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금융권 때리기 꼭 대통령이 나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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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08 00:02:40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권 비판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0월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그 전주에 진행한 민생 현장 방문 경험을 국무위원과 공유하며 “소상공인들이 고금리에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고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국민 경제가 위기에 처했음을 표현하기 위해 민생 현장 방문에서 청취한 소상공인의 의견을 회의 참석자들에게 전달하겠다는 의도였을 수 있지만 ‘은행의 종노릇’이라는 대통령의 자극적인 워딩 여파는 컸다.

해당 발언이 전해진 당일 주식시장에선 KB금융·신한지주·하나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 등 관련 은행주들이 줄줄이 폭락을 면치 못했다.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에 은행주 흐름이 심상치 않은 모양새를 보이자 그날 오후 대통령실이 “현장의 목소리를 국무위원과 다른 국민에게 전달하려는 의도였다”며 “대통령의 발언을 어떤 정책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돈의 흐름’은 백 마디 말보다 정확한 법이다. 대통령실의 해명에도 금융시장은 대통령의 발언을 은행의 초과 이익에 ‘횡재세’를 부과하기 위한 사전작업 성격의 발언으로 이해하면서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투자자들은 은행주에 일제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이 단순히 ‘현장 목소리 전달 차원’이었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불과 이틀만에 그 설득력을 잃었다.

1일 윤 대통령은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로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서울 마포구의 한 북 카페에서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회의에 참석한 청년·주부·회사원·소상공인 등을 앞에 두고 “우리나라 은행이 일종의 독과점으로 갑질을 하고 있다”며 “은행이 경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은행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통령의 최근 금융권을 향한 비판이 ‘국민의 어려움’을 전달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명확하게 은행 등 금융사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대목으로 읽히는 부분이다.

사실 윤 대통령의 금융권 비판은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이미 연초부터 윤 대통령은 작년 주요 은행들이 높은 실적을 거둔 것을 두고 “은행이 ‘이자 장사’에 ‘돈 잔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올 봄 주요 금융사들은 취약계층을 위한 ‘상생 금융’ 지원책을 일제히 내놨고 최근 대통령의 비판이 계속되자 다시금 추가 지원을 준비하는 등 ‘상생 금융 시즌2’가 시작되는 형국이다.

금융권이 취약 계층과 서민을 위해 지원에 나서고 대통령이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발 벗고 뛰는 것은 당연히 장려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올해 내내 이어지고 있는 대통령의 ‘금융권 때리기’는 정도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우선 은행이 대통령의 발언처럼 국민을 ‘종’으로 부려 돈을 번다는 것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발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은행이 국민을 상대로 이자 장사를 통해 돈을 버니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과한 해석이 될 수 있다. 은행의 본질은 돈의 흐름을 통해 창출되는 ‘이자’로 고객과 은행의 자산을 늘리는 데 있는데 이자 장사를 한다고 욕을 먹어야 한다면 은행 입장에서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

결국 대통령의 금융권 때리기는 불경기가 길어지자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화풀이 대상’으로 금융사들이 선택된 것과 같은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만약 최근의 경기침체를 금융권의 책임이라고 비판한다면 이는 과한 해석이다. 현재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은 미국의 고금리와 중국 경제 악화 등 우리나라 경제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해외 국가 경제의 불안 요소가 더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여기에 2년여를 끌면서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한 달 전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지면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도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엄연히 사기업인 금융사를 상대로 정부 수반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비판을 칼을 세우는 것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수도 있다는 점이다.

시기도 좋지 않다. 이미 총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날카로운 여론의 시선이 여의도 국회와 용산 대통령실로 향해 있다. 대통령의 발언 한 마디 한 마디가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표 장사’로 치부돼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금융권을 향한 문제의식은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금융위원장이나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에 맡겨 놔야 할 민감한 시국이다. 더 원칙적으로는 정부와 기업이 일방적인 관계로 흐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권과 기업이 지나치게 깊게 얽혔다가 파국이 난 그 말로는 지나간 정부들이 이미 충분히 보여 주지 않았는가. 윤석열정부가 그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임진영 jy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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