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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산업유산 도시 영등포 오징어 볶음 성지는

55년 오징어 볶음 요리 전문 외길 ‘여로집’

영등포뉴타운 사업으로 옛 정취 사라질 예정

옛 경성방직‧대선제분 폐공장 등 볼거리 많아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9-24 10:48:15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최근 들어 도심을 걷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아니 늘렸다는 표현이 맞다. 일일 1만보 걷기에서 1만5000보로 걸음 수를 늘렸다. 개발에 의해 도시 경관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 걸음 수를 늘린 이유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 속에 담아두기 위함이다. 도심의 속살은 뒷골목이다. 뒷골목은 걸어야만 속속들이 볼 수 있다.
 
요즘은 영등포역 일대를 많이 걸었다. 이 지역은 을지로만큼이나 역동적으로 변하는 곳이다. 영등포역을 기점으로 일대가 크고 작게 개발되고 있다. 영등포뉴타운 사업 일환으로 영등포전통시장 일대가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개발되는 것이 가장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영등포전통시장은 전쟁 직후인 1956년 개장한 서울 서남부권의 유서 깊은 시장이다. 영등포전통시장은 1980년대까지만도 강서, 양천구민들과 광명 시민들, 멀게는 부천과 부평 등 경인 지역에서까지 물건을 사러 왔다. 1958년에는 쌀의 유통이 커지면서 양곡도매시장이 형성됐다. 영등포전통시장도 당시 서울에 형성됐던 8대 도매시장 중 하나였을 정도로 큰 시장이었다. 신당동 중앙시장, 합동 중앙시장,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청량리시장, 아현시장, 동자동 시장 등이 주요 도매시장이었다.
 
영등포전통시장 일대 재개발로 들썩
 
▲ 50년 된 동남아파트는 영등포전통시장의 랜드마크다. 이 일대가 영등포뉴타운사업으로 개발될 예정이어서 동남아파트도 사라질 전망이다. [사진=필자제공]
 
영등포전통시장 앞 지하도는 강북의 구도심 개발과 연관 있다. 1970년대 강남지역이 신시가지로 개발되면서 강북의 구도심도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도시 기능의 현대화가 강력하게 추진됐고 구도심은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70년대 중반에는 3대 공간 확충사업 일환으로 지하 공간과 고층 공간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민간자본에 의한 지하상가 개발이 활발히 진행됐다. 영등포전통시장 앞 지하상가도 1977년도에 소공지하도, 방산지하도, 종로5가지하도, 충무로지하도, 을지로지하도와 함께 개발됐다. 따지고 보면 이들 지하상가도 만들어진 지 44년이나 된 미래유산급 공간이다. 지하 공간은 큰 변화의 바람을 피할 수 있지만 지상은 그렇지 못한 게 개발 실상이다.
 
영등포시장 순대골목 어디로 가나
 
▲ 영등포뉴타운개발에 따라 영등포시장이 상업복합지구로 개발되면서 순대골목이 어떻게 변모할지 궁금해진다. [사진=필자제공]
  
영등포전통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동남아파트는 1971년 입주한 50년 된 주상복합 아파트다.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듯 외벽 페인트칠이 이곳저곳 벗겨진 채 서 있다. 일대가 개발되면 아담한 한 동짜리 동남아파트는 사라지고 최고 38층, 715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순댓국 골목의 순댓국집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도 식객에겐 궁금한 사안이다.
 
영등포전통시장에는 순대 골목 입구가 따로 있을 정도로 순댓국집이 활성화돼 있다. 영등포아바이순대집, 아바이순대, 호박집, 칠성집, 금오순대, 토종바로순대, 우가네순대국 등이 영업 중이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돼지 특유의 냄새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 식욕을 자극받는다.
 
영등포역 건너편 좌측에 위치한 타임스퀘어 일대는 비교적 일찍 개발됐지만 여전히 한터(집창촌) 일부가 남아 암묵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타임스퀘어는 1919년 문을 연 옛 경성방직 자리에 자리 잡은 서남부권 복합쇼핑몰 랜드마크다. 개발을 하면서 옛 경성방직 사무동 한 채를 남겨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오월의종’이란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서 있다.
 
옛 경성방직 사무동은 볼거리‧먹거리
 
▲ 1936년 지은 옛 경성방직 사무동은 현재 베이커리 카페로 운영 중이어서 볼거리, 먹거리를 충족시키는 곳이다. [사진=필자제공]
 
옛 사무동은 벽돌조 목조트러스 단층건물로 1936년에 지었다. 한국전쟁 때 공장시설 대부분이 파괴되고 불탔지만 사무동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됐다. 당시 이 일대 들어선 연와, 기계, 피혁, 맥주 공장 등이 죄다 일본인 소유인 데 반해 경성방직은 김연수에 의해 내국 자본으로 만들었다. 문화재청은 산업유산인 옛 사무동을 등록문화재(135호)로 지정해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
 
타임스퀘어 옆으로는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이 있다. 이 공장 역시 근대 산업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 일대도 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대선제분 공장은 밀가루를 생산하는 곳으로 1936년 준공됐다. 2013년 공장이 아산으로 이전하면서 그동안 문을 닫았던 곳을 고 박원순 시장 시절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발하려 했던 서울시의 1호 ‘민간주도형’ 재생사업 대상이었다.
 
민간주도형이란 서울시와 토지주, 사업시행자 간 협의를 통해 사업시행자가 사업비 전액을 부담해 재생계획 수립부터 리모델링, 준공 후 운영 등 전반을 주도하는 형태다. 서울시는 공공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주변 인프라를 통합·정비하는 등 행정적 지원을 한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2019년 하반기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었지만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경관심의 결과 총 23개 건물 중 17개 동을 보전형 건축물로 결정했다.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이룬다는 결정이니 이 지역 개발 결과도 기대된다.
 
영등포 먹자골목 최강자 ‘여로집’
 
▲ TV드라마 ‘여로’에서 상호를 딴 ‘여로집’은 55년 된 오징어볶음 전문 노포다. 기름과 불맛을 배제한 고춧가루 본연의 맛에 충실한 독특한 볶음과 매운맛을 잡아주는 각종 사이드 메뉴의 궁합이 좋다. [사진=필자제공]
 
영등포 역전 일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시장기가 돈다. 며칠 전 페이스북을 통해 ‘오징어 볶음’ 잘하는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단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여로집’이 마침 영등포전통시장과 영등포 역전 사이에 형성된 먹자골목에 있다. 혼자서는 무리인지라 후배를 한 명 불러 오징어 볶음 ‘성지’를 방문했다.
 
식당 측 소개에 따르면 ‘여로집’은 1967년 영등포 역전에서 포장마차로 먹거리 장사를 시작한 최순환 여사가 번 돈을 모아 작은 가게를 마련하면서부터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생소했던 오징어 요리를 선보였는데, 의외로 손님들 반응이 좋았다. 최순환 여사는 아예 오징어 볶음 전문점으로 방향을 잡았다.
 
상호는 KBS 일일드라마인 ‘여로’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 ‘여로’(旅路)는 1972년 4월 3일부터 12월 29일까지 모두 211회 방영됐다. 당시 시청률 70%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태현실과 장욱제의 연기력과 고부갈등, 한국전쟁, 이별, 인간승리, 선행, 재결합 등 드라마의 요소를 두루 갖춘 것이 인기 비결이었다. 아마도 최순환 여사 역시 장욱제의 팬이었지 싶다.
 
식당 측은 ‘여로집’을 대한민국 대표 오징어 요릿집이면서 서민 맛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현재 2대에 걸쳐 55년째 식당을 운영 중이다. 맛의 비결은 “다른 볶음 요리의 단맛과 기름기 있는 매운맛과 차별되는 볶음 같이 않은 오징어 볶음 요리”라면서 “칼칼하면서도 달지 않은 독특한 매운맛으로 입소문이 났다”고 했다.
 
지난 21일 찾은 ‘여로집’은 추석 당일임에도 불구하고 만석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가족 모임 자제, 1인 가구 증가, 명절 음식 만들기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 등으로 외식하는 인구가 늘면서 요즘은 명절에도 식당이 제법 잘된다. 무엇보다 ‘여로집’의 반백년 저력이 자리를 꽉 채우는 원동력이지 싶다.
 
오징어 볶음은 식당 측 소개와 같이 기름과 불맛을 배제한 고춧가루 본연의 맛에 충실한 매콤하고 알싸한 식감이다. 국내산 오징어와 함께 듬뿍 들어간 무와 미나리 약간을 고춧가루에 버무려 뜨거운 불에 재빨리 볶아낸 것이 맛의 비결이다. 삶은 콩나물과 무 동치미, 상추는 변함없이 제공되는 기본 반찬이다.
 
오징어 볶음과 초무침이 메인 메뉴이고 매운맛을 중화시켜주는 사이드 메뉴로는 역시 계란찜이 단연 주문이 많다. 계란말이, 홍합탕, 조개탕, 해물파전 등으로 매운맛과 궁합을 맞추는 손님도 많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등어구이, 삼치구이도 판다.
 
매장에 걸려 있는 메뉴판에는 없지만 공깃밥과 비빔밥을 주문할 수 있다. 비빔밥을 주문하면 대접에 공깃밥과 김가루, 참기름을 둘러서 내준다. 여기에 오징어 볶음에서 먹다 남은 무채와 상추, 콩나물 반찬 등을 섞으면 훌륭한 비빔밥이 된다.
 
영등포 먹자골목에 들어서면 ‘여로집’ 본관과 별관이 마주 보고 있다. 본관 외벽에는 그동안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이 적혀 있는 간판이 세로로 걸려 있는데, 그 출연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만큼 오징어 볶음 전문점이란 희소가치가 방송사를 끌어들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제는 백화점식 메뉴보다는 한두 가지에 집중하는 전문점의 시대다. 오징어 요리 하나로 일가를 이룬 ‘여로집’은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식객들에게 사랑받은 것이다. 
 
▲ 영등포 오징어 요리 전문점 ‘여로집’ 내외관. [사진=필자제공]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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