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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가 세계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미국 영화와 눈에 띠게 다른 점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적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예찬하고 기리는 데 인색한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정치인이나 기업가를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있더라도 공적을 기리기보다는 조롱하거나 비난할 뿐이다.
대중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성장기 일화를 다룬 전기영화 ‘파벨만스’(2023)가 공개됐다. 영화가 얼마만큼 완성도를 갖추었는가를 가리기보다는 특정인물을 소재로 만든 영화 중 하나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테니스 스타 윌리엄스 자매를 키운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다룬 ’킹 리차드‘(2022)가 나왔고, 록그룹 퀸의 리드 보컬을 맡았던 프레디 머큐리의 전성기를 그린 ‘보헤미안 랩소디’(2018), 로큰롤 음악 유행을 일으킨 엘비스 프레슬리의 성공 과정을 그린 ‘엘비스’(2022) 등 유명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연이어 나왔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10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이 밖에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자동차의 성능과 디자인을 혁신한 프레스톤 터커의 이야기를 그린 ‘터커’(1988), 흑백 인종차별이 있던 시절에 흑인 인권운동가로 활동한 말콤 X의 활동을 다룬 ‘말콤 X’(1993), 생활고에 시달리던 주부가 환경운동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 ‘에린 브로코비치’(2000), 온라인 사업의 개척자로 유명한 조이 망가노의 성장 과정을 다룬 ’조이’(2013), 미국 네이비실 부대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일생을 그린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 정보기술(IT) 산업의 거물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다룬 ‘잡스’(2013), 맥도날드 햄버거의 창업자 레이 크록의 분투기 ‘파운더’(2016), 쇼 비즈니스의 개척자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일생을 그린 ‘위대한 쇼맨’(2017) 등 그 수를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고 분야도 다양하다.
전기 영화라고 칭송과 예찬으로 채워진 것만도 아니다.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을 직접 다룬 ‘닉슨’(1996),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표현의 자유’ 재판을 그린 ‘래리 플린트’(1996), 포르노 영화 스타로 유명한 린다 러브레이스를 모델로 한 ‘러브레이스’(2013) 등은 논란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또 18세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전성기 활동을 그린 ‘아마데우스’(1985)는 모차르트 중심의 전개라기보다 그의 라이벌 살리에리의 시선으로 천재를 바라본다.
팀 버튼 감독은 ‘에드 우드’(1994)를 통해 엽기적인 B급 감독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를 그린다. 이 영화는 전기 영화의 면모를 띠고 있지만 팀 버튼 감독이 에드 우드에게 바치는 헌정 작품같기도 하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휴고’(2012)를 통해 영화의 개척자 조르주 멜리에스를 찬양했다.
영화 역사에서 전기영화의 전통은 깊다. 프랑스 영화감독 아벨 강스는 ‘나폴레옹’(1927)을 만들었고, 러시아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알렉산더 네프스키’(1938), ‘폭군 이반’(1945) 등을 통해 공산화되기 이전 러시아의 역사적 인물을 영화화했다. 뒤를 이어 미국영화계에서도 수많은 작품이 간단없이 나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면 영화의 소재가 됐다.
그런데 한국 영화 중 개인의 역사를 조명한 영화는 드물다. 시대를 넘어 여러 번 만들어진 ‘유관순’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1959), 시인 윤동주의 청년 시절을 다룬 ‘동주’(2016), 재판으로 항일투쟁을 벌인 기인 박열의 아야기를 다룬 ‘박열’(2017),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을 감행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 ‘영웅’(2023) 정도가 있을 뿐이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다 분신한 전태일의 일화를 그린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은 전기영화라기보다는 노동운동을 과도하게 미화한 운동권 영화에 가깝고, ‘그때 그 사람들’(2005)은 박정희 대통령을 조롱하고 모멸하기 위한 반(反) 전기영화다. ‘남산의 부장들’ 역시 박 대통령을 권력욕에 사로잡힌 비열한 인간처럼 조롱한 픽션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유독 유관순 열사 이야기는 여러 번 만들어졌다. 윤봉춘 감독이 1948년에 처음 만든 이후 1959년과 1966년에 각각 다시 만들어졌다. 1974년에 김기덕 감독이 다시 만들었고 2019년에 ‘항거:유관순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또 만들어지는 등 같은 인물을 다룬 영화로 다섯 번 이상 나왔다.
우리 사회라고 화제가 되거나 기여한 공로가 탁월한 인물이 없을까? 그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기리는 문화가 인색한 것은 아닌가? 우리 영화에도 사람 이야기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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