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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국민화합 초대이사장은 매우 바쁜 사람이다....'))
“요즘 제가 50대 중반이 돼서 젊은 친구들한테 강의를 하러 가면 ‘아버지·어머니가 하던 농업이 머리에 떠오른다면 농업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가용 끌고 다니고 비행기 타고 다니는 그런 농업인이 상상이 된다면 시작해 보라고 말하죠.”
윤재복(54) 사단법인 국민화합 초대이사장은 매우 바쁜 사람이다. 인터뷰 날짜를 잡기 위해 두어 달을 조율했지만 매번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국민화합은 우리 시대 크고 작은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취지로 2022년 12월 출범된 민간단체다.
청년과 여성 등 각 분야별 24개 특별위원회가 있고 17개 지역본부와 이북5도본부, 미주본부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다.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사람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던 중 윤 이사장은 “용인시 처인구 고추밭에서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윤 이사장을 고추밭에서 만났다.
“제가 본업은 고추박사예요. 고추밭에서 보면 이런저런 대화도 자연스럽게 많이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인터뷰 장소를 여기로 부탁 드렸습니다.”
윤 이사장은 편한 작업 복장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그는 ‘㈜고추와 육종’이라는 고추씨앗 회사의 대표이다.
매년 봄이면 고추씨앗을 전국에 납품하고 고추밭을 돌며 자신의 씨앗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농사를 컨설팅한다.
“저희 회사는 전북 김제에 있어요. 거기서 고추 연구를 하고 종자를 개발하죠. 육종은 시간과의 싸움이에요. 품종을 만드는 데 10년 걸릴 것 5년 만에 만들면 그만큼 돈이 덜 든 거예요. 수원에서는 ‘살리팜’이라는 실내농장회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군데 회사를 오가야 하고, 전국 고추밭으로 점검도 다녀야 해요. 우리가 개발한 종자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봐야 하니까요. 그리고 여의도에 있는 국민화합 사무실에도 자주 들러야 하니 어떤 때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나눠 써야 합니다.”
국민화합 초대 이사장
지난해 말 열린 국민화합 출범식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참여해 격려사를 했다. 반 전 총장은 “대한민국이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세계의 리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국민화합의 취지에 공감을 했다.
또한 박남선 국민화합 상임이사가 민세 안재홍 선생을 기리는 ‘민세상(民世賞)’을 수상했다. 박 상임이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로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국민통합’을 외치며 용서와 화합을 강조해 온 인물이다.
“저는 행복한 겁니다. 반기문 전 총장님같은 분이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시고 박남선 상임이사 같은 분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으니까요. 이게 바로 국민이 원하고 바라는 ‘화합’의 방향이죠.”
고추육종 박사의 꿈
윤 이사장은 고추육종을 전공한 서울농대 출신 박사이다. 특히 그는 2011년 ‘세계 최초 이종간 교배를 통한 고추 탄저병 저항성 종자 개발’에 성공한 과학자로 유명하다. 한국 고추농가는 1970년 후반부터 ‘탄저병’이라는 무서운 저주를 받고 있었다. 고추가 물러 썩는 것은 물론 감염성도 강해 다 지은 밭을 갈아엎어야 하는 병이었다.
탄저병은 국내에는 없던 외래 병이다. 외국 고추 종자가 들어오면서 국내에서도 창궐한 것인데, 그래서 우리 토종 종자에서는 탄저병 저항성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결국 방법은 이랬다. 탄저병 저항성을 갖는 외국 종자들을 가져다가 싹을 틔워 우리 종자와 교배를 해서 저항성 유전자를 가져오는 것.
다음은 탄저병 저항성을 얻은 우리 종자를 또 다른 우리나라의 종자들과 교배를 하여 저항성을 우리의 고추 종자에 도입하는 것. 그러곤 저항성을 가진 씨앗을 대량 생산하거나 기술을 전파하는 것.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윤 이사장은 당시 3000여 개의 외래 종자를 수집해 수만 번의 이종 간 교배를 실시했다. 그래서 고추 업계나 학계에서는 그를 ‘다국적 고추 결혼 전문가’라고 부른다. 15년 만에 성공한 그 실험은 아르헨티나 고추 종자 덕이었다.
탄저병 저항성을 가진 외래 종자와 우리 종자를 교배해도 저항성이 옮겨질 확률은 희박하다. 다른 종끼리는 교배가 잘 안 되는 ‘종간불화합’ 때문이다. 외래 종자가 우리 땅에 와서 잘 자라 주느냐도 관건이고, 그 저항성을 우리 종자에게 옮겨 주느냐는 더더욱 어려운 문제다.
수만 번이 넘는 교배와 실험을 거듭하며 매번 좌절을 느꼈지만, 고마운 아르헨티나 종자는 우리 종자에 저항성을 전해 줬고, 그 착한 우리 종자는 또 다른 우리 종자들에게 ‘신의 선물’을 전달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크는 고추의 70~80%(재배면적기준)는 탄저병 저항성을 갖고 있다. 그 원천 기술은 윤 이사장이 가지고 있고 로열티도 받는다.
“그땐 다들 미쳤다고 했지요. 종자만 확보하면 닥치는 대로 교배를 시켰으니까요. 제가 경기도 용인 농가에서 7남 중 막내로 태어났거든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경운기를 몰고 다닐 정도로 농사에 소질이 있었대요. 농부의 끈기와 근면성을 그때부터 배워 그 길고 긴 실험을 끌고 간 거죠.”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당뇨병 혈당 강하 성분인 AGI(알파글루코시다제 억제제)를 고춧잎에서 얻어 내는 연구에 착수했다.
그런데 연구에 착수하자마자 신기하게도 고추 열매보다 고춧잎에서 AGI 성분이 10배 이상 나왔다. 그렇게 해서 그는 2020년 열매가 열리지 않고 잎만 잔뜩 달리는 ‘살리초’라는 고추품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고추 열매를 수확하려면 봄부터 가을까지 시간이 필요하죠. 근데 고춧잎은 6주간만 키우면 AGI 성분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상복합건물 지하에 LED조명과 공조 시스템을 설치하고 실내농장을 차렸어요. 살리초를 키우는 농장이라는 의미에서 ‘살리팜’이라고 이름지었죠. 여기서는 연중 내내 고춧잎이 수확됩니다.”
농학박사의 사회참여
그는 농학박사이자 농업인으로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민화합 초대이사장을 맡고 각종 사회단체에도 얼굴을 자주 비친다. 고향인 용인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농학박사의 사회참여가 궁금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죠. 이건 예전에 위정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위정자가 농사짓는 사람을 잘 배려해 줘야 세상이 편하다는 뜻이죠. 농업인의 입장에서는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것이죠. 위정자가 그렇게 해 줘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농업인이 스스로 연구하고 사회에 뛰어들어야지 농업이 발전합니다. 우리 농업은 의존적인 성격이 강해요. 나라에서 해 주겠거니 믿는 거죠. 현대 농업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하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지 않으면 농업 발전은 없습니다.”
농사짓던 사람의 정치 참여에 대해 물었다. “농사짓는 사람에 대해 ‘세상 물정 모른다’ ‘순박하다’는 편견을 갖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현대 농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요즘 농식품부 산하 ‘종자혁신기술개발 TF’의 총괄기획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여기만 보더라도 저처럼 농업 전문가 말고도 AI 전문가·챗GPT 전문가·분자생물학 전문가·영상 기반 표현체 전문가 등 첨단 기술 인재들이 대거 포진돼 있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도 세계 곡물 시장을 예측했던 것이 농학자들입니다. 현대 농업은 정치·경제·외교·과학기술·인문학 등이 통합된 종합학문의 결정체입니다. 그런 농업인한테 세상 물정 모른다, 순박하다고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의견입니다.”
윤 이사장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 세계에선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이 진행되고 있다 하잖아요. 그런데 두 나라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중국은 세계 농업생산국가 1위이고, 미국은 3위예요. 둘 다 농업국가라는 얘기죠. 농업을 버린 선진국은 없습니다. 우리도 농업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농업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윤재복 이사장 프로필 △1969년 용인 출생 △태성 중‧고등학교 졸업 △1988년 강릉대 원예학과 입학 △1996년 서울농대 연구원 △1999년 서울농대 석사 △2003년 서울농대 박사 △2005년 (주)고추와육종 설립 △살리팜 식물공장 대표 △한국고추연구회 회장 △용인시 체육회 이사 △2022년 사단법인 국민화합 초대이사장
용인= 임한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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