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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대한민국 관혼상제 신 풍속도(上)
전통 앞세워 스트레스 주는 제사는 가라… 제사에 부는 ‘현대화 바람’
성균관, 제사·차례상 현대화 추진…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
제사상에 전통음식 대신 멜론·딸기케이크… “고인의 취향이 우선”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비대면 제사… 거리두기 해제 후 변화 꿈틀대
양준규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0-04 00:07:00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거치는 4가지 큰 예식을 의미한다. 성인이 됐음을 알리는 관례(冠禮), 결혼식을 올리는 혼례(婚禮), 장례를 치르는 상례(喪禮), 제사를 지내는 제례(祭禮) 등을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우리사회의 관혼상제 문화도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에서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약화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는 해제됐지만 관혼상제에 관한 변화는 이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스카이데일리는 이번주 이슈포커스 주제를‘대한민국 관혼상제 신 풍속도’로 정해 관혼상제 문화 가운데 가장 변화가 큰 제사와 결혼식을 중심으로 두 편에 걸쳐 조명해본다.

▲ 퇴계 이황 불천위 제사에 비대면으로 참석한 참제자들이 절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상의 넋을 기리고 은혜에 보답하고자 후손들이 마음을 다해 예를 올리는 제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중 하나다. 하지만 제사상을 차리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과 가사노동 등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제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코로나19로 생활상에 일대변화가 일어나면서 제사 문화도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제사 기피하는 젊은 세대 갈수록 늘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제사가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유교를 국교로 삼은 이성계가 조상제사를 민간에 널리 장려하면서 돌아가신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가 양반들 사이에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해마다 설날과 추석이 되면 사람들은 친척들을 만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는 ‘민족대이동’이 일어나곤 했다. 불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러한 이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명절만 되면 일어나는 극도의 교통 체증으로 인해 10여년 전부터 명절때 부모가 자식이 거주하는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역귀성’도 눈에 띄며 변화의 바람을 예고했다.
 
사람들이 명절만 되면 지옥같은 귀성길을 무릅쓰고 움직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친척들을 만난다는 측면도 있지만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친밀감을 재확인하는 당초 취지와 달리 명절 때 여성의 가사부담이 급증하고 이로 인한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으면서 제사를 지내는 행위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돼 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가족실태조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국민의 45.7%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남성(40.7%)보다 여성(50.6%)의 동의율이 높았다. 제사 준비 과정에서 노동 부담이 큰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제사를 선호하지 않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 이상~30세 미만(63.5%)’의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30세 이상~40세 미만(54.9%) △20세 미만(53.0%) △40세 이상~50세 미만(49.3%) △50세 이상~60세 미만(38.1%) △60세 이상~70세 미만(32.8%) △70세 이상(27.8%) 순으로 나타나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제사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성균관이 발표한 차례상 간소화 방안. [사진=성균관유도회총본부]
 
조상을 기억하고 기리는 제사의 취지는 사라지고 귀찮고 스트레스를 주는 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보수적인 유림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유교의 현대화’의 일환으로 제사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은 올해 7월 신임 회장으로 추대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등의 풍습은 어떤 예서에도 나와 있지 않다”면서 “기일 당일에 제례를 모시는 등의 기본 원칙만 지키면 각 집안 전통에 따르면 된다”고 말했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올해 추석을 앞두고 간소화된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상에 올릴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4가지) 술 등 9가지다. 추가적으로 육류, 생선, 떡을 놓을 수 있지만 가족이 서로 합의해 결정한다.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 성균관은 내년까지 매년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에 대해서도 간소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성균관 측은 “예의 근본정신을 다룬 ‘예기’의 ‘악기’에 따르면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면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제사상에 딸기케이크·비대면 제사… 코로나19 이후 제사도 새바람
 
제사 문화의 변화는 제사 간소화뿐만이 아니다. 제사의 형식에도 현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예전처럼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기 힘들어지자 제사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월20일 퇴계 이황 선생의 ‘불천위’ 제사가 온라인으로 열려 화제가 됐다. ‘불천위’ 제사란 나라에 큰 공훈을 남기고 죽은 사람의 신주를 4대 봉사가 지난 뒤에도 묻지 않고 사당에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에 제를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퇴계 이황 선생 불천위 제사에는 수백명이 참석해 고인을 기리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소수 인원만 참석한 채 축소 거행했다.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화상회의 플랫폼 ‘줌’에 접속해 자택에서 제사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노트북을 보면서 절을 하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평소 퇴계 선생께서 강조한 ‘선어금이불원어(현실에 맞게 하되 옛것에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기호(54·가명)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상에 멜론과 딸기케이크를 올렸다. ⓒ스카이데일리
 
최근에는 제사뿐 아니라 장례도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등 변화의 물결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8월20일 별세한 대웅제약 창업주 윤영환 명예회장의 유족들은 조문과 조화 등 오프라인 조문을 일절 사양하고 '온라인 추모관'을 통해 외부 조문만을 받아 화제가 됐다. 특히 유족들은 일반적인 장례문화와 달리 빈소와 장지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회사측이 창업주의 장례식 외부 조문을 온라인 추모관 만으로 운영한 것은 업계 최초이자 제사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를 시사하는 사례라는 점에서 눈여겨볼만 하다.
 
대웅제약 공식 웹사이트에 안내된 경로를 통해 접속할 수 있었던 온라인 추모관에는 고인의 삶, 어록, 경영철학에 대한 영상과 글이 올라와 있다. 여기에 회사 직원과 지인, 유족 관계자 등의 추모글이 줄줄이 달렸다. 온라인 조문객들은 “검소한 모습으로, 많은 가르침으로 회사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다”거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평생 기억될 것” 등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추모사를 남기고 갔다.
 
이에 대해 대웅제약 측은 “상주 중심의 기존 장례문화에서 벗어나 고인 중심의 장례문화를 정착하고자 온라인 추모관을 통해 조문을 진행했다”면서 “이러한 시도가 질환의 접촉을 축소해야 하는 팬데믹 시대에 부합하고, 또한 장례 참가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수고나 비용에 대한 개선 등 새로운 장례문화의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전통적인 제사 음식 외에 고인의 취향을 고려해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서울에 사는 정기호(54·가명) 씨는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상에 일반적으로 제삿상에 올라가지 않는 멜론과 딸기케이크에 문어숙회까지 올렸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이기 때문에 상에 올렸다는 것이 정씨의 설명이다.
 
정 씨는 “돌아가신 분을 기리기 위한 의식인데 남들 하는 것처럼 올리기보다는 고인의 취향에 맞추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고인께서 제삿상을 받았을 때 좋아하시면 좋아했지 왜 옛날 방식에 안 맞췄냐고 화내실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수원에 사는 이정수(33·가명) 씨 가족은 제사가 있는 날이면 일가친척이 모두 참석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뤄지자 자연스럽게 직계 가족만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거리두기가 해제 된 올해에도 이정수 씨 가족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정수 씨는 “옛날에는 일가친척이 다 수원에 살아서 문제가 없었는데 하나 둘씩 이사를 하면서 꼭 제삿날마다 모여야 하는 지를 두고 갈등이 많았다”며 “친척 중 한명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제사 안 온다고 못을 박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씨는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다들 제사에 대해서 하고 싶었던 말을 다 꺼내게 된 것 같다”며 “제사가 6월인데 4월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부터 집안 어른들을 설득해 명절에만 모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조장연 성균관 유교문화활성화 사업단 단장은 “요즘 제사 지낼 때 이렇게 해도 되냐 하는 식의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예법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고 변수가 생겼을 때의 문제는 정해놓은 것이 없으니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유지한 채로 당사자끼리 조율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조 단장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예법이 정해진 지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전례를 참고하고 활용할 수는 있지만 너무 경직되게 지키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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