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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익선동(益善洞), 진정한 추억과 새로운 상상 사이

정보의 홍수 속에 공간에 대한 기억력과 상상력 점차 약해져

‘한옥-골목-맛집’ 복고 트렌드로 소비되는 핫플레이스 ‘익선’

장소 기억과 거듭난 문화가 조화로운 미래의 도시를 꿈꾼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28 09:50:39

 
▲유영이 도시공간문화 전문 칼럼니스트
 어렸을 적 비디오 가게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바라볼 때면 하나의 전시회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포스터를 바라보며 영화의 줄거리와 사람들의 반응을 상상하면 가게 앞 공간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파트 단지마다 있던 비디오 가게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예술 작품과도 같던 영화 포스터는 이제 온라인상 이미지와 영상으로 대체되고 있다. DVD가 나오고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유료로 내려 받고 월정액을 주고 콘텐츠를 구독해 보는 세상이다. 마트에서 과자를 고르듯 클릭 몇 번으로 대략적인 내용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까지 알 수 있는 시대. 너무 많은 정보 속에 우리는 상상할 능력을 잃고 있다.
 
파출소가 하나둘 사라지며 지역 주민들의 운동 시설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화국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어 호텔업을 검토 중이란다. 지역시설로 사랑받던 공간도 도시가 확장함에 따라 흥망성쇠의 길을 걷는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던 장소도 어느 순간 옛 추억 속으로 사라지기 일쑤다. 지금처럼 특히 신도시들이 생겨나 모두가 헌 집을 두고 새집을 꿈꾸는 세상에서 때론 우리가 집을 짓고 떠나버리는 개미와 같이 느껴진다. 공간에 대한 추억은 만들기도 붙잡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얼마 전 익선동(서울 종로구) 일대를 거닐며 ‘도시의 추억’이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5년 전 낙원상가 옆 동네인 익선동이 갑자기 부상하며 인기를 끌었을 시절, 방문했던 날의 기억이 함께 했다. 분명 그때는 골목마다 보물찾기하듯 보이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소품 가게가 우리를 반겼다. 고층 건물이 늘어선 서울 도심에서, 익선동에는 낮은 한옥으로 이어져 있는 골목길을 따라 보기 드문 정겨움이 묻어났다.
 
그러나 2021년 익선동의 골목길은 그 너비만 존재하는 듯하다. 아기자기라는 단어보다 시끌벅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서울의 대표적 핫플레이스라는 익선동의 골목은 사람들로 붐빈다. 맛집을 방문하기 위해 늘어선 대기열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대화가 가득하다. 한옥이 늘어선 골목이라기보다 골목에 가득한 사람이 먼저 보인다.
 
 
 
 
▲스스로를 ‘과거의 섬’이라 일컫는 익선동. 한옥과 골목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서울의 익선동 지도에는 해시태그 단어들과 함께 컨셉이 있는 맛집이 가득하다. [사진=필자제공, 이종원 대기자]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익선동을 거닐며, 신기한 변화들이 눈에 띄었다. 양과점, OO양식, OO집 등 레트로풍의 상호가 가득하다.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자두꽃 문양을 비슷하게 활용한 가게 브랜드도 눈에 띈다. 익선동은 한옥과 골목이 단순히 노출된 장소가 아니라 레트로의 옷을 입고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날이 따뜻해지니 개화기 복장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익선동이라는 세트장에 관객과 배우가 된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 같기도 하다. 문득 우리가 익선동을 찾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무엇이 이곳을 찾아 머물게 하며 추억하게끔 하는 원인이 되고 있을까.
 
익선동은 2018년 서울의 마지막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2000년대 초반 정비사업이 발표되며 전통 한옥이 아니라 근래 형성된 생활형 한옥이기 때문에 보존 가치가 없다는 서울시의 발표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서울시에서 한옥을 보전하겠다며 방향을 전환한다. 수많은 논의 끝에 높은 빌딩이 계획되었던 익선동 개발 계획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전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100년을 자리한 동네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모면했다. 2016년 KBS에서 100년 한옥마을, 익선동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며 익선동은 점차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18년, 익선동은 한옥보전지구로 지정되며 진정한 한옥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2019년도 레트로, 개화기 열풍과 함께 익선동은 새로운 과거로서 2030세대에게도 사랑받는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그렇게 익선동은 우리가 여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동네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의 과거를 추억하는 장소라기보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풍경을 마주하는 동네로 다가온다. 익선동에서 우리는 근대 개화기의 컨셉으로 사진을 찍고 맛집에 줄을 서며 소위 트렌드를 소비한다. 익선동의 예전 모습을 상상하며 100년 전 서울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미스터 선샤인>의 진정성 있는 무대로 기억한다. 우리는 익선동을 한옥과 골목, 그리고 맛집을 모두 엮어 하나의 패키지처럼 소비하고 있다.
 
추억이 담긴 공간에서 어떻게 과거의 이야기를 뽑아내고 의미를 찾아낼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뉴트로’라는 신조어처럼 ‘레트로’에 관심을 두는 요즘이라지만 단순한 유행이 아닌 얼마나 진짜 옛 시간을 기반으로 서있는 문화 현상인지는 의문이 앞선다. 사라질 뻔한 익선동에서 익선동의 역사는 이미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100년 전 한옥과 골목이 남아있는 터전의 추억보다는 새로운 만들어지는 동네라 봐야 하지 않을까. 맛집 주소를 찾고 사진을 찍으며 놓쳤을 그 장소만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시간의 켜와 새로운 상상이 조화로운 도시, 과거를 존중하며 미래를 담는 도시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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