. 그러나 전자선거시스템은 한국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 후진국들의 선거제도 연구·지원기관인 미국의 NDI(National Democratic Institute)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전자투표와 관련한 다양한 감시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선거 전 정부기관, 독립기관, 각 정당들이 참여해 전자투표기의 소스코드를 라인별로 검증한다. 검증된 소스코드가 선거당일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종버전에 해시함수(Hash Function)를 등록한다.
소스코드 공개 거부는 물론 공인인증을 받지 못한 사전투표용지 발급프로그램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한국과 사뭇 다르다. 또한 사전투표용지의 발급 디지털 기록파일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베네수엘라는 무작위로 선정된 투표소의 50% 이상이 전자투표 결과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종이투표 기록을 확인한다.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역시 전자투표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사전 검증 메커니즘이 촘촘히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전자투표 소스코드 검증작업은 정당시민단체는 물론 일반 시민 66명이 참여한다. 특히 법률에 자동선거시스템(AES) 소스코드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불규칙한 일련번호를 사용면서도 생성과정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필리핀의 전자투표에 대한 높은 신뢰도는 지난 2016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당시 선거직전 필리핀 대법원은 ‘투표용지마다 영수증을 인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선거 데이터의 86%가 전송되며 지방 자치구의 당선자들이 실시간으로 공표되는 상황에서 다시 종이투표를 검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낙선한 2만 여명의 후보들은 선거 자동화 시스템의 신뢰성과 검증 결과를 수용하고 투표용지 확인을 양보했다.
남미의 브라질 역시 전자투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최신 정보통신 기술을 동원하면서 전자선거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브라질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결과 전달을 위해 BGAN(광대역 글로벌 네트워크)터미널 수를 늘려 브라질 16개 주와 연방 지구(FD)에 설치했다. BGAN 위성 광대역 음성·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투표소와 정부전자 투표시스템이 연결된다. 투표 결과는 전자식으로 투표기내에 저장된다. 평균 33%에 달하던 무효표는 전자투표기 도입 이후 2002년 선거에서 7.6%로 줄었다.
해외 국가들은 전자선거시스템 검증과정 또는 실제 전자투개표 과정에서 작은 오류만 발견해도 전자 선거 중단조치를 취하고 있다. 완전성과 무결성이 확인되지 않는 한 전자선거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06년 전자투표를 도입한 네덜란드는 소스코드의 취약성, 투표 재집계의 문제 등이 제기됐다. 투표 프린터기 도입이 제기됐지만 전파방해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투표가 방해될 수 있다며 2008년 전자투표를 포기했다. 영국, 아일랜드, 독일은 터치스크린투표 도입을 유보하고 있다.
국내 한 선거전문가는 “전자투표는 그 자체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해외국가들은 끊임없이 검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자투표 자체를 원천 무효화하기도 한다”며 “전자투표는 모든 관련 정보가 국민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의 경우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사용된 사전투표용지 발급프로그램 소스코드를 공식적으로 인증받지 않은 데다 국민들의 소스코드 공개 요구도 중앙선관위가 거부하고 있다”며 “결국 국민들이 선거시스템 자체를 의심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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