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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유보와 배려의 언어, ‘이건 내 생각일 뿐’
자신의 견해·판단·지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이나 기대에 생기를 주는 대화법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8-12 09:46:46
 
▲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누군가와 대화할 때, “이건 내 생각일 뿐”이라고 전제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떤가. 모종의 여지가 생긴 느낌이 들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지만 상대의 생각이나 주장이 들어설 자리를 넌지시 내주는 셈이다. 
 
‘이건 내 생각’이라는 한마디일 뿐인데도 당신은 그의 배려를 느끼게 된다. 그의 말 속에는 ‘내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비움의 뜻이 담겨 있다. 당신은 그가 제공해준 심리적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선물은 물질로만 하는 게 아니다. 억울한 사람이나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에게는 말을 ‘경청’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 된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라고 전제하면서 소통하는 형식 또한 상대에게는 ‘선물’이다. 말 속에 이미 상대의 마음을 안아 주는 ‘공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이 상대의 견해나 판단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양해해 달라는 의미가 배어 있기도 하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라는 표현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작지 않다.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을 단정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소통 상대의 ‘생각’이나 ‘견해’를 존중하겠다는 태도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을 드러내는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지 깨어서 알고 있는 상태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각자의 생각대로’ 걷는다. 그 생각이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꽤 많은 사람이 바쁘게 교차하면서도 별다른 부딪힘이 없다. 그들도 또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건 내 생각일 뿐’이라는 유보적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거리의 자동차들을 보라. 운전자의 발은 브레이크 페달에 더 자주 얹혀 있다. 운전자의 ‘판단’이나 ‘목적’을 고집하지 않는 유보적 태도가 사고 유발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빠름과 유보의 조화가 도로 위 차량 행렬인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다 내면의 브레이크를 운영한다. ‘내 생각대로’와 ‘내 생각일 뿐’이 조화롭게 언어화될 때 관계의 균형이나 화평은 유지된다.
 
가슴이 탄탄하고 넉넉한 삼촌 같은 힘
 
사람 간의 충돌이든 교통사고든, 충돌은 대체로 생각의 부딪힘을 의미한다. 어느 날 아침,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를 몰고 도서관에 다녀온다고 나선 지 몇 분 후 전화가 온 것이다. 예감이 안 좋았다. 전화 목소리에 이미 돌발 사고에 처한 사람의 헐떡임이 담겨 있었다. 
 
아내는 회전교차로 옆, 인도 턱에 앉아서 놀란 몸을 가누고 있었다. 접촉 사고는 그 ‘회전교차로’에서 발생했다. 아내의 차는 운전석 쪽이 움푹 패고 길게 긁힌 채로 도로 가에 서 있었다. 아내의 차는 오던 길을 따라 사실상 직진과 같은 우회전을 하고, 상대 차는 회전교차로를 돌아서 아내가 가는 방향으로 빠져나오던 참이었다.
 
돌이켜보면 사건의 연유가 분명해진다. 사고 당사자인 두 운전자의 생각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우선 교통법규에 대한 두 운전자의 생각이 달랐다. 저쪽 운전자는 당연히 회전 교차로 차량이 우선이므로 본인 차가 먼저 가야 한다고 고집했고, 아내는 사실상 직진에 가까운 우회전 차량이므로 회전 교차로와 상관없이 본인 차가 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두 사람 모두 회전 교차로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의심이 없었다. 서로 상대편 차가 다가오는 것을 빤히 쳐다보면서 일이 벌어졌다. 굳이 심리적 과실을 찾아낸다면, 두 운전자 모두 ‘내 생각대로’ 운행했고, 각자의 생각을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뇌 과학자 박문호 박사는 “생각은 의식의 극히 일부이며 언어가 매개된 구체적인 추론·판단·예측 영역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다시 풀어본다면 ‘생각은 추론·판단·예측일 뿐’인 것이다. ‘생각’ 속에는 확정적이거나 단정지을 만한 실제적 성품이 들어 있지 않다. ‘생각’은 ‘지금 이 순간’ 직접 보거나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생각은 상상이거나 망상, 근거 불충분한 기억일 뿐’이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라고 전제하는 상사, ‘이건 내 생각인데’라면서 말머리를 여는 선배에게서는 힘이 느껴진다. 가슴이 탄탄하고 넉넉한 어릴 적 삼촌 같은 힘.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의 처지가 ‘추론·판단·예측’의 수준임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라고 말머리를 여는 사람을 만나면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 자신의 견해나 판단·기억·지식을 확정된 진리나 기정사실로 못 박지 않겠다는 그의 의도가 나의 생각이나 기대에 생기를 주기 때문이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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