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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만에 동북아 경제에 묘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일시적인 현상일지 아니면 구조적인 반전(反轉)이 될지는 아직 더 지켜볼 일이지만 심상찮은 변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올해 들어 중국과 한국의 경제는 침체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일본 경제에는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상반기 실적을 보면 선진국 중에서도 일본은 최우등생으로 변신했다. 2분기 성장률이 1분기보다 1.5% 증가, 연간으로 환산하면 무려 6%에 달해 미국(2.4%)이나 유럽(1.1%)을 크게 앞지른다. 이러한 추세라면 25년 만에 경제성장률에서 일본이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점점 굳어지는 모양새다. 중국 경제도 침체 국면에 구조적인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올 성장 전망치 5%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부동산 버블로 시작됐다. 지나친 금리 인상으로 야기된 부동산 가격의 폭락이 시발점이었다. 연쇄적으로 설비·고용·부채의 과잉이 일본 경제를 뿌리째 흔들었다. 30년을 돌이켜 보면 처음 10년은 경제 후퇴 기간이었고, 나머지 20년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이제 끝났다는 자포자기와 절망감이 일본 열도를 휩쓸었다.
같은 기간 중국은 승승장구해 일본을 제치면서 G2로 부상했고, 한국 상품은 해외 시장에서 일본산을 제치고 1등 상품으로 등극하여 무역 규모 1조 달러 국가의 위업을 달성했다. 아날로그 대국 일본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디지털로 무장한 한국과 중국이 세계 시장을 호령했다. 이러한 판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양국에 넘쳐났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유행 과정과 우크라이나 사태, 미·중 격돌 등 세계 경제의 돌발 변수에 더해 한국과 중국의 정치적 긴장감이 흐름을 바꾸어 놓을 것 같은 예감이 짙게 든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와 시진핑 3연임이라는 무리수가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다. 민간 기업의 경제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고, 소비는 회복되지 않으면서 경제지표 호전이 더뎌지고 있다. 수출이 감소하면서 제조업의 가동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청년실업률이 20%를 훌쩍 뛰어넘었다. 실제로는 실업률이 이보다 심각해서 50%에 육박한다는 설까지 나돌면서 정부가 아예 수치 발표를 중단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면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다. 저질 정치 집단의 꼼수 정치로 국가는 양분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자본의 고갈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는 판이다.
일본은 모처럼 기업의 사기가 넘쳐난다. 엔저(円低)로 수출이 호조세고 외국인 관광객은 넘쳐난다. 내국인들이 아직 지갑을 열지 않아 소비가 부진하지만,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이 이를 메꿔 주고 있다. 30년 만에 모처럼 일본이 뜨겁다. 주가·집값·급여가 모두 들썩인다. G7 국가 중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다. 흑자를 내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실업률은 선진국 중 가장 낮아 거의 완전 고용에 근접한다. 부동산 가격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미·중 갈등 증폭이 잘만 하면 일본에 유리하다는 설도 있다. 미·중 갈등의 틈새를 뚫고 일본 경제가 부활의 트랙으로 확실하게 올라서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긋지긋한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청신호 앞에서 정부와 산업계의 손발이 척척 들어맞고 있다. 다만 고령화와 재정 악화 등 고질적인 악재는 여전히 회복의 변수다.
한·중·일 3국의 경제가 이렇게 반대로 요동을 치다 보니 한국과 중국 중 누가 ‘제2의 일본’이 될 것인가 하는 게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경제의 역주행은 1990년대가 아닌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의 엄청난 무역흑자에 의한 세계 무역의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엔화 가치를 일시에 2배 평가절상한 것이 일본 경제의 버블 재앙의 서막이 되었다. 2000년대 초에는 유럽이 성장 불씨를 살리기 위해 동·서 유럽 통합을 시작했다. 갈수록 미국과 벌어지는 상대적 격차를 해소하려는 방안으로 지역 통합과 심지어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유로존까지 만들어 대항했다. 그러나 영국의 탈퇴 등 회원국 간의 불협화음으로 미국과 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화살이 빠르게 중국으로 옮겨 왔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세계의 공장' 중국의 위상을 약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고, 많은 기업이 중국을 포기하고 인도로 향하는 중이다. 글로벌 무역에서 중국 비중은 줄고 인도와 동남아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가 헝클어지면 숨겨진 뇌관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중국발(發) 부동산 위기의 먹구름이 짙게 몰려온다. 부동산 위기는 작년 헝다(恒大)에 이어 최근 비구위안(碧桂園)과 완다(萬達) 등 대형 부동산업체의 도미노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확대 중이다. 연이어 지방정부 부실 문제가 불거지고, 위기가 금융권으로 번지고 있다. 이를 두고 과거 일본과 유사한 중국 경제의 버블 위기 도래라는 우려가 일파만파다. 올 것이 왔다. 중국 돌발 변수는 우리에게도 치명적이다. 정신을 차리고 경제를 추스르지 않으면 중국보다 먼저 일본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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