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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에 이르는 대한민국 근대 기상관측의 역사가 새로 쓰였다. 8월 1일 강원 홍천의 수은주는 41.0도까지 치솟으며 우리나라 역대 일 최고기온을 찍었다. 서울도 39.6도를 찍으며 지역 최고 기록을 24년 만에 갈아 치웠다. 살인적인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온열 질환 감시체계’를 시작한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3일까지 2967명의 온열 환자(사망자 35명)가 발생했다.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올 여름 피서지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 이색적인 풍경도 나타나고 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2030세대들은 개성에 맞는 여름 휴가계획을 만들어 짧은 기간이지만 진정한 휴식을 찾아 나서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젊은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스카이데일리가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로 ‘2030 新바캉스트렌드’를 선정하고 2030 젊은 세대들의 여름 휴가 세태를 놀이문화, 소비, 이색 피서치 등으로 나눠 세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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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임현범 차장|유은주·남승진·나광국 기자] 한여름 밤 국내 유명 피서지는 더위를 피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청춘남녀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대한민국 제1의 관광도시 부산 해변 역시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광안리 수변공원은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가장 핫한 장소로 꼽힌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수변공원은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광안리해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초고층빌딩과 광안대교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데다 횟집거리와 인접해 있어 저렴한 가격에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는 게 수변공원이 가진 장점으로 지목된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헌팅’이라 불리는 즉석만남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여름철 피서지에서 청춘남녀들의 즉석만남 풍속은 어느새 놀이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스카이데일리는 20대 마지막 여름을 앞두고 그들의 헌팅 문화에 동참해보기로 했다.
해 지기 시작하면 2030세대 구름발길…삼삼오오 모여 낯설고도 신선한 술판
부산 취재가 결정된 직후부터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들뜬 나날을 보냈다. 마침내 부산으로 떠나는 당일이 되자 심장의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헌팅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했다. 시나리오는 낯선 여성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서울을 떠난 지 4시간 30분이 지나 부산역에 도착했다. 오후 6시였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광안리로 향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광안리 수변공원 근처 식당을 찾았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수변공원에는 가족단위 피서객, 젊은연인 등이 주를 이뤘다. 헌팅의 성지라는 명성과는 사뭇 동떨어진 풍경이었다.
인근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여름밤 부산에서 가장 뜨겁다는 광안리 수변공원의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수변공원으로 다가갈수록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통해 한껏 고양된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어둠이 짙게 깔린 수변공원은 불과 2시간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강공원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푸드트럭이 즐비했고 맞은편 거리에서는 회와 파전, 닭강정 등을 파는 노점상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젊은 남녀들은 주로 이곳에서 안주거리를 사고 편의점에서 술을 사 양손 가득 수변공원으로 향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헌팅을 위해선 일단 ‘무기(?)’ 필요하다는 생각에 안주거리와 술을 샀다. 어깨에는 돗자리를 둘러멨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수변공원으로 들어섰다.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지만 그 틈을 비집고 한 자리를 차지했다. 수없이 많은 청춘남녀의 모습을 보자 마치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가벼운 떨림이 느껴졌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나름의 탐색전이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11시 방향에 두 명의 여성이 보였다. 하얀색 미니원피스를 차려입은 여성과 청바지에 깔끔한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여성이 있었다. 그 때였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여성 일행에 접근해 말을 걸었다. 첫 마디는 간단했다. “두 분이 오셨어요” 였다.
그들의 대화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남성들은 “저희가 지금 회랑 술을 다 준비했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놀아요”라고 말을 건냈다. 그 순간 2명의 여성 중 1명이 입을 열었다. 청바지를 입은 여성이었다. “저희는 오늘 그냥 대화하려고 왔거든요. 죄송하지만 다른 분들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특유의 부산사투리를 사용하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두 남성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눈치였다. 한 남성이 하얀색 미니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팔목을 잡고 “그럼 번호라도 알려주세요. 이따가 심심하면 연락주세요”라며 회심의 멘트를 날렸다.
돌아오는 답변은 차가웠다. 그녀는 기분이 나빴는지 팔을 자신의 몸 쪽으로 당기며 “왜 이러세요. 우리끼리 논다고 말했잖아요”라며 거절했다. 2명의 여성은 주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듯 보였다. 이후에도 몇 차례 남성들의 접근이 이어졌지만 번번히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녀들의 차가운 모습에 직접 헌팅을 체험해 보겠다는 굳은 의지가 잠시 흔들렸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부여잡고 마침내 용기를 내봤다. 콧대 높은 그녀들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 마다 가슴이 뛰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이서 오셨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멘트가 문제였을까. 그녀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사실 떨렸다. 너무 오랜만에 헌팅을 시도한 게 가장 컸다.
“죄송한데 저희는 이제 곧 돌아갈 거예요”라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막상 거절을 당하고 돌아오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름 ‘취재를 위해서 접근한 것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막상 거절을 당하니 상당히 부끄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분위기는 한 낯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한껏 고조돼 있었다.
사들고 온 술을 마시며 신세를 한탄하고 있던 그 때, 매몰차게 합석을 거절했던 그 여성들에게 또 다른 남성들이 다가갔다. 그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내 탄식이 흘러 나왔다. 그 여성들은 해당 남성들과 합석 후 재미있게 놀기 시작했다. 내심 어이가 없었다.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헌팅’…쾌락 보단 대화가 필요한 청춘들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술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 비어있던 옆자리에 누군가 돗자리를 펼치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2명의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웃었다. 누가 봐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외모를 가진 여성들이었다.
한 여성은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다른 여성은 편안한 트레이닝 복장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역시나 많은 남성들이 그녀들에게 접근했다. 그럴 때 마다 그녀들은 번번이 “죄송합니다. 저희 그냥 쉬러왔어요”라는 대답으로 거절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좀 전의 실패는 생각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험이 있던 탓에 처음 보다 더욱 용기가 났다. “쉬러왔다”는 여성들의 대답 또한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더욱 자신감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바로 옆에 있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첫 멘트를 던지고 나서 곧장 후회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구식 멘트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 까닭이다. 그런데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녀들은 “저희 대전에서 왔어요. 이번에 친구랑 휴가를 맞춰서 부산에 처음 왔어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예상치 못한 질문까지 던졌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진행됐다. 드디어 ‘합석’이라는 걸 성사시켰다. 만족감과 성취감, 심지어 자신감까지 생겨났다. 이곳 남성들이 왜 ‘헌팅’에 목을 매는 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대학교 졸업반과 사회초년생이라고 밝힌 그녀들은 모처럼 시간을 맞춰 친구끼리 놀러왔다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트레이닝 복장을 한 안이슬(24·가명·여) 씨와 앞서 눈이 마주쳤던 하얀 티셔츠 차림의 고지현(24·가명·여)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많은 이야기와 술잔도 주고받으며 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보통 요즘 대학생들은 방학 때 뭐해요. 스펙을 쌓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요”라는 질문이 끝나자 그녀들의 얼굴에서는 전과 다르게 근심어린 표정이 드러났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이슬 씨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여기서 이렇게 놀고 있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저는 이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요. 친구들 중에는 벌써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도 있어서 심리적인 압박이 심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그렇고 저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스펙을 쌓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 가족들과 대화가 많이 줄었어요. 사실 일부러 대화를 피한적도 있구요”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옆에 있던 지현 씨도 공감한다는 표정이었다. 일찍이 취업에 성공한 지현 씨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이제 직장인이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지셨어요”라는 질문에 지현 씨는 친구의 눈치를 살피며 “네 사실 취준생 시절보단 마음이 편해요. 하지만 아직 사회초년생이라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사회생활 때문에 아직 힘든 부분이 많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직업은 역시 숨기기 어려웠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점차 취재 분위기로 전환됐다.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두 분 모두 스트레스가 있어서 머리도 식힐 겸 부산에 오신 거네요. 혹시 헌팅 할 생각은 있으셨어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녀들은 웃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찔했다. “아니, 혹시 기자세요” 물었다. 뜨끔했다.
그녀들은 말을 이어갔다. 지현 씨는 “사실 이런 곳에서 헌팅을 하고 하룻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웃고 떠들고 즐기고 싶어 스트레스 풀 생각으로 헌팅을 하죠”라고 말했다.
이슬 씨 역시 “사실 이건 남자들도 똑같을 것 같아요. 물론 그 중에는 정말 쾌락을 위해 헌팅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냥 또래들이랑 오랜만에 웃고 떠들고 싶어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 솔직히 다 힘들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또래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술판을 벌이고 술에 취해 쾌락을 쫒는 것 아니냐는 생각은 오래돼도 한참 오래된 생각이었다. 막상 그들의 세계로 들어와 보니 20대는 지쳤고 답답했다. 그저 예전처럼 또래와 웃고 떠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2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저희는 숙소로 돌아갈께요. 너무 늦은 시간이고 내일 아침 일찍 대전으로 돌아가야 돼요. 오늘 재미있었어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한 뒤 그녀들은 광안리 수변공원을 떠났다.
숙소로 발길을 돌리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요즘 청년들에게 나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하는 대화가 얼마나 간절한지 생각하게 됐다. 얼마나 외로울까. 그것은 ‘헌팅’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성욕, 문란, 쾌락 등의 단어만으로 단정 짓기엔 너무나 복잡 미묘했다. 문뜩 취업을 앞두고 저들과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었던 시절들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달을 보며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20대 청춘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나광국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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