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7]왜성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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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장교들과 낭인들이 총과 칼을 휘두르며 건청궁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12 13:01:59

남산 기슭 일본인 거주지 왜성대에 위치한 일본 공사관에서 미우라 공사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일이 끝날 걸 생각하지는 못했다. 아침 6시경, 왕비를 살해했다는 보고를 받고 장안당에 가서 국왕을 만났다. 근정전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군과 함께였다. 거의 정신을 잃은 왕을 다그쳐 김홍집내각을 세웠다. 왕은 왕비가 죽은 걸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밖에 나와 보니 대일본제국의 전리품, 난자당한 왕비의 시신이 피범벅이 되어 옥호루 뜰에 놓여 있었다.

“흔적이 남지 않게 태워 버려!” 이렇게 명령할 때 기분이란, 상쾌하고 개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제 조선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왕비를 벤 훈련대 교관 미야모토 소위를 비롯한 군인들과 칼잡이들을 깔끔하게 해산시키고 천천히 공사관으로 돌아와 스기무라 서기관과 맥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보름 전 한성신보 사장인 아다치 겐조를 만난 밤이 떠올랐다. 미우라는 아다치에게 맥주를 권하며 ‘여우사냥’에 필요한 낭인들을 요청했었다.

아다치는 그 말을 듣고 아주 감동한 모습이었다. 낭인들은 충분하지만 그들이 신문 경영에 관련된 학벌 좋고 얌전한 자들이라, 필요하면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을 일본에서 데려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낭인이란 게 그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면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왕비살해는 이토내각과 대본영에 의해 결정되고 천황폐하가 사전에 승인하신 치밀하고 거대한 프로젝트였으니까. 그 일을 위해 무관인 나, ‘한다면 하는’ 이 미우라가 조선에 온 게 아닌가! 본국에 보낼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스기무라 서기관이 들어와 화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사님, 지금 베베르 공사를 비롯한 서양 외교관들이 왔습니다.”

‘쳇! 이 중요한 때에 웬 양놈들이,...’

미우라는 얼른 책상을 정돈하고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들 오십시오.”

“미우라 공사님, 오늘 새벽에 도대체 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궁에는 귀국 수비대 수백 명이 깔려 있더군요. 우리는 오늘 아침 참사에 대한 당신의 답변을 들으러 왔소이다.”

베베르 러시아공사의 음성에 화난 기운이 가득했다. 베베르 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알렌 대리공사. 영국 힐리어 총영사를 위시해 각국의 외교관이 항의하러 온 것이다.

“허,... 참,... 왜 그걸 제게 물으십니까?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른 새벽에 왕이 저를 부르셔서 허둥지둥 나간 것 뿐입니다.”

미우라가 둘러댔다. 옆에 있던 스기무라 서기관이 말을 보탰다.

“본 공사관이 파악하기로는 오늘 부로 왕궁을 지키는 훈련대를 해산한다는 조치가 내려졌는데, 이에 반발한 훈련대가 대원군과 결탁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 서기관의 말대로, 그러니까,... 다들 알고 계시는 일 아닙니까?”

“궁궐 당직이던 외국인들이 사건 현장을 지켜 봤습니다. 미우라 공사님, 잡아 뗄 일이 아니십니다. 증인이 있어요. 일본군 장교들과 낭인들이 총과 칼을 휘두르며 건청궁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이 있단 말씀입니다.”

베베르 공사가 다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