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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수억 원이라 들었을 때 그 희망은 곧바로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희귀질환 환자 가족이 전한 이 말은 지금 한국 의료 현실의 민낯을 보여준다. 치료 가능성이 있음에도 환자들은 고가의 장벽 앞에서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절망이 단순히 제약사의 탐욕 때문만이 아니라 국회의 선택적 특별법 정치 때문이라는 점이다.
현재 국회는 특정 질환에 대해서만 특별법을 발의하고 지원책을 마련한다. 환자 단체의 활동이 활발하거나 여론의 주목을 받는 질환은 법안에 이름이 오른다. 그러나 이름조차 생소한 수많은 질환은 제도 밖에서 철저히 외면당한다.
생명을 살릴 권리가 대중의 주목 여부에 따라 갈리는 현실은 국가의 직무 유기이자 사회적 불평등의 극치다. 환자들은 “우리는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치료받을 권리를 빼앗겼다”고 울부짖는다.
특별법은 단기적으로 일부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수의 환자에게는 새로운 절망을 안긴다. 같은 희귀질환 환자임에도 운이 좋아 정치권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기회를 얻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방치된다. 이는 환자 사이의 불필요한 경쟁과 분열만 낳는다. 생명권을 정치적 이벤트에 맡기는 제도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이제는 보여주기식 특별법이 아니라 모든 환자를 포괄하는 보편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권 기본법 제정을 검토해야 한다. 질환별로 차등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희귀질환 환자가 동일한 기준에서 치료 기회를 보장받도록 하는 틀이 필요하다.
가격 문제 역시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의 독점적 가격 책정에 더 이상 끌려다닐 수 없다. 이미 해외에서는 여러 나라가 연대해 치료제를 공동 구매하거나 성과 기반 지불제를 도입해 치료 효과가 입증된 경우에만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위험분담제를 확대해 환자와 국가의 재정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모델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더불어 환자 등록과 데이터 관리 체계도 정비되어야 한다. 환자 규모, 치료 효과,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정책 결정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지금처럼 환자 단체의 목소리에 따라 입법이 좌우되는 방식은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오늘은 버텼지만 내일은 장담할 수 없다”는 환자 가족들의 절규는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될 경고의 목소리다. 환자에게 치료 기회란 단순한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권의 보장 그 자체를 의미한다. 국회와 정부가 여전히 특별법 정치에 머문다면 그 공백은 결국 수많은 환자의 죽음으로 채워질 것이다.
국회는 더 이상 특별한 환자를 가려내는 방식으로 정치적 성과를 쌓으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환자를 위한 보편적 권리 보장이다. 생명을 살릴 기회가 질환의 이름이나 정치적 이해득실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 희귀질환 환자들의 절규는 단 하나의 요구로 수렴된다. 운이 아니라 제도로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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