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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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사명감’에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출마를 선언한 박인숙 전 국회의원(19·20대)은 무분별한 의대 증원은 ‘의료계 사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원가 보전도 안 되는 ‘동전 진료 체계’ 타파가 우선이라는 기존 의료계 입장에 공감하지만 그가 제안하는 설득 방식은 180도 다른 것이다. 그는 ‘정치권 설득과 화합’을 통해 궐기와 파업 중심으로 이행되는 의협의 대국민 소통 방식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박 전 의원은 “의협이 정치권을 적으로 돌릴수록 국회에서는 계속해서 의사에게 불리한 법안이 발의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차기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박 전 의원은 대한민국 의료의 ‘정치 공백’을 온몸 으로 경험한 장본인이다. 2019년 문재인정부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삭발식 이후로 대중에게는 의사이기 이전에 ‘여(女) 전사’ 이미지로 각인됐다. 박 전 의원은 우리나라 의료계가 인정하는 소아심장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7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베일러 의대 부속병원 소아과·소아심장과 전공의·전임의·임상 조교수를 거쳤다. 서울아산병원 개원 멤버인 박 전 의원은 울산의대 학장과 소아심장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다음은 박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의대 증원 문제, 압도적으로 찬성 여론이 높은데…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83% 이상이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고 있다. 의사들이 의대 정원을 늘리지 말자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더 거센 저항이 나오고 있다. 의협 지도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삭발 시위를 하고 의사들이 주말마다 모여 깃발을 들어도 아무도 의대 정원 확충의 후유증에 대해 제대로 공감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효과가 하나도 없는 지금의 투쟁 방식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가. 결국 국민을 이해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과 계속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면 의사만 독선적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정치 자산을 까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정부 관료들이 의료계를 강하게 타격할수록 정권 지지율이 올랐다. 과거 30년 동안 한국 정치권은 의사 옥죄기를 계속했다. 역설적이고 말이 안 되는 데다 비이성적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정부도 의료계의 입장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사실상 의대 증원은 대한민국의 의료 체계가 가장 빨리 망하는 급행열차를 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대 정원 확충이 필수의료 분야의 공백을 메꾸는 급선책이 될 것 같지만 이미 붕괴된 필수의료 체계와 지방 의료의 정상화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수련받고자 하는 전공의들도 가파르게 줄고 있다. 이것은 환경과 구조의 문제다. 필수과·비인기과 전공의 지원율이 매우 낮은 데다 기존 의대 교수 처우로는 이게 극복이 안 된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현 의협 투쟁 방식,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의료제도의 개혁이 시급하고 여기엔 정치권을 설득하는 과정이 불가피하게 따라붙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의사들의 대국민 홍보 노력은 정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의협의 궐기대회 같은 방식으로 투쟁을 시작할 것이 아니라 현수막이나 신문·방송 광고를 통한 대국민 홍보부터 해야 한다. 만화나 브로셔 등을 만들며 문화 투쟁의 저변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의협 지도부가 자주 언론에 나가서 토론이나 대국민 연설도 해야 한다. 현재 의협은 이런 국민 설득 방식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삭발만 하는 모습이다. 의대 증원 이슈가 ‘그들 만의 외침’으로 전락해 버렸다.
투쟁보다 정치권 설득이 우선돼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정치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정치에서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벼락공부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나는 지역구 재선의원 출신이다. 의사들이 정치권을 정말 모른다.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국회와 친해지면 나쁜 법은 막고 좋은 법은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의사의 정치 조직화가 필요한데 그런 게 없다. 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반대만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편이 없는 것이다. 정치인과 싸우는 의사들 때문에 몇몇 국회의원은 의사단체라면 이를 간다. 앞에서 투쟁하고 윽박지르고 총파업을 하겠다고 하는데 사이가 좋아질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이 결국 의사에게 불리한 법을 발의하게 된다. 올해 특히 의사에 불리한 법들이 많이 발의됐다. 의사 면허 박탈법 같은 것 말이다. 최근 몇 년 간 의사들에게 불리한 법안들이 가속도가 붙어서 통과되고 있다. 의협의 대응이 미흡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의협 내부에서의 투쟁도 심하다. 우리 안에서도 단합이 안 된다. 정치의 부재가 현재의 사태를 불렀다.”
의료계를 중심으로 의대 증원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일단 증원 1000명을 던진 것인데 말이 1000명이지 정부가 각 대학에 충원할 정원 수를 더 많이 써내도록 종용할 것 같은 정치적 술수가 엿보인다. 앞으로 의대 증원 수가 2000∼3000명까지도 갈 것이다. 미친 짓이다.
의대 증원 1000명 늘린다고 하자. 여기에 지원자는 최소 5000명이다. 이들이 재수도 하고 삼수도 할 것이다. 이공계 우수 인재 대부분이 유출되며 이공계 생태계가 박살 날 것이다. 의료는 내수용 서비스산업이다. 모은 돈을 나눠 먹는 곳이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곳이 아니다.
의사가 이런 이야기하는 데엔 물론 딜레마가 없지 않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난도 들린다. “왜 우리는 의사 못 하게 하고 너희만 하냐”는 ‘반론’이다. 의사는 망하지 않는다. 의사 수를 아무리 증원해도 의사는 망하지 않는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오만가지 기술과 능력이 있다. 변호사처럼 의사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방식이 각양각색이다. 의사 수를 두 배 늘린다고 진료 가격이 반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다. 의료비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건보재정 고갈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앞당겨질 것이다. 결국 건보료와 실손 보험료가 빠른 속도로 고갈될 것이고 그 상승분은 모두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아과 의사로서 소아과 오픈런 등 필수의료 붕괴 사태 어떻게 보는지
“최근 급증한 사법 리스크가 문제의 뇌관이다. 의료 과실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태어난 지 5년이 지난 후 아이에게 뇌성마비 증세가 보인다고 산부인과에 20억 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뇌성마비의 원인이 불확실한데도 아기를 받은 의사 탓으로 돌리고 책임을 묻는다. 배상금 6억 원짜리 소송에 걸린 산부인과 의사도 숱하게 많다.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 의료 소송이 갑자기 증가했다. 이제 응급의학과를 심지어 ‘살인과’라고까지 부른다. 사람을 살리면 당연한 것이고 못 살리면 모두 의사 탓이라고 비난하고 소송 건다. 미국도 의료 소송이 정말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의사 개인 호주머니에서 배상금이 나가지 않는다. 소속 병원과 보험회사에서 내 준다. 특히 고난이도 수술을 많이 하는 외과의사들은 굉장히 비싼 보험을 든다.
지금 의대 정원 폭증에 더해 급증하는 의대 교수들 사직 때문에 앞으로 부실 교육과 부실 실습이 확실시되고 있는데 의사 수가 많아진다고 그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갈까? ‘의사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건 전략이 아니라 실현 보장 없는 희망회로를 돌리는 것이다. 형사처벌을 금지하고 의료 분쟁 특례법을 제정하며 피해보상금 국가 책임제부터 시행해야 한다. 필수과 의사가 마음 놓고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의사 수 부족 문제가 자꾸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언론 책임이 크다. 오픈런이 전부는 아니다. 소아과 개원의가 다 오픈런이 되는 건 아니다. 특정 지역의 병·의원에 국한된 이야기다. 그런데 정부 대응이 반대로 간다. 사실 지금 어디를 가도 필수의료·응급의료 분야를 제외하고는 의사가 차고 넘친다. 한 건물이 몽땅 의원인 곳도 서울시뿐 아니라 수도권 곳곳에 흔하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의사 보기가 가장 쉬운 나라가 우리나라다. 국민이 무조건 1등 의사, 최고의 병원에만 가겠다고 우기면서 지방의료 공백 사태가 더욱 심화되는 것이다.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서울로, 빅5로 ‘명의’를 찾아 간다. SRT와 KTX에 빅5 병원에 가려는 환자들이 넘친다. 이들의 상경 진료부터 줄여야 한다. 지방 사람은 지방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지방 의료 환경과 국민 인식을 바꿔야 한다.”
건강보험 고갈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최근의 필수의료·지방의료 붕괴를 보면서 국가주도 건강보험을 강요하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손보험은 한방진료 때문에 망해 가고 있다. 최근 빅5 병원 진입로에 큰 한방병원이 들어섰다. 소위 ‘한방 힐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환자들의 호주머니와 실손보험을 털려는 의도가 불 보듯 뻔하다. 교통사고로 목을 조금 다쳤다고 한방병원에서 수액·영양제를 맞는 데다 각종 검사 비용에 입원비까지 실손보험에서 나온다. 암환자들에게도 요양하고 쉬고 가라고 한다. 모두 다 과잉 진료다.
결국 건강보험 적립금이 완전 고갈될 것이다. 이렇게 보험료가 나간다고 해서 국민 건강이 더 좋아질 수는 없다. 건강보험료는 결국 고공 상승할 것이다. 지금 선진국의 건보료율은 우리보다 훨씬 높아 대부분 두 자릿수이다. 우리의 현재 보험료율이 최대 8%인데 이게 천장을 뚫고 올라갈 것이다. 지금의 의대 정원 확충·필수의료 붕괴·지방의료 붕괴·의대병원 교수들의 이탈과 소송 공포(사법 리스크) 등 이 모든 악재들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모든 게 더욱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의 가히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프로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배일러대학병원 소아과 전공의 △텍사스 심장병원 소아심장 임상 조교수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 심장과 의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국립보건원 희귀난치성질환센터 센터장 △제26대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제19대 국회의원(서울 송파구갑/새누리당) △제20대 국회의원(서울 송파구갑/미래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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