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한국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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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순교에 한국 교회·학계 모두 ‘나 몰라’
김구 “손 목사야말로 공산당을 진정 이긴 사람”
우리 콘텐츠에 눈 돌려 정신사의 공백 메워야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8-08 06:31:10

지난주 20세기 위대한 순교자의 한 명인 손양원(1902~1950) 목사를 잠시 언급했다. 아들을 죽인 가해 학생을 용서했던 이대봉 회장 얘기 뒤에 덧붙여 본 것이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손양원을 다룰 참이다. 그의 이야기 중 비교적 널리 알려진 게 여순반란사건 때인 1948년 10월 당시 두 아들 장례식 때 그가 발표한 9가지 감사문이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오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셋째, 3남3녀 중 가장 젊고 아름다운 두 아들 장남·차남을 바치게 된 축복을 거듭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거늘 전도하다 총살 순교하니 더욱 감사합니다. …일곱째,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새길수록 놀라운 그런 신앙이 거저 찾아왔을까? 그럴 리 없다. 실은 하루 전날 나환자 1100명을 모시던 공간인 여수 애양원으로 두 아들 시체가 도착한 순간 인간 손양원은 무너졌다. 부인 정양순 사모도 마찬가지. “동인아 동신아, 우리 아들 얼굴 좀 보자!” 부부가 충격 받아 정신을 못 차릴 때 마침 곁에 있던 친구 이인재 목사가 손양원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손 목사, 정신 차리쇼. 우린 일제 감옥에서 순교하길 원했으나 하나님은 그걸 허락하지 않으셨소. 예전 순교자들의 전기를 보면서도 그게 너무도 아름답고 부러워서 견딜 수 없었는데, 오늘 당신 두 아들을 제물로 바치게 되니 외려 기뻐할 일 아니오? 과일이 다 익어서 먼저 떨어지는 겁니다. 우린 아직 다 익지 못해서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 아니오?”

이인재 목사는 손양원의 평양신학교 동기로 신사참배 반대의 선봉에 섰던 위대한 신앙의 동지다. 그가 꾸지람하자 손양원은 즉시 바뀌었다. 슬픔으로 정신 나갔던 아버지에서 두 아들을 제물로 바친 당당한 아버지로 돌아왔다. 당시 장면을 지켜봤던 맏딸 손동희(90) 씨의 증언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에 나오는 얘기다. 9가지 감사문은 그래서 이튿날 나왔다.

▲ 1949년 3월 두 아들 순교에 감동한 백범 김구(오른쪽 두 번째)가 손양원(왼쪽 두 번째) 목사를 서울로 모셔서 사진을 찍었다. 필자 제공

지금 우리는 ‘두 아들을 제물로 바친 당당한 손양원’에 감동한다. 동시에 ‘슬픔으로 정신 나간 아버지 모습’에도 짙은 인간적 연민을 느끼는데 그건 이대봉 회장 증언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한 기자가 36년 전 잃은 아들이 지금도 생각나는가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도 어느 땐 자다가 벌떡 일어나 내가 내 몸을 때리며 울어요. 아들을 생각하면 그날의 울분이 지금도….” 당시 풀려났던 가해 학생은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가 인사차 간혹 찾아오느냐는 질문엔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말해 뒀어요. 그 애를 보면 만에 하나 내가 무너질까 봐서요.”

손양원의 위대한 순교 이야기의 디테일을 한국 교회에선 아직도 잘 모른다. 한국인은 그런 이야기를 학교 교과서에서 만나 본 적도 없으니 그저 멀뚱멀뚱할 뿐이다. 일테면 인민군이 여수시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 손 목사는 애양원 탈출을 한사코 거부했다. 애양원에 잠시 인공기를 달아 위기를 모면하자는 제안에도 “순교하겠다는 정신으로 견디라”고 잘라 말했다.

그가 자신의 순교를 적극적으로 기다렸다는 증거다. 그래서 손양원은 ‘이중의 순교자’다. 일제강점기 당시 신사참배 반대로 무기징역형을 받아 해방 직후까지 6년간 감옥생활을 했던 걸 염두에 두면 ‘삼중의 순교자’에 속한다. 실제로 생전에 산 순교자로 불렸던 그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호형호제하던 사이다. 이참에 되묻자. 그런 손양원이 왜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걸까.

혹시 신사참배에 굴복했던 부끄러운 과거의 한국 교회가 손양원을 껄끄럽게 여긴 건 아니었을까. 질문은 거듭된다. 손양원의 순교 정신은 주사파 천국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의 와중에 무얼 뜻할까. 실은 두 아들 순교에 감동한 백범 김구가 손양원을 서울로 모셔 사진도 찍고 했다. 그게 1949년 3월이다. 김구는 “손 목사야말로 공산당을 진정 이긴 사람”이라는 발언도 했다. 이후 전쟁과 혼란이 겹치면서 손양원 이야기는 한국 교회의 금자탑으로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

1949년에 나온 ‘사랑의 원자탄’과 유족이 쓴 증언집 외에는 변변한 후속 평전이 한 권도 없다. 그러니 가물에 콩 나듯이 나오는 영화·뮤지컬 등도 널리 확산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를 교회의 틀에 가둬 두는 바람에 손양원을 20세기 한국의 정신사라는 너른 시야에서 되새김질하지도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자기 망각의 연속이다. 우린 어디에 정신 팔려 있는가. 한국인은 지금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모르는 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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