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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의 문학푸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에 쏟아지는 분노

악을 저지르고도 죄책감 못 느끼는 성착취범 엄단해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3-29 18:54:53

▲ 이정일 인문학 칼럼니스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중에 성범죄자들이 있다. 이번 주 내내 박사방, n번방, 조주빈, 갓갓, 켈리 같은 이름들이 들려왔다. 이들이 행한 성착취 범행을 알게 된 사람들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으로 달려가서 이들의 신상공개를 강력하게 청원했다. 500만명이 넘는 동의는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를 보여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도 힘든데 아이를 키우기는 더 힘든 세상이 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온 나라가 힘들어 하는데 다른 한편에선 나이 어린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여 성착취 동영상을 만들고 그걸 희희낙락하며 보는 대화방 공범들이 있었다. 26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그걸 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전혀 갖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도대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 생각하면 벌써 눈앞이 아찔하다.
 
20세기에 발견된 몇 가지 개념들이 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의 내면 안에 무의식이란 세계가 있고 그 안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상처와 아픔, 트라우마와 괴물 같은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던 괴물이 슬그머니 빠져나가 사이버 공간 속에 숨은 것 같다. 조주빈은 익명성 뒤에 숨어 가상화폐와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가 갖는 순기능을 역 이용하여 돈벌이 욕망을 채워줄 먹잇감을 노렸다.
 
마사 누스바움이란 학자는 감정도 분명히 사고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범죄가 악한 것은 약자의 감정을 파괴하고 털어버리기 쉽지 않은 수치심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성착취범들은 자신이 악을 저지르면서도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연민이 없는 사람은 그 스스로 인간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더 악해지기 위해서 더 나쁜 악을 학습한다.
 
우리 모두는 페이스북, 인터넷 댓글, 후기, 인스타그램 등 개인의 정보가 노출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산다. 내가 뭘 좋아하고 정치적 성향은 어떠한지, 요즘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부모는 몰라도 페이스북 친구들은 안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를 골탕 먹이거나 개인정보를 알아내는 게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청와대 청원을 보면 디지털 성범죄에 국회나 법원이 둔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비슷한 일은 아주 오래전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
 
니콜라스 터프스트라가 쓴 『르네상스의 뒷골목을 가다』를 읽으면 르네상스라는 화려한 커튼 뒤에 감춰진 그늘진 시대를 보게 된다. 박사방 피해자처럼 155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하층 계급 소녀들이 몰려들었다. 대부분 부모를 잃은 고아거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소녀들이었다. 이들은 ‘피에타의 집’(‘연민의 집’이라는 뜻)이 생기자 안도했을 것이다.
 
헌데 그곳은 실제론 저 임금을 주고 소녀들을 부려먹는 견직물 제조공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녀들은 일반 노동자처럼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고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으므로 폐결핵과 피부병이 만연했다.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소녀들은 밥조차 먹지 못했기에 오래 사는 아이가 없었다. 게다가 당시 의사들이 처녀와 성관계를 하면 성병이 치유된다고 잘못된 발언을 해서 대부분의 소녀가 강간을 당했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일이 지금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미에 소녀병, 소년병이 바로 이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네팔에선 시골소녀들이 부모의 무지 속에 인도로 팔려가 다수가 사창가에서 죽음을 맞는다. 시대가 개화되었다고 하지만 일부의 의식은 여전히 중세를 사는 것 같다. 박사방 사건이 세상에 밝혀졌는데도 비슷한 방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 법이 강화되어 이전보다는 더 큰 처벌을 받게 되겠지만, 이번엔 뭔가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이번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아마 국민이 그냥 지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음란물 생산자만을 처벌하였지만 소비자 역시 책임의 무게는 마찬가지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자연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역겨운 음란물로 계속 돌아가는 것은 그 역겨움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를 끊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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