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애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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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13 06:31:10

“와! 입에 침이 고이네요.” 방송국 안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아리따운 아나운서가 표정의 변화 없이 내놓은 멘트다. 나는 순간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다. 진심일까? 그저 작가가 써 준 대본대로 하는 말일까? 저렇게 어여쁜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이 거침없이 나오다니? 그 프로그램은 먹방이었다. 가을철 바다에서 파닥거리는 싱싱한(!) 생선을 건져 올리는 장면이었다.

‘첨벙!’ 큰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 어깨를 툭 치고는 바닥에 떨어졌다. 물벼락을 맞은 나는 옷이 다 젖었다. 무언가가 바닥에서 펄떡거리고 있다. 수족관에서 광어가 점프하여 탈출한 것이다. 수족관 옆에 잠깐 앉아 있었던 게 문제였다. 주인이 와서 말했다.

“사모님, 이 아이는 사모님이 데려가셔야겠어요.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요?” 마음이 뒤숭숭했다. 하지만 살겠다고 빠져나온 광어를 데리고 나의 부엌으로 갈 수는 없었다. 집에 연못이나 수족관은 더더욱 없다. 그 아이는 수족관에서 자연스럽게 선반으로 옮겨졌다. 탈출하려고 한 게 오히려 죽음을 재촉한 것이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광어에게 자의식이 있다면…. 수족관 안 다른 광어들의 눈에는 동료들이 계속 대형 나무 도마 위로 옮겨져 참수되고 토막 나 해부되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살아남으려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던 광어는 한번 솟구쳐 본 게 아니었을까? 그곳은 수산시장이었다.

나도 생선요리를 좋아한다. 아주 즐기는 건 아니지만 기회가 오면 마다하지 않는다. 젊을 때는 냄비 속에서 죽어 가며 꿈틀거리는 낙지를 먹은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 들어서 그런지 생명 있는 것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힘들다.

문득 고전이 생각났다. ‘군자는 푸줏간과 부엌을 멀리한다’는 ‘맹자’의 구절이 있다. 이 내용의 잘못된 해석으로 한국 남성들이 부엌을 꺼리던 시절도 있었다. 옛 가옥의 부엌은 크고 깊었다. 그곳에서 소를 제외한 웬만한 가축을 도살할 수 있었다. 물론 소의 경우는 백정이 다뤘지만 도살하기 전 스님을 모셔 와 천도제를 지내 준다. 이 구절의 전모는 이렇다. ‘군자는 새나 짐승이 죽어 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소리를 들으면 그 고기를 차마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푸줏간과 부엌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한 말씀이다. 군자란 착한 사람 및 지도자(왕)를 말한다.

물고기는 왜 사람의 그물이나 작살에 잡힐까? 그들이 인간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두뇌가 큰 인간은 생태계의 최고 지위에 올라 모든 동물을 ‘정복’했다. 다른 생명들을 몽땅 ‘약자화’ 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일까? 아니다.

인간은 자신보다 힘이 약한 대상에겐 모두 그렇게 대한다. 같은 종에게도 말이다. 구대륙의 백인들은 신대륙 사람들을 물고기처럼 대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신보다 지력이 떨어지거나 물리력이 약하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한 사람들은 똑똑하고 건장하고 나이 든 사람에게 착취되거나 죽임을 당한다. 수많은 사건의 피해자는 어린이·여성·노인·장애인이다.

이런 일은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유기와 학대와 살인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전쟁은 다른 나라(상대국)를 ‘약자화’하는 프로젝트다.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면 강한 상대도 얼마든지 발아래에 꿇릴 수 있다. 외신은 연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어린 생명의 죽음을 카운트하고 있다.

요즘 지구촌은 갖가지 전쟁과 폭력에 시달린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우리가 무심코 뽑아 내는 잡초, 취미로 채집하는 곤충, 생계나 심심풀이로 낚아 올린 물고기다. 인간은 잡식 동물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살과 피를 내어준 ‘그들’에 대한, 그들의 생명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제발, 생명을 공공연히 죽이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먹는 방송(먹방)’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도살 장면은 삼가 주었으면 하는 게, 몇 년간 병들고 수술하고 약해져 가는 초라한 나의 바람이다. 오현명 시인의 ‘명태’라는 시(가곡)를 되새겨 본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 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면 밀려다니다가…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쫙쫙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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