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를 넘긴 노(老) 경영인이 평생 일군 사재를 인공지능(AI)이라는 미래 기술에 아낌없이 쏟아붓는 ‘아름다운 집념’이 결실을 보았다. 동원그룹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이 지난 16일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 사재를 추가로 기탁하며, 오직 개인 자산으로만 이뤄진 누적 사재 기부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선을 넘어 국가의 미래 생존 전략을 제시하는 기업인의 준엄한 가르침으로 평가받는다.
“사람이 유일한 자원”… 사재 603억에 담긴 인재 육성 의지
이번 기부의 핵심은 기업의 공적 자금이 아닌 김 명예회장 ‘개인의 사재’로 전액 집행되었다는 점이다. 김 명예회장은 2020년 500억 원을 쾌척하며 ‘김재철AI대학원’ 설립의 초석을 닦았다. 이후 설계와 건립 과정에서 비용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주저 없이 사재를 추가 출연했다. 2025년 1차 추가 기부(44억 원)에 이어 이번 59억 원까지, 총 103억 원의 추가 자금을 직접 마련했다.
김 명예회장이 이토록 사재 기부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원이 척박한 한국에서 유일한 경쟁력은 ‘사람’뿐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는 평소 “청년들이 인프라 부족으로 학문 탐구의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기부금은 2028년 완공될 5500평 규모의 AI 연구 거점 건립에 전액 투입되어, 매년 1000명의 인재가 상주하는 ‘데이터 강국’의 전초기지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먹거리 보국에서 지능 보국으로… 김재철의 ‘사업보국’
이러한 과감한 결단은 그의 뿌리인 식품사업 철학과 맞닿아 있다. 1969년 원양어선 한 척으로 동원산업을 일군 그는 배고픈 시절 국민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겠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기업의 존재 이유로 삼았다.
그의 경영 철학을 상징하는 단어는 ‘의식동원(醫食同源)’이다. 의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말이다. “가족에게 권할 수 없는 제품은 절대 만들지 말라”는 원칙은 지금도 유명하다. 과거 젓갈 사업 검토 중 “짠 음식을 우리 자식에게 권할 수 있겠느냐”며 사업권을 포기했던 일화는 그의 정직한 성품을 잘 보여준다. 식품 사업가로서 가졌던 이 진심은 이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키우는 ‘교육 기부’의 진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푸른 바다’ 너머 ‘데이터 바다’로… 883억의 마중물
원양어선 선장 출신인 김 명예회장은 21세기의 영토는 디지털이라고 단언한다. “젊은 시절엔 푸른 바다에서 미래를 찾았지만, 이제는 데이터의 바다에 국가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그의 통찰은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로 나타났다.
그가 사재를 털어 기탁한 KAIST(603억 원)를 비롯해, 그룹 차원에서 지원한 한양대 AI솔루션센터(30억 원), 서울대 AI클래스(250억 원) 등 인공지능 인재 양성을 위해서만 총 883억 원의 통 큰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한국이 AI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마중물’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국가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헌신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제시한다.
단순 자선 넘어 ‘미래 투자’로… 한국 기부 문화의 질적 도약
김 명예회장의 행보는 한국 기업인의 기부 문화의 진화를 보여준다. 1970년대 재단 설립을 통한 사회복지 지원과 2000년대 대기업 중심의 대규모 성금을 넘어, 이제는 기업인의 철학과 국가 미래 전략이 만나는 지점에 집중하는 ‘테마형 기부’의 전형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의 기부가 이윤의 사후 분배였다면, 김 명예회장의 기부는 미래를 위한 ‘선제적 투자’에 가깝다. 그는 “대한민국이 AI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에 작은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며 기부가 미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파트너십임을 강조했다.
김재철 명예회장의 603억 원 기부는 단순한 금액의 기록이 아니다. 한 평생 바다를 누빈 경영인이 다음 세대를 위해 올리는 ‘희망의 닻’이다. 평생 정직하게 일궈온 개인의 유산이 국가의 미래 지능이 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소망대로 판교와 관악의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젊은 인재들의 열정은 대한민국을 AI 강국으로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다. 오늘의 603억 원은 과거 50년의 경제 성장을 요약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50년을 향한 가장 확실한 희망이 닻이 될 전망이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