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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칼럼]
“만일 잘못되더라도 원망하지 않겠다”
조정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2-19 00:02:40
 
▲ 조정진 발행·편집인 겸 주필
그해 여름은 잔인했다. 20176월 대한민국 공군에 입대한 아들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공군교육사령부에서 6주 동안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23일간 짧은 휴가를 나왔다. 서울에서 진주까지 차로 마중 간 우리 가족은 산청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귀가했다. 7시간 이상 차 안에 꼬박 앉아 있던 아들은 훈련 후유증과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기진맥진했다. 갑자기 열이 39도를 오르내렸다.
 
11시가 넘어 종로구에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시켰다. 응급실에서 밤을 하얗게 샜다. 훈련소 복귀일인 다음 날이 되어도 좀처럼 고열은 내리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으로 훈련소 담당 교관한테 전화로 귀대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사정은 딱하지만, 오후 9시까지 위병소를 통과하지 않으면 탈영처리가 돼 기수(777) 수료가 안 됩니다고 말했다. 한 기수 밀린다는 거였다.
 
아내는 발만 동동 굴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이란 사자성어가 이럴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병원에서 교육사령부까지 거리를 측정해 보니 340km였다. 아무리 빨리 가야 자동차로 4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고속도로 중 어느 한곳이라도 막히면 5시간은 잡아먹을 먼 거리였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군인은 내 아들이기 이전에 나라의 부름을 받은 국가의 재산이다.” 군대 규칙대로 정해진 시간 안에 무조건 훈련소에 반납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우선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려던 중학교 2학년생 둘째아들을 호출했다. 병원에서 얻은 얼음을 수건에 싸서 고무줄로 칭칭 감아 얼음주머니를 만들고 담요를 준비해 열이 펄펄 끓는 큰아들을 낡은 SUV 승용차 뒷좌석에 태우고 차를 출발시켰다. 530분이 막 넘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휴게소는 한 번도 들를 수가 없었다. 막내아들은 서울에서 진주까지 내내 얼음주머니를 형의 이마에 대고 있었다. 아내는 수시로 체온을 측정하며 준비한 과일로 네 식구의 허기를 해결했다. 대전까지는 경부고속도로로, 그 아래쪽은 통영대전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제한속도인 시속 110km 이상으로 내달렸다. 운전대를 움켜쥐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큰 애가 잘못되면 어떡할까. 군대라는 곳이 아파도 그냥 방치한다고 들었는데, 대학병원에서도 잡히지 않은 고열이 안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고열이 지속되면 지능에 이상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그 어렵다는 물리학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닐까? 첫 애라 유명 대학 부설 사립초등학교에 보냈다가 영재성이 발견돼 전학까지 시키며 영재 코스를 밟았고, 외국에 어학연수까지 보내는 등 정말 애지중지 키웠는데 만약 잘못되면.
 
나쁜 생각을 포함해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경남 진주시 금산면 송백로 46에 도착했다. 859분이었다. 위병소에는 담당 교관은 물론 훈련소장까지 나와 있었다. 훈련소장이 거수경례를 하며 아들을 인수하더니 자신의 차에 태워 부대 안으로 급히 데리고 들어갔다. 위병소 앞에 덩그러니 남은 우리 가족은 그때서야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생각할 겨를이 생겼다. 하지만 한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아들이 들어간 어둠과 적막감만 도는 부대 안만 힐끗힐끗 쳐다보며 애써 울음을 참아 냈다.
 
하늘이 도왔는지, 아들은 무사히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 배치를 받아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만기 전역했다. 지금은 복학해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1997년생인 아들은 세월호 사고 때 다수의 희생자들과 같은 고교 2학년이었다. 이번 이태원 사고 때는 주변의 지인 몇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참사’ 트라우마가 없을 수 없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가족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이 쓴 이유가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자식이 죽을 지도 모르는 고열에 시달리는 걸 빤히 알면서도 귀대시킨 부모의 마음으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떠올려 보았다. 만일 내 자식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국적불명의 귀신놀이인 핼로윈 축제를 즐기다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백 번 천 번 생각해도 나라면 대통령·국무총리·행정안전부 장관의 사과나 퇴진을 요구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6·25나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병사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보은은 국가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유족이 나서서 쟁취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시한까지 정해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고 물러나라고 윽박지르는 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의 국민이 할 일인가. 공군교육사령부 앞에서 군인은 국가 소유이니 잘못되더라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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