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지방 소멸’만 앞당기는 괴물 지방자치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주민 없고 탐관오리만 북적… 패러다임 변화 없으면 미래 암울
창의적 ‘시민 기술’ 접목된 민관합동 제3 섹터로 돌파구 찾아야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18 06:32:00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1991년 생겨난 중요한 정치적 산물이 지방자치의 부활이다. 주민참여 제도의 활성화에 기반하여 국가균형발전·지방분권 촉진·지방행정 체제 개편이라는 3개의 축이 자치제의 골격이다.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벌써 30년을 훌쩍 넘겼다. 평가도 분분하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요소가 여전히 많다. 국가균형발전 면에서는 동서 불균형에 대한 상당한 시정이 이루어졌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동쪽이 훨씬 더 열악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중앙과 지방 권력의 담합 결과로 경북 북부 지방은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초라한 지역으로 남아 있다. 지방분권과 지방행정도 중앙 권력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지방 권력의 정치 비대화로 권력형 비리와 부조리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지방자치를 한다는 나라에서 늘 주민은 뒷전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이와 같은 참담한 현실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에 불거진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분쟁이다. 중앙에서는 여야가 치고받고 싸우고, 지방에서는 전·현직 군수들까지 합세해 서로 탓을 상대에게로 떠넘기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다.

노선 결정 과정에서 주민의 의사는 무시된 채 정치판이 이권을 챙기려고 온갖 분탕질을 한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주민의 참여는 일절 없고, 밀실 야합 정황과 각본을 짜놓은 듯한 용역업체 결과 보고서만 보인다. 투명하게 처리했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일이 특혜 시비에 말려 자칫 무산될 위기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뒤늦게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고 호들갑이다.

요즘 며칠 일반 국민을 분노케 하는 뉴스가 여럿 나왔다. 또 지방 관련 비리다. 국비와 도 예산 16억 원을 투입하여 제작된 거북선이 땔감이 되어 폐기 처분되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라는데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금강송이 아닌 불량 수입 목재를 써서 제작된 거북선은 물이 새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넘쳐난다. 전형적인 혈세 낭비 사례다. 군위 삼국유사 테마파크·기장 정관 아쿠아 드림파크·원주 관광열차(+정비고)·남원 모노레일·통영 VR 존 등 대부분 관광 활성화와 관련된 프로젝트다. 타당성 검토나 수요 예측 등에 대한 주먹구구식 사업 추진이 빚어낸 예정된 결과물이다. 중앙·지방 권력의 담합으로 선심성 국비를 마구잡이로 남발하면서 생겨나고 있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지방자치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정치판과 지방 공공조직이 갖은 로비를 통해 국비를 따내 그들만의 교묘한 나눠먹기식 잔치판을 벌인다. 정보 독점으로 이권 카르텔을 만들며 그 과정에서 진영 간의 주도권 싸움이 필연적으로 생겨나면서 잡음이 연속된다. 이웃 일본은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해 일찍부터 제3 섹터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공공·민간의 역할 분담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비리를 원천 봉쇄한다.

1섹터는 공공, 2섹터는 민간, 3섹터는 이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법인이다. 공공은 예산 절약과 민간 노하우 동원이 가능하고, 민간은 공공을 담보로 하여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이 생긴다. 제3 섹터 리더는 대부분 민간 인사가 된다. 한국에서도 일부 시행되고 있으나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정부에서도 민간참여형 투자 펀드 운영 방안을 제고하고 있다니 더는 미룰 일이 아니다.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이 최대의 화두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낙후된 지방부터 소멸이라는 심판대에 오른다. 인구 10만 이하의 기초단체가 속출하고, 수도권 집중 혹은 광역화라는 대세는 더 노골화되고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결국 지도상에서 없어지는 지방의 수가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하는 곳과 하지 않는 곳의 명암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 또한 시간문제다.

주민의 아이디어 발현이 활발하고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율이 높으며 주민의 실행률이 높은 지방일수록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시대정신에 역행하면서 물욕과 탐욕에 사로잡힌 부도덕한 지방 권력이 판을 칠수록 그 지역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선진국일수록 ‘시민 기술(Civic Technology)’이 지방의 미래를 주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방의 변신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의 결과이며 그것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유럽·미국·일본 등 선진국을 포함해 다수 아시아의 도시들이 모범적인 성공 사례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문화가 미래’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예술을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우리는 어떤가. 지방이 볼 것 없으니 모두가 해외로 나돈다. 일본에 오는 해외 관광객 3분의 1이 한국인이라고 할 정도로 관광수지 적자마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세금으로 해외 선진 사례를 배운다고 나가서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니는 선량들의 행태를 보면 울화가 치민다. 살길이 막막해지면 보금자리를 떠나기 마련이며, 그나마 국내에서 이동하면 제로섬 게임이라도 되지만 최악의 경우 해외로 떠나는 인구 유출 사태가 오지 않을 리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스템을 바꾸고 지방 회생의 패러다임을 전면 손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자치를 이쯤에서 포기하자.

김상철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