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여제’ 김연경, 기분 좋게 코트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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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챔프전 이변의 역전 우승 내줬지만 울 수가 없어
통합 우승 위해 흥국생명에 잔류… 절친 김지수도 합류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4-26 08:30:48

2022~23 여자프로배구 V리그 챔피언 결정전은 ‘확률 0’에 도전한 한국도로공사의 역전 우승으로 끝났다. 18년째를 맞은 5판 3승의 V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1·2차전을 모두 승리하고도 챔피언에 오르지 못한 적이 없었다. 1·2차전에서 연달아 승리한 팀의 우승 확률은 100%였다.

그러므로 두 번 내리 승리를 거둔 여자 배구의 ‘명가’ 흥국생명의 챔피언 등극을 아무도 의심치 않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시리즈에서 ‘패·패·승·승·승’을 기록하며 V리그 최초의 리버스 스윕을 일궈낸 도로공사였다. 정규리그 3위 도로공사가 플레이오프에서 2위 현대건설을 꺾은 뒤 챔피언 결정 5차전에서 역대 포스트시즌 최장 경기 시간인 158분의 혈투 끝에 흥국생명을 꺾은 것은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피날레였다.

다 잡았던 챔피언 자리를 도로공사에 아쉽게 넘겨준 뒤 에이스 김연경은 허탈감에 빠졌지만 남들처럼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배구 여제’로 불리는 그가 화려한 선수 생활에서 ‘기적의 역전패’라는 불명예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승부욕이 유달리 강하다. 지는 경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오래전에는 무릎 연골 파열 판정을 받고 재활훈련을 3년간 반복한 끝에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욕망이 누구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경기 중에는 후배들의 잘못된 플레이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식빵 언니’라는 별명을 얻은 김연경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배구공과 인연을 맺은 김연경은 일본 여자프로배구 JT 마블스, 터키리그의 페네르바흐체 SK,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등에서도 활약한 월드 스타였다. 25년간의 배구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를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새 출발을 다짐한 것은 정상에서 물러나고픈 승부욕 때문이다. 챔피언 결정전 바로 다음 날 열린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역대 두 번째 만장일치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뒤 “통합 우승이 가능한 팀에 입단하고 싶다”며 심중을 밝힌 김연경이었다. 그가 뼈아픈 패배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것이다.

▲ V리그 정규리그 시상식장에서 단상에 올라 소감을 밝히는 김연경. 연합뉴스

흥행의 보증수표로 불리는 김연경은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과 독기·정신력으로 버텨 왔다. 한국을 거쳐 일본·튀르키예·중국 등지에서 선수생활을 해 오면서 이방인으로서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선 한국여자배구 대표팀이 기적같은 4강에 오르기까지 후배들을 이끌고 넘기 힘든 벽을 돌파해 수훈 갑의 선수임을 증명했다. ‘갓 연경’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였다. 당시 세계 14위였던 한국 여자배구는 세계 4위 튀르키예·5위 일본·6위 도미니카를 차례로 격파하는 선전을 거듭해 국민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당초 올림픽이 끝난 뒤 중국리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은퇴하려고 했던 김연경이었다. 흥국생명에서 지난 겨울 뛰면서 우승으로 마지막 기여를 하고 박수를 칠 때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었다. 챔피언 결정전까지 그런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전년도 6위였던 흥국생명은 중위권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김연경 효과를 앞세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고, 통합 우승을 차지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미국에서 지도자 수업 후 기회가 주어지면 도전하고 싶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자리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더 하라는 신의 뜻이었을까. 손안에 쥔 우승의 대어를 놓치면서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은 당연했다. 어떤 식으로든 마지막 도전에 성공하고 선수생활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김연경에게 아직 끝은 오지 않았다. 김연경은 당초 이적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으나 원 소속팀 흥국생명과 7억7500만 원(연봉 4억7500만 원·옵션 3억 원)에 1년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머뭇거리지 않고 빠르게 결단을 내린 것은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자신의 해외 이적으로 빚어진 흥국생명과의 갈등, 지난 1월 권순찬 감독의 돌연 경질 등에 마음이 흔들렸던 김연경이 눌러앉은 것은 오로지 챔피언 등극이라는 대명제 하나 때문이다.

더구나 과거 튀르키예의 페네르바체에서 김연경과 함께 두 차례 우승을 일궈 낸 이탈리아 출신의 아본단자 감독이 흥국생명에 온 것은 두 달 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지도자 아본단자 감독의 설득과 비전을 믿고 우승을 이루어내자는 의기가 투합했기에 김연경이 흥국생명과 동행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배구 인생을 함께한 절친인 김수지가 FA로 이적해 와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은 김연경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시즌 오픈은 아직 멀었다. 6개월이나 남았다. 이제 30대 중반을 넘긴 김연경은 더 성숙하고 강하게 되어 돌아올 것이 확실하다. 얼마남지 않은 선수생활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를 기원한다.

박병헌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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