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스미스가 돌아왔다! 어둡고 불안한 날의 ‘스프링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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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작가에서 자연, 우주, 신화로 시선 확대
불만과 항의, 우울과 슬픔이 가득한 ‘봄날의 햇살’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5-30 20:45:02

▲ 2023년 신작인 ‘Evening Star’ 부분. 키키 스미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도상학적이다.

키키 스미스가 돌아왔다. 24일까지 한남동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스미스의 ‘스프링 라이트’ 전시를 진행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자유낙하’ 전시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지 두 달 만이다. 이번에는 올해 제작한 신작을 포함해 60여 점의 작품이 목록에 올라 있다.

그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웃음소리 ‘키키’로 시작해 가장 미국적인 성 ‘스미스’로 마무리 지어지는게 과연 우연일까? 이 시대에 발붙이고 살면서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겠다는 함의가 담긴 작명이 아닐까?

키키 스미스는 ‘여성주의 작가’로 알려질 만큼 오랫동안 여성의 신체에 천착해왔다. 2000년대 들어 자연, 우주, 신화, 설화의 세계로 시선을 확대했다고는 하지만 키키의 작품 저변에는 여전히 여성성과 생명성에 대한 성찰이 짙게 배어 있다.

작가의 그림에서 중세 도상학적인 분위기가 짙게 풍기는 것 역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예수의 물음처럼 어찌하여 신께서는 약자를 그대로 방치하는지 이에 대한 작가의 물음으로 읽힌다.

그래서일까. 전시회 주제가 ‘스프링 라이트’임에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어둡다. 짙은 청색의 그림들은 불만과 항의로 가득 차 있으며, 조각 작품에서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슬픔이 엿보인다.

이번 전시회의 대표작 격인 ‘다크 워터(Dark Water)’는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하고 있다. 여성의 눈과 입, 그리고 온몸에서는 어두운 물이 뿜어져 나온다. 여성의 발은 허공에 떠 있다. 한없이 나약해 보이는 그에 비해 어두운 물은 그를 공중에 매달만큼 힘이 세다. 그의 삶은 눈물과 피에 지배 당하고 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켄트 제단화’ 속 어린양을 연상시킨다. 어린양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는 희생의 상징이다. 인류를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예수처럼 이 불의한 시대는 정녕 여성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삶을 구원받으려 하는 것인가.

2023년 신작인 ‘이브닝 스타(Evening Star)’는 다분히 도상학적이다. 지혜의 상징 ‘올빼미’가 어두운 하늘을 날고 있다. 푸른 하늘에는 저녁 별이 빛난다. 별은 영원을 상징한다. 그리고 더 높은 곳에서는 돌덩어리가 쏟아진다.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곳은 산과 강, 자연이다. 이 동화 같은 그림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불안한 시대, 우리에게는 올빼미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 이번 전시에는 올해 제작한 신작을 포함해 60여 점의 작품이 목록에 올라 있다.

세상은 여전히 전쟁과 폭력이 들끓고 있다. 밀림은 줄어들고, 대기에는 오염물질이 가득하며 어린 생명은 기아에 시달린다. 바다는 병들어 가고, 빙하는 녹고 있다. 키키 스미스의 전시는 예술적 논의를 넘어 우리가 마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시대적 소명을 일깨운다. 힘과 자본의 논리에 이대로 침식되어 가도 좋은 것인지…

글·사진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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