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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부터 이어지고 있는 여소야대 정국은 정쟁으로 얼룩져 말뿐인 민생 타령이 22대 국회로 넘어와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 와중에 그나마 여야 정책위원회 의장들이 민생협의체를 구성하자고 뜻을 맞춘 것에 대해 많은 국민이 기대를 걸었을 터이다.
대의민주제 국가에서 의회의 입법 의결권은 막강하다. 의회의 결정 권한에 행정부가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여소야대 정국에서 강대강 정쟁에만 빠져 있다면 제 살 깎는 정치 다툼 속에서 민생은 허울뿐인 구호에 머물고 경제 성장이 정체되는 시대적 퇴보를 눈뜨고 방관할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 나라 정치권은 민생과 경제를 볼모로 권력잡기에 골몰해 왔다. 서로 헐뜯고 싸우고 비난하고 비판하기를 눈뜨면 반복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상대 당이 내놓으면 깎아내리고 가로막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여야는 꼭 집어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대한민국 국회의 한 지붕 아래서 서로 다른 나라를 꿈꿔 왔다. 그래서 여야가 민생협의체를 합심해서 꾸려 나가자고 합의했을 때 대다수 국민이 이를 반기면서도 한편으로 믿어도 되는 것인가 생각했을 것이다.
민생을 챙기는 데 합심하자며 여야 정책위 의장들이 악수하는 모습 보여 주고 사진 찍는 것 다 좋다 치자. 하지만 협의체 구성이 불발되는 바람에 결국 모든 게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단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남아 있는 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다가 폐기된 법안들의 통계다. 5월29일 이전 지난 4년간 접수된 법안은 2만5857건이었고 국회에서 처리된 안건은 9478건이다. 이 중 법률로 반영된 법안은 9086건에 불과했다. 미처리(계류 포함)돼 폐기된 법안은 모두 1만6379건이다.
폐기된 법안들 중에는 민생과 관련해 화급을 다투는 사안도 상당수 있었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고준위 방사성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위한 ‘AI 기본법’, 반도체 등 투자 세액 공제를 2030년까지 연장하는 ‘K칩스법’,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법관을 증원하는 ‘판사 정원법’, 저출생 극복을 위해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대형 마트 휴무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바꾸는 ‘유통산업 발전법’ 등이 그것이다. 이 중요한 법안들을 여야가 정쟁에 매몰되고 당내 주도권 싸움을 하는 통에 무산시켰다. 이 법안들은 하나같이 한시가 급하게 처리됐어야 할 민생 현안들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 이 모두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고 여의도 권력 잡기에 몰두했다는 비판 또한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인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약속대로 여·야·정 민생상설협의체를 꾸렸다면 살펴봐야 했을 현안들 중 우선되어야 할 것은 뭘까. 무엇보다 먼저 전 회기에 국회가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법안들을 다시 뒤적거리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일명 ‘구하라법’ 등 민생 법안들이다.
여야가 협치로만 간다면 국민은 무조건 환영할 것이다. 민생 앞에선 정치가 변수를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민심이다. 여야가 국회 안에서 정쟁과 민생 현안 처리를 제발 구분해서 싸울 건 싸우고 협치할 것은 하라는 것이 국민의 주문이다. 똥과 오줌도 구별하지 못하고 벽칠하는 치매 걸린 아수라판의 정치는 그만하자. 당파 이기주의로 국론분열에다 민생을 볼모로 잡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여소야대니 누구의 잘못이니를 따지기에 앞서 국회는 전 회기 국회에서 합의 처리한 민생법안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의 경우도 정쟁의 이슈가 돼선 안 될 사안이다.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금투세는 연 5000만 원 초과 금융소득에 대해 최대 25%의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폐지하자” “안 된다”를 놓고 민주당 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야당 일각에서도 주식시장의 투자 확대와 국가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전체 숲을 보지 못하는 금투세 폐지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금투세 면제를 반대하는 측의 논리는 “주식시장이나 금융 투자로 막대한 수익을 얻을 경우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인구 5160만 명 중 주식 투자자 수가 1400만 명을 넘어선 것을 모르는 편협한 시각 아닌가.
초거대부자가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누리는 것을 막자고 5000만 원 초과 이익에 대해 25%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은 시대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태요, 자본시장의 부의 논리를 어떻게든 부정하고픈 좌파적 주장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야 나라 살림이 살아나는 수출 중심의 경제국가에서 정부가 세금과 규제 타파로 지원하는 데에도 재정적 한계가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10억 원하던 아파트가 40억 원으로 껑충 뛰어오른 부동산시장을 마주하면서 사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1400만 명에 달하는 주식 투자자들은 금투세가 시행될 경우 그 기준으로는 우리 주식시장에 추가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글로벌 대외 변수에 민감한 주식시장 같은 금융시장에서 투자금 유입이 한정적이면 장기적으로 글로벌 대외 변수에 허약한 우리 경제 체질 개선과 기업 성장에도 득이 될 게 없다.
국가적으로는 정부와 기업 모두 그 어느 때보다 펀더멘털(성장률·물가상승률·실업률 등 기초 경제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을 튼튼히 다져야 할 때다. 대외적으로 발칸반도와 중동에서 확전일로에 놓인 두 개의 전쟁으로 경제 한파설이 상수로 떠올라 있다. 미국 대선의 향배에 따라서도 국가 전략과 경제계 경영 전술 모두 각종 변수에 카멜레온처럼 대처해야 한다. 유비무환의 협치가 필요한 이유다. 여야는 정쟁이든 협치든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도모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국가재정과 선순환적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 서비스가 요구된다. 여·야·정 상설협의체 구성 합의가 공염불의 정치쇼로 끝나선 안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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