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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시계(始計)편·용간(用間)편을 보면 각각 조직단합과 첩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손자는 결전 준비에 필수적인 다섯가지를 꼽으며 천시(天) 지리(地) 장수(將) 규율(法)에 앞서 도(道)를 말했다. 이 경우 道란 공동체 구성원을 일심동체로 만들 공동이익의 대의명분이나 가치다.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또 하나의 요소가 첩보다. 그래서 손자는 ‘스파이 활용(用間)’ 항목을 별도로 두고 “수년을 전쟁에 대비해도 승패는 하루아침에 결정된다. 돈을 아끼느라 적(敵) 정보 수집에 소홀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짚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가안보를 위한 국내외 첩보나 대공(對共)수사 등이다.
조직이 분열되지 않아야 중요한 첩보의 200% 효율이 가능하다는 것을 손자병법은 일깨운다. 심지어 첩보를 소홀히 하면 ‘불인의 극치(不仁之至)’라고 했다. 여기서 ‘불인(不仁)’이란 백성의 희생을 초래하는 결과적 잔인함을 뜻한다.
최근 서울 모처의 국가정보원 안가(안전가옥)에 다녀왔다. 1997년 망명한 ‘김일성의 오른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취재차 매주 만나던 곳이다. 고인은 생전에 북한 내부의 실상, 북한의 혈통 세습 독재체제를 내부에서 사상적으로 무너뜨릴 방안 등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별세한 지 13년이나 지났기에 아직도 사무실이 가동되고 있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향했다.
주변 풍경은 그대로였다. 건물에 들어서자 한 중년의 직원이 기자를 알아보고 반겨 줬다. 사실 기자의 기억은 가물가물했는데 그 직원이 먼저 알아봤다. 악수를 나누고 대로변으로 나가 이런저런 개인적 얘기들을 나눴다. 그는 내심 크게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여러 사정이 있겠으나 아마도 국정원 내의 갈등과 국정원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등의 문제 때문이리라 짐작됐다.
문재인정부 시절이던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경찰 내 국가수사본부로 이관한다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의석수로 밀어붙였다. 해당 개정안이 3년 유예 후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경찰 수뇌부는 대공수사를 자신하지만 실상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지난달 4일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자체평가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경찰의 대공수사 관련 3개 과제는 모두 ‘다소 미흡’ 이하 평가를 받았다. 탈북민 보호 강화와 안보수사 활동 강화는 다소 미흡, 안보정보 수집은 ‘미흡’이었다. 각 과제를 ‘매우 우수’에서부터 ‘부진’까지 7개 등급으로 성적을 매겼는데 대공수사 관련 과제가 모두 5~6등급에 그친 것이다.
이 세 과제는 전부 대공수사권 이관 준비작업의 일환이었다. 올해 2월 작성된 보고서는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비한 (경찰 측) 인프라 구축 등이 국민에게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섣부른 이관에 재차 부정적 인식을 나타냈다.
16일 국정원에 의하면 국가급 세력이 배후인 해킹 조직의 국내 사이버공격 시도가 지난해 하루 평균 118만 건에서 올해 156만 건으로 32% 이상 폭증했다. 북한 김정은 찬양 의혹으로 논란을 빚었던 ‘위인맞이 환영단’ 부류의 세력도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이렇듯 불안한 안보 환경에서 국정원이 내부 권력 다툼 의혹에 휩싸여 ‘이관은 정당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준 꼴이 됐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김규현 국정원장·권춘택 1차장·김수연 2차장을 모조리 경질하는 초유의 인사를 단행했다.
손자병법에서도 말하길 튼튼한 첩보의 전제조건 역시 조직의 단합, 즉 일체감이다. 국정원은 더 이상 자중지란에 따른 ‘국정원 무용론’을 스스로 뒷받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길 바란다. 반드시 거듭난 모습으로 대공수사의 중심에 다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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