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들이 정기 인사를 통해 3세 경영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경기 둔화, 글로벌 경쟁 심화, 기존 사업 모델의 성장 한계, 신사업 전환 압력 등이 겹치면서 ‘세대 교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책임 경영과 안전 투자보다 지배구조 정비와 승계 구도 확립에 더 힘을 싣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공존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SPC그룹은 허영인 회장의 장남 허진수가 부회장으로, 차남 허희수는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허 부회장은 파리바게뜨 글로벌 사업을 맡아왔으나, 고환율·원가 부담 속에서 수익성 회복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 사장은 배스킨라빈스·던킨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왔지만 시장 점유율 정체와 브랜드 경쟁력 약화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특히 SPC는 최근 몇 년간 계열사 노동자 사망 사고, 산업안전 관리 부실 논란, 제빵기사 직접고용 갈등, 사회적 불매 움직임 등 중대재해와 노동 이슈가 이어져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바 있다.
여기에 과거 허 사장의 마약 파문까지 겹치며 ‘오너 리스크’ 논란도 지속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3세 중심 경영 체제가 강화된 것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는 “실적 개선과 안전경영 체계 확립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리더십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ESG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승계 작업은 기업가치와 투자자 신뢰를 더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대부분은 순조로운 경영승계 절차를 전개하면서 그룹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의 영향력이 확대됐다. 사장 승진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로 취임하면서 처음으로 국내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맡는다. 동시에 지주 내 신설되는 전략 컨트롤 조직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그룹 포트폴리오 전환과 ‘속도 경영’ 기조를 주도하게 된다. 롯데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의 핵심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순차입금 부담, 유통부문 부진, 건설 리스크 등 그룹을 둘러싼 경영 변수 속에서 차세대 리더십을 성장축에 직접 배치했다는 의미다.
삼양식품도 오너 3세 중심의 경영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전병우 운영총괄책임자(COO)는 이번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1994년생인 전 전무는 불닭브랜드 글로벌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중국 자싱공장 설립을 추진하며 해외사업 확장을 주도해온 실적을 인정받았다. 글로벌 라면 시장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삼양은 전 전무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확대와 신사업 추진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CJ그룹에서는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가 지주 내 미래기획그룹장을 맡으며 그룹 성장 전략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는 식품 해외사업 확대와 신수종 발굴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 성장 로드맵을 총괄하게 된다.
오리온과 농심도 차세대 경영 수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장남 담서원 전무는 그룹 경영관리 핵심 조직을 맡고 있으며 바이오 신사업 교두보인 리가켐바이오 사내이사도 겸직한다. 농심의 신상열 전무는 건강기능식품, 스마트팜, 펫푸드 등 ‘탈라면’ 전략을 주도하며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을 책임지고 있다.
HD현대는 오너가 3세를 전면에 세웠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그룹 회장에 올랐다. 기존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조선업 슈퍼사이클, 글로벌 에너지 전환, 미·중 패권 경쟁 등 변수가 겹치는 가운데 정 회장은 조선·해양 중심 미래 전략과 신사업 플랫폼 구축을 총괄하게 된다. 그룹 내 건설기계와 해양설루션 부문 실적 개선도 정 회장 체제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2·3세 전면 배치는 단순한 승계가 아니라 돌파구 모색 과정”이라며 “궁극적으로 실적과 시장 신뢰로 증명할 수 있느냐가 정당성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SPC 사례처럼 오너 리스크 관리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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