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8] “워싱턴의 벚나무들은 한국 벚나무임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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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지켜낸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들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22 09:11:34

1941년 12월 7일 아침,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에 있는 미 해군 기지를 일본 제국 해군이 기습 공격했다. 이른바 ‘진주만 공격’이다. 이 공격으로 미군 2335명과 민간인 68명이 사망하고 미 해군 함선 12척과 비행기 188대가 침몰‧격추되는 피해를 입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던 미국 여론은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국의 참전을 지지하였고 12월 8일 미국 의회는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하였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의 도발을 경고한 독립운동가 이승만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승만은 1941년 6월 ‘Japan Inside Out : The Challenge of Today(일본 내막기)’라는 영문판 책을 펴냈다. 천황전체주의와 군국주의로 무장한 일본이 머지않아 태평양을 놓고 미국과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책이다.

이승만은 책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이 일본을 먼저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것을 미국이 방관했다고 비판하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은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고도 썼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미국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책이 오히려 일본을 자극하여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바로 그해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이 책은 예언서로 불리며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공격당한 12월7일을 치욕의 날로 선포했다. 일본이 본토로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수많은 미국인이 군인이 되기를 자원했고 반일 감정은 무섭게 치솟았다. 미국인들의 분노는 일본이 30년 전에 선물로 보내준 왕벚나무에까지 미쳤다. 그들은 워싱턴D.C.의 포토맥 강변에 심어진 왕벚나무를 다 뽑아버리려고 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시작된 우정의 선물

▲ 벚꽃의 고향이 어디든 천지를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벚꽃에 대한 기대는 달라지지 않는다. 윤상구 사진작가

그 왕벚나무들은 1912년 일본 도쿄 시장이 당시 미국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태프트는 1905년 육군장관 재임 시 미국이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장본인이다. 결국 이 벚나무들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시작된 우정의 선물이었다.

당초 1910년 1월, 시애틀 항구에 도착한 일본산 벚나무 묘목 3000그루는 검역 과정에서 병충해에 감염된 것이 확인되었다. 태프트 대통령은 이 나무들을 모두 불태워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일본은 불과 2년 후인 1912년 2월 벚나무 묘목 3000여 그루를 다시 미국으로 보냈다. 이 묘목들은 무사히 시애틀에 도착해 워싱턴으로 운송되었고 영부인 헬렌 태프트 여사는 포토맥 강변에 이 묘목들을 심게 하였다.

2년, 그 짧은 기간에 일본은 어떻게 3000여 그루의 벚나무 묘목을 다시 마련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동양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 박사가 생전에 발표한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도쿄 시장이 1910년 아라카와 강변의 벚나무를 워싱턴에 선물했지만 벌레 먹어서 다 죽었다. 일본은 새 품종 벚나무를 다시 선물했는데 이때의 벚나무는 제주도에서 채집한 것으로 미국 풍토에서 강하게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결국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는 일본산이 아니라 제주도산 왕벚나무라는 것이다.

“워싱턴에 심어진 벚나무들은 한국 벚나무임을 선포한다”

아무튼 진주만 공격 때문에 죄 없는 왕벚나무 수천 그루가 떼죽음 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때 이승만은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 원산지가 일본이 아니라 제주도와 울릉도라고 주장하며 벚나무들을 베어버리려는 미국 정부를 만류했다. 또한 이승만은 ‘재팬 체리블로썸’으로 불리던 벚꽃의 명칭을 ‘코리안 체리블로썸’으로 바꿔 달라고 미국 내무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1943년 4월 8일, 주미외교위원장 이승만은 워싱턴D.C.에 있는 아메리카대학교 교정에 제주 왕벚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4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한국 벚나무 식수식’을 거행하며 “워싱턴에 심어진 벚나무들은 한국이 원산지이며 이들 나무 또한 한국 벚나무임을 선포한다”라는 결의안까지 발표했다. 이때 심어진 벚나무들은 그 자리에서 울창하게 자라 지금까지도 그날의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벚꽃을 기다리며 봄을 그리워한다. 벚꽃의 고향이 어디든 천지를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벚꽃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달라지지 않는다. 또 벚나무의 원산지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상춘객에게 봄의 환희를 전달하는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들을 지켜내고 그 국적을 분명하게 밝힌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진취적이고 굳센 기백에 대해서이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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