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이념이 곧 민생이다… ‘따뜻한 보수’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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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14 18:39:17

‘이념보다 민생’이란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이념으로 민생을 좌우할 수 있음에 정통한 사람들의 기만적 언어 전술인데 여당과 대통령까지 휘말린 모습이다. 실은 ‘이념이 곧 민생’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여권은 자유민주공화국을 지탱할 이념에 무심한 게 오히려 병폐 같다.

서로 다른 이념에서 온 ‘큰 정부’와 ‘작은 정부’가 있다. 이를 각각 뒷받침하는 철학·사상이 있으나 단순화시켜 보면 이렇다. 되도록 시장 자율에 맡겨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과 소비가 늘어나면서 민생 안정으로 나아가는 게 ‘작은 정부’다. 굳이 ‘민생’을 강조할 필요 없다. 이와 상반된 발상의 ‘큰 정부’를 추구한 게 문재인정부였다.

‘이념보다 민생’ 워딩을 수용한 순간 약자를 내세운 분배 논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약자 끼워팔기를 통한 사회의 하향평준화를 거쳐 소수 권력자와 주변 세력만 혜택을 누리게 되는 시스템이 그 궁극의 귀결이다. 무수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다 보면 자유시장 체제가 그나마 부작용이 적다. 시장을 탐욕의 장으로 간주하며 전면 부정하거나 싸워 이기려는 시도가 성공한 바 없다. 이런 게 다 나름의 이념, 즉 인간관·세계관·가치관에서 유래한 차이다. 여기서 해법도 달라진다.

‘따뜻한 보수’ ‘합리적 보수’ 또한 어폐가 상당한 표현이다. ‘합리’는 보수의 속성이어야 하며 그것이 효과적 정책에 기여할 때 ‘따뜻한’ 결과를 낳는다. 기존 보수와의 차별화를 위한 용어일 수 있으나 위험한 측면이 있다. 유럽형 ‘따뜻한 보수’ 격인 사민주의가 PC(정치적 올바름)주의에 압도됐듯 우리나라 ‘따뜻한 보수’는 바닥민심 다루기에 능한 NL(민족해방) 세력에 무력해 보인다.

현안의 하나인 이주민 문제를 보자. 오늘날 서유럽의 이주민 문제는 약자의 인권과 다양성을 앞세운 68세대 ‘이념’이 초래한 사태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다른 이념’을 참조해야 할 텐데 영 불안하다. 최근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준 국민통합위원회에서 ‘이주민과의 따뜻한 동행’ 운운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심란하다.

장애인복지 역시 이념이 충돌하는 분야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동권과 탈시설을 외치며 지하철 시위를 할 때 여당은 즉각 무릎을 꿇었다. ‘따뜻한 보수’이고 싶었던 것이다. 최저임금·주52시간제·비정규직·임대차법 등 ‘약자 보호’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말하는 사람들이 약자를 더 힘들게 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탈시설 문제도 다르지 않다.

탈시설이란 중증 장애인을 일반 주택에 살게 하면서 보호사가 붙는 복지 형태, 즉 장애인시설 소규모화 정책이다. 이쪽으로 몰아가려는 전장연 사람들이 왜 ‘사드배치 반대’ 시위나 ‘반미자주대회’에 가고 ‘이석기 석방’을 외쳤는지를 거론하기보다 그들 요구대로 가면 어찌 될지 세 가지만 짚어 보자.

△소요 예산 7000억 원→5조 원 △서울시의회가 민주당 세상이던 시절 제정된 조례에 따라 사무실 주소만 서울이면 실제 시설이 어디 있든 서울시 예산 배정 △장애인 가족에겐 가혹한 현실. 중증 장애인을 자기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자립지원주택에서 활동 지원사 도움을 받도록 하자는 게 전장연 측 주장이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한장협) 정석왕 회장은 전장연 사람들이 관련 지원사업 수행 기관을 운영 중이며 이것이 제도화되면 엄청난 수익을 거두게 되는 사업임을 지적했다. 장애인 자립지원주택 사업, 거기에 파견될 인력 수급 모두 거대한 이권이다. 수조 원 규모의 시장이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측엔 이를 주무를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와 생태계가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복지 선진국 유럽 상황’을 빌어 탈시설의 정당성을 말하지만 정작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 부모회 등 가족들은 결사반대한다. 중증 장애인을 집에서 돌보게 되면 일반적으로 가족 전체의 일상이 무너진다. 한장협 정 회장은 중증 장애인을 시설에 맡기지 못해 함께 지내다가 가족 전원이 동반사한 가슴 아픈 사례가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보고된 바 없다고 말한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선 다양한 전문인력(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영양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언어치료사·조리사 등)이 입소자의 일상 및 지역사회 생활을 지원한다. 모니터링 내지 감시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물론 꾸준한 개선은 필요하다. 장애인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인권, 예산의 가성비와 실질적 서비스 질까지 따지는 게 보수정권다운 해법이다. 전장연 요구에 깃든 이념의 색채를 분별하고 대응해야 한다. ‘따뜻한 보수’는 십중팔구 그들의 먹잇감이다.

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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