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환의 시사저격] 이준석 미풍을 돌풍으로 키우는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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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밥상만 눈독 들이다간 정권 날아갈 수도
‘준석의 저주’ 피하려면 김기현 등 물러나야

구월환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23 06:31:30

정치를 종합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정치가 국가사회의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미사여구나 명분을 내세워 야바위 짓을 하면 안 된다. 우리 정치가 굴러가는 것을 보면 정치인들이 그들의 권력 유지와 부귀영화를 위해 국민을 속이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경향이 보인다.

그런데 시민사회나 학계·언론 등 감시탑에서도 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고려 사항들이 얽혀 문제를 제때에 제대로 짚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면에는 서양에 비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짧다는 사실과 함께 투쟁 경험도 부족할 뿐더러 수천 년간 인접한 대국들의 압제에 길들여진 정치적 수동주의 관습도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혹자는 그런 환경에서도 우리는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고 만족해 할지 모르나, 그런 생각이 지배하는 한 제대로 선진국 소리를 들으며 행복과 프라이드를 누리기는 어렵다.

국운의 키를 쥐고 있는 한 축인 국민의힘(국힘)을 보면 우려스러운 현상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여소야대의 정치 구조도 문제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는 무능도 문제다. 현재의 지도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효율적인 당·정 관계를 만들려고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경원·안철수를 견제하는 등 지도부 경선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다. 물론 역대 대통령들이 다소간에 그러한 정치 행위를 했지만 이처럼 표가 나게 한 경우는 지난 20년을 통틀어 드문 일이다. 김영삼 ·김대중정부 시절까지는 대통령이 사실상 여당 총재를 겸하고 있어서 인사와 공천권 행사 등 당무 개입이 당연시됐지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 여론에 부딪혀 그 후로는 당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관례가 확립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당·정 관계에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밀접성은 매우 필요한 것이 사실인데, 당·정 연결을 매끄럽게 하지 못한 것은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등 측근들의 잘못이다. 이런 비서진을 갈아치우지 못하는 것 역시 윤 대통령의 잘못이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이 밀어 준 여당 지도부가 애초에 약속한 당내 통합을 이뤄 내지 못했고 소수의 대통령 측근 정치인들(윤핵관) 중 장제원·권성동 등 일부가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물러나지 않는 것은 비정상이다. 명색이 집권당이라는 국힘 지도부의 김기현 대표·윤재옥 원내대표만 하더라도 그런 모습으로는 집권당을 이끌어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평이 많지만 막상 당내에서는 이에 대해 이준석 계통의 사람들을 빼놓고는 조용하다.

이런 조건들이 이준석의 ‘반란’ 운동에는 더없이 좋은 휘발유요 안주감이다. 지금 이준석은 자신의 경쟁자가 윤석열이 아니라 한동훈이라고까지 호언하고 있을 정도다. 심지어 자신에게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긴다면 내년 선거에서 110석이나 120석을 만들어 드릴 수 있다고 한다. 잘해도 지금 의석 수준밖에 안 된다고 하는 소리이니, 이쯤 되면 희롱이다.

그는 입만 열면 윤 대통령을 직격한다. 일찍이 2021년 3월6일 “윤석열이 대통령되면 지구를 떠난다”며 경솔한 처신으로 악연을 만든 것이나, 윤석열 대선 가도의 진로를 열심히 방해한 원초적 잘못은 쏙 빼놓고 당한 일만 늘어놓아 상대를 악마화하고 있다. 이런 사태에 대해서도 국힘 지도부나 의원들은 따끔한 말 한 마디를 못 하고 있다. 이슬비에도 옷은 젖는 법이다. 국힘 사람들은 한동훈 같은 그들의 인기스타가 야당 거물에게 ‘어린놈’ ‘건방진놈’ 하고 당해도 소 닭 보듯 먼 산만 쳐다보고 있다. 흡사 무감각증에 감염된 것 같다.

이런 데다가 인요한 혁신위는 곧 문을 닫고 폐업을 선언할 처지로 몰렸다. 지도부와 영남 다선·윤핵관들의 희생 운운하다 철퇴를 맞았다. 김기현 대표가 인 위원장을 황급히 만나 “혁신안은 의견과 아이디어이며 결정은 당 지도부에서 하겠다”는 뜻을 통보한 것이다. 이제 혁신위는 조용히 물러갈 일만 남았다. 혁신(革新)하려다 망신(亡身)한다는 말이 나올 판이다. 지도부는 혁신위 덕에 ‘강서참패’의 책임을 모면할 시간을 벌어 공천권과 당권을 지켰다고 안심할지 모르나 이는 큰 오산이다. 그런 식으로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는 행태에 유권자들은 박수를 쳐 주지 않을 것이다. 진짜 영양가 있는 것은 자신들이 챙기면서 한동훈·원희룡 같은 인기스타를 내세우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국힘이 잘못하는 바람에 이준석만 신나게 됐다. 컴퓨터 게이머처럼 날렵하게 기동하면서 그가 벼르던 흑화(黑化·냉혹한 변화) 시범을 과시하고 있다. 국힘이 지금처럼 곰바우짓을 계속한다면 이준석 미풍은 돌풍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반윤(反尹) 연대 기류가 형성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느 한 사람의 정계 은퇴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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