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식약처는 왜 식품위생 위반자에 훈장 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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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01 00:02:40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자연재해 등으로 농작물의 수확량이 확연하게 줄거나 전염병이 돌아 백성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국가가 보관하고 있는 쌀을 나누어 주는 등 빈민구제를 위한 다양한 구휼 제도가 있었다.

구휼 제도의 최초 기록으로는 고조선 2000년의 실록을 담은 ‘단군세기’에 27세 단군 두밀이 기원전 990년 “심한 가뭄이 든 뒤에 큰 비가 내리자 백성이 곡식을 거둬들이지 못했다. 임금께서 곡물창고를 열어 두루 나눠 주게 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마도 세계 최초의 구휼 제도에 대한 기록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최초로 재난 구호의 역사와 이에 관련한 역대 왕들의 정책 제도를 실례를 들어 기술한 ‘구휼 국사’(신정언·1946)는 고구려의 ‘진대법’부터 고려시대의 ‘구제도감’ ‘구급도감’ 등 한반도 역대 왕조의 다양한 구휼 정책과 제도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세종대왕은 평상시에도 재난에 대비한 구휼 물품을 항상 준비하도록 했고, 큰비가 내리면 수재가 우려되는 곳에 수문을 열고 관원들이 밤새 순시하도록 했다. 흉년에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구휼미를 사용했으며 전염병이 심각해진 고을에는 그 지역 출신의 관리나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을 파견하는 등 전문가 중심의 위기대응책을 펼쳤다.

이렇듯 곤경에 처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구휼 제도는 오늘날에 와서도 다양한 형태의 복지제도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재난지원금이나 손실보상금 등의 구휼 제도가 펼쳐졌다.

그런가 하면 구휼 제도를 악용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세도정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구휼미가 세도가들의 개인 자산으로 둔갑하는 일도 다반사로 발생했다. 세도가들과 탐관오리들이 결탁해 구휼미에 모래를 섞고 물에 불려 나눠 주거나 빌려줄 때는 작은 됫박으로 빌려주고 받을 때는 정량으로 받는 등 횡포를 부려 민중 봉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세도가들의 ‘구휼미 빼돌리기’는 시대가 바뀐 오늘날에도 종종 눈에 띈다. 작년 초 문재인정부는 코로나19 방역패스(접종 증명·음성확인제)를 적용하는 15개 업종 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해 방역 관련 물품 구입 비용을 최대 10만 원(1개 업체당)까지 지원하는 구휼 사업을 펼쳤다.

한국외식업중앙회(중앙회)는 지원금 수령 절차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중앙회 산하 공제회를 통해 중소벤처기업부의 승인을 얻어 방역물품 지원 사업을 대행했다. 이 과정에서 개당 139원에 판매되던 품질이 조악한 마스크 250개를 10만 원에 판매해 회원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조선시대 세도가들의 구휼미 빼돌리기에 진배없는 행태다. 중기부에서 이를 관할했던 조주현 당시 소상공인 실장은 그후 차관으로 영전됐지만 전강식 중앙회장은 이 일로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 고발을 당했다.

전 회장의 비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역물품 지원 사업으로 검찰에 고발당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며 공금으로 비용을 지불했다. 변호사비 지불에 대해서 또다시 공금횡령 시비가 일었고 얼마 전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전 회장이 중앙회장으로서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2022년 1월 이후 1년여 기간 동안 벌인 비위행위를 일일이 나열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이다. 형사고발 사건만 네 건이고 그중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세 건이다. 중앙회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고발되지 않은 비위행위가 서너 건 더 있고 준비되고 있는 민사소송 사건까지 진행되면 전 회장은 법원으로 출퇴근해야 할 처지라고 한다.

이뿐 아니다. 대한민국 외식산업을 이끌어 가는 외식업계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식품위생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했다. 전 회장은 중앙회 회장 재임 기간에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각각 15일씩 두 차례에 걸쳐 영업정지를 당했다. 게다가 자신의 영업장을 불법으로 증축했다가 지자체의 시정명령을 받아 불법건축물을 철거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중앙회 내부에서 자정을 해야 하겠지만 중앙회장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인사권·예산권·감사권) 때문에 중앙회의 자정 능력이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러나 전 회장의 이 같은 행각보다 더 엽기적인 일은 식약처가 이런 인물에게 버젓이 산업포장을 서훈한 사건이다. 산업포장 서훈의 명분은 ‘식품 안전관리 유공’이라고 한다. 식약처는 나랏돈으로 떡고물잔치를 벌였다는 비난을 받은 방역물품 지원 사업에 대해 사법기관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공금횡령으로 벌금형에 처해져도 모르쇠다. 네 차례에 걸친 검찰 고발과 벌금형 처분 등 형사사건에 비하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받은 영업정지 처분 정도는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김흥수 khsoo@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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