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올 상반기 ‘내 마음 최고의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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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살인자 용서한 이대봉 회장 얘기는 가슴 뭉클
그건 손양원 순교 이후 한국정신사의 위대한 진화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8-01 06:31:30

험한 시대 세상은 온통 어두운 뉴스의 홍수다. 나라의 운명이 달린 좌빨과의 싸움을 당분간 계속할 수밖에 없지만 오늘 이 지면은 좀 다르다. 올 상반기 내 마음 속 최고의 뉴스를 너른 시야에서 음미해 볼 참이다. 진흙탕 세상에서 건져 올린 가슴 뭉클한 소식이 지난 5월 언론에 두루 소개됐다. 우리 모두를 멍하게 했던 그 뉴스의 의미와 파장을 새삼 점검해 보려는 게 이 글이다.

스토리는 서울 평창동에 개관한 서울아트센터에서 시작된다. 그 홀은 예술의전당·LG아트센터 못잖은 강북권의 문화 명소다. 서울예고 건물이니까 학내 행사가 먼저이겠지만, 앞으로는 서울 시민에게도 공개된다. 정말 관심이 가는 건 홀을 세운 이대봉(82) 참빛그룹 회장 가족 이야기다. 놀랍게도 그는 36년 전 서울예고 성악과 1학년생이던 막내아들 대웅을 잃었다.

잘나고 노래 잘하던, 열여섯 살 난 아들을 죽인 건 끔찍한 학교폭력이었다. 희생당한 아들은 3형제 중 막내. 인기 있는 그를 선배들이 시샘해 구타한 게 돌연한 심장마비로 이어진 것이다. 이 회장은 그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가해자 학생에 대한 처벌을 굳이 원치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5월 그가 했던 신문 인터뷰 발언을 옮긴다.

“(해외 출장 중 참변 소식을 듣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는 학교를 다 부숴 버리겠다고 다짐했지요. 하지만 막상 영안실의 아이를 보니 눈물만 났어요. 복수한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난동을 피우면 아버지가 저러니 아들이 벌을 받았다 할 거고요. 제가 가톨릭 신자인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기로 한 겁니다.”

당시 아내 역시 충격으로 네 번 혼절에 혼절을 거듭할 때 그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귀국 직후 그는 담당 검사에게 가해자에 대한 선처를 탄원했다. 이듬해엔 아들 이름을 딴 장학회도 설립했다. “아들이 평생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기 위한” 방법으로, 이후 3만 명의 학생을 도왔다. 하지만 진짜 스토리는 이제부터다. 세월이 흘러 2010년, 아들의 모교 서울예고가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그는 덜컥 학교 인수까지 결심했다.

이번 교내의 명품 공연장 건립도 학교 인수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의 일관된 관심의 일환이다. 그렇게 학교와 서울아트센터에 몰두하는 이 회장을 보고 사람들은 “아들을 죽인 학교에 왜 투자하느냐”고 묻는다. 그의 답은 한결같다. “아들의 꿈이 자라던 학교가 아니냐?” 가톨릭 평신도의 놀라운 사랑과 용서의 이야기는 우리를 거듭 감동시킨다.

이제 새로운 질문을 하고자 한다. 그 멋진 스토리가 과연 느닷없이 땅에서 솟아난 걸까? 그럴 리 없다. 실은 그의 뉴스를 듣는 순간 떠오른 게 기독교의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정신사의 일대 사건이 분명했던 순교자 손양원(1902~1950) 목사 이야기다. 세상이 아는 대로 그는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하다.

그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두 아들(동인·동신)을 반란군의 손에 동시에 잃었다.

좌익학생들에게 총살당한 것이다.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손 목사 사랑의 원자탄은 그때 터졌다. 총살에 가담한 좌익 학생을 용서한 것은 물론 그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는 위대한 결심을 한 것이다. 놀랍게도 좌익 학생은 맏아들 동인과 같은 학교, 순천사범학교의 3학년 학생이었다. 손 목사는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그 학생을 끝내 자신의 가슴에 품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그 학생을 데려다 자기 집에서 먹여 주고 재워 준 것은 물론 훗날 신학생으로 키웠고, 신학생이 되기 전에도 신앙 집회 때마다 데리고 다니며 마음속에 신앙을 심어 주었다. 1940년대 말 당시 벌써 세상 사람들은 손 목사를 성인이라고 추앙했고, 그의 사연을 담은 단행본 ‘사랑의 원자탄’은 이듬해인 1949년 말 베스트셀러가 됐다. 남은 스토리도 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직후 6·25가 터지며 급기야 손 목사 역시 인민군에 의해 처형당하고 만다.

시간이 흘러 조금은 잊혀지고 희미해졌지만 그럼에도 되물어야 한다. 손 목사 이야기는 신앙 차원의 결단에 그치는 걸까? 그럴 리 없다. 건국 전후 대한민국사가 쌓아 올린 금자탑이고, 20세기 한국인의 마음을 뒤흔든 일대 사건이 맞다. 실은 손 목사의 위대한 사랑과 용서는 우리가 19세기 이전 한국인의 정신사에서 보아 온 종류의 것이 아니다.

고대 시기의 불교 유입, 중세 때의 유학 도입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문명사의 큰 물결이 맞다. 하지만 사랑과 희생·용서와 박애정신은 근대에 이르러 기독교 등장 이후 비로소 싹을 틔웠다. 학폭 가해자를 용서한 이 회장의 행동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행위는 손양원의 사랑과 이해라는 금자탑에 이은 또 한 번의 영웅적 행위다. 그렇다. 당장은 괴롭고 힘들지만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넓어지고 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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