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린 날, 문자가 생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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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하늘이 열린 날, 문자가 생긴 날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09 13:27:47

10월에 두드러진 국경일은 단연 개천절과 한글날이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으로 10월3일이었는데 지내기 쉽게 양력으로 바꿨다. 왜 개천절이 10월3일인가?　우리 조상은 10월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한 해의 수확으로 제천행사를 행하는 달을 귀하게 생각했다. 또한 3을 길한 숫자로 여겼다.

그런데 왜 건국절이 아니고 개천절이라고 했을까. 이날이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하늘을 열어 인간세계로 내려온 것을 기념한 날이기 때문이다. 개천절의 ‘개천(開天)’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 천신인 아버지 환인의 뜻을 받든 환웅이 하늘을 열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와서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시작함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인간세상을 동경한 환웅이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하늘 문을 열고 지상으로 강림한 사건이 핵심이다. 바람신·구름신·비신을 비롯한 하늘백성을 거느리고 최고로 행복한 나라를 건설한 환웅의 뜻은 그대로 아들인 단군의 건국이념이 되었다. 마음속에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환웅은 그들의 가능성이 열매 맺는 날을 기다리며 부족함이 없는 정치를 펼쳤다. 천손(天孫)인 단군이 세운 나라인 조선은 하늘이 지닌 광명함과 공정함이 돋보이는 나라이다.

그로부터 3700여년 후인 계해(1443)년, 세종 25년 12월30일에는 이러한 환웅과 단군의 마음을 본받아 28자의 훈민정음이 창제되었고, 이후 세종 28년 병인(1446)년 9월29일에 완성되어 반포되었는데, 이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9일을 한글날로 정했다. 예조판서 정인지의 서문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사용함에 구비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디를 가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도 모두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으로서 제도와 시설이 백대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히 이루어졌으니….”

세종 임금의 정음 창제에는 땅의 백성을 위해 하늘을 열어젖힌 단군의 아버지 환웅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홍익인간 이야기에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과 식물이란 존재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늘과 쑥·호랑이와 곰 이야기가 함께 등장한다. 이처럼 식물·동물과 함께 누린 행복이 홍익인간이다. 훈민정음도 그렇다. 백성들의 편안하고 원활한 생활을 위하여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의 소리를 표기할 수 있게 만든 정음이다. 그리고 그 표기의 방식은 수천 년 전 하늘에서 땅으로 옮겨 온 환웅이 지닌 자연의 모습을 본떴다.

이러한 환웅과 세종대왕의 마음은 인도네시아 부퉁섬의 문자 없는 소수민족인 인구 7만명의 찌아찌아족에까지 닿았다. 2009년에 문자가 없는 그들에게 한글이 보급되었다. 2005년 전태현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방문으로 시작되어 훈민정음학회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한글 도입 제안에 대해 찌아찌아족은 부족장 회의를 열어 이를 수락했다.

현지에서 한글을 가르칠 교사로 정덕영 씨가 선발되었다. 정덕영 교사는 한글의 편리성과 우수성을 검증해 준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한글을 금방 익힌다는 점이다. 한국어는 한나절 언어·반나절 언어라고도 부르는데 1대 1로 가르치면 반나절(3시간) 만에도 한글을 읽는다고 증언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말을 한글로 표기함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무엇이든 뜻이 통하게 한 훈민의 정음을 연 성왕의 업적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