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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윤수진 기자] ⓒ스카이데일리 |
정부와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추진하자 식품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소액주주 보호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주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해 온 기업들에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사주 비율이 높은 식품기업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25일 스카이데일리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매출 1000억 원 이상(2024년 기준) 식품기업의 자사주 보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샘표식품(29.92%)이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이어 오뚜기(14.18%), 하림지주(13.16%), 매일홀딩스(9.96%), 해태제과식품(8.93%) 순으로 집계됐다. 상장사 평균 자사주 비율을 웃도는 수치다.
이들 기업은 전통적으로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가 강해 자사주가 총수 일가의 지분율 보완과 경영권 안정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자사주 자체는 의결권이 없지만, 우호 세력에 매각될 경우 의결권이 되살아나 외부 세력의 경영권 위협에 대응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식품기업들은 자사주 소각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샘표 측은 “상법 개정 방향을 주의 깊게 살피며 관련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오뚜기 관계자도 “자사주 소각과 관련한 구체적 실행 계획은 아직 없다”며 “주가 부양이나 주주환원 정책은 내부적으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의 최후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도 적지 않다. 2003년 영국계 펀드 소버린의 공격을 받은 SK는 보유 자사주 10.41% 중 약 4.6%를 하나은행·신한은행에 매각해 경영권을 지켜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도 삼성물산은 보유 자사주 5.76%를 백기사 KCC에 넘겨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에 대응했다. 법원은 두 경우 모두 자사주 매각을 적법하다고 판결했고, 이후 많은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소각 의무화가 현실화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사주를 매입한 즉시 소각해야 하므로, 더 이상 우호 세력에 매각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전략은 불가능하다. 샘표식품처럼 자사주 비중이 30%에 달하는 기업은 소각 의무화 시 지배구조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소액주주들은 소각을 통해 주당순이익(EPS)·주당순자산(BPS) 상승으로 주가가 오를 것을 기대하지만, 재계는 “정상적 경영권 방어 수단을 박탈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가 거세지며 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자본과 사모펀드의 타깃이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3년 한 해에만 66개 기업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는 2020년 대비 6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자사주 매각이 불가능해질 경우 이 같은 공격이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다섯 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자사주 매입 유인 축소로 인한 주가 부양 효과 약화 △주요 선진국 대비 경쟁력 저하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사주 활용 제약 △합병 시 자본금 감소에 따른 사업 부담 △이미 약화된 경영권 방어 수단의 추가 상실 등이다. 실제로 미국·영국·일본 등은 자사주 보유와 처분을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법으로 소각을 강제하는 사례는 드물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자본시장 투명성 강화라는 취지를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업들의 경영권 불안을 키울 수 있다”면서 “특히 자사주 비율이 높은 식품기업들의 경우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돼,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 포이즌필 같은 보완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도가 오히려 기업 생존 전략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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