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충북 광공업 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28.4% 증가했다. 전국 평균 2.6%와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충북도는 반도체·전자부품 생산이 85.8% 늘었고 메모리 반도체 수출 증가액은 30억2600만달러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충북 소매판매는 4.4% 증가해 전국 평균 3.3%를 웃돌았다. 반도체 생산 증가가 수출에 그치지 않고 지역 소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충북 청주는 SK하이닉스의 AI 메모리 생산거점이다. 기존 M11·M12·M15에 이어 M15X까지 생산라인이 확장되면서 HBM과 차세대 D램 수요에 대응하는 전초기지로 다시 부상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돌연사’를 언급하는 위기의식 속에서 진행해 온 3년간의 체질개선이 지역 생산과 수출 지표로 먼저 드러난 현장이다.
계열사 219개서 151개로…리밸런싱의 숫자
SK의 리밸런싱은 계열사 숫자를 줄이는 방어적 구조조정이 아닌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방만하게 넓어진 사업 구조에서 자본을 회수하고 HBM·AI 데이터센터·전력 인프라로 재 배치하는 체계적인 준비 작업이었다.
SK그룹 국내 계열회사는 2023년 219개에서 올해 5월 공시 기준 151개로 줄었다. 정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68개가 통폐합되거나 계열에서 제외됐다. 특히 2024년 198개에서 1년사이 47개 줄었다. 5개가 새로 편입됐지만 52개가 계열에서 제외된 결과다. 제외 사유는 지분매각 21개, 동반제외 20개, 흡수합병 5개 등이었다.
반면 2023년 334조3597억 원이던 공정자산은 2024년 362조9619억 원, 2025년 421조9786억 원으로 늘었다. 계열사는 줄었지만 자산은 2년 사이 87조6189억원 증가했다. 중복과 비효율을 줄이면서 미래의 성장 축인 AI 반도체와 인프라에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을 늘렸다.
재무 체력 회복과 자산 효율화
재무지표도 방향을 같이했다. SK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36조7513억원, 영업이익 3조673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9%, 영업이익은 760% 증가했다.
순차입금은 63조231억원에서 49조5543억원으로 약 21% 감소했다. 부채비율도 172.8%에서 135.7%로 낮아졌다. 자산 효율화와 반도체 호황이 동시에 반영된 수치다.
특히 SK는 비핵심 사업 및 중복 자산을 과감히 매각하여 대규모 현금을 유입시켰고, 이를 차입금 상환에 우선 투입했다. 대표적으로 SK스페셜티 지분 85%를 한앤컴퍼니에 2조6308억원에 매각했고 SK바이오팜 지분 14%도 1조2500억원 규모로 처분했다.
단 두 건의 대형 딜로만 약 3조9000억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는 등 2024년 이후 약 13조원 규모의 자산 효율화를 진행했다.
에너지 통합, AI 팩토리의 전력 축
또한 SK이노베이션과 SK E&S 통합을 통해 반도체 슈퍼사이클 준비했다. 정유·배터리 중심의 SK이노베이션과 민간 LNG 1위 SK E&S를 묶으면서 석유, LNG, 전력, ESS를 한 축으로 세웠다.
반도체에 가려져 있지만 AI 데이터센터 시대의 또 다른 병목지점은 전력이다. SK하이닉스가 HBM을 공급하고 SK텔레콤이 AI 클라우드를 운영한다면 SK이노베이션 계열은 LNG·전력·ESS 기반을 제공하는 구조다.
이 조합은 SK가 AI 팩토리를 단순 데이터센터 사업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메모리와 GPU, 클라우드와 전력, 냉각과 운영기술까지 계열화된 AI 팩토리의 완성이라는 밑그림을 완성했다.
젠슨 황 회동, HBM 공급 넘어 AI 팩토리 동맹
8일 최태원 회장과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CEO의 회동은 SK 리밸런싱의 결과가 AI 팩토리 협력으로 구체화된 장면이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더 공급하는 거래를 넘어 SK하이닉스의 메모리와 SK텔레콤의 AI 클라우드가 엔비디아 플랫폼 안에서 협업하는 구조가 제시됐다. 엔비디아는 GPU와 AI 팩토리 아키텍처를 제공하고, SK하이닉스는 HBM과 차세대 메모리를 맡는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 플랫폼 기반의 AI 클라우드를 국내에 구축·운영하는 역할이다.
SK하이닉스, 공급사에서 로드맵 파트너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다년 기술 파트너십을 맺고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메모리 개발과 공급 확대에 나선다.
HBM에 더해 엔비디아의 AI 슈퍼컴퓨터와 CPU, PC, 로보틱스 플랫폼 확장에 맞춰 차세대 메모리 개발과 공급이 함께 논의됐다. 베라 루빈(Vera Rubin) AI 슈퍼컴퓨터와 차세대 CPU, RTX 기반 PC, 젯슨 토르(Jetson Thor) 로보틱스 플랫폼까지 협력 범주에 포함됐다.
이는 SK하이닉스의 위치가 엔비디아의 핵심 메모리 공급사에서 AI 인프라 로드맵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 파트너로 격상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젠슨 황은 SK하이닉스를 엔비디아의 최대 메모리 파트너로 평가했다. 앞으로도 최대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고, 엔비디아가 이미 SK하이닉스로부터 매년 수십억달러 규모로 구매하고 있으며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 통신망에서 AI 팩토리 운영자로
SK텔레콤의 위치도 통신망 사업자에서 AI 팩토리 운영자로 확장한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 DSX 플랫폼을 기반으로 국내에 기가와트급 AI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2027년 첫 AI 데이터센터를 가동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DSX는 GPU와 네트워크, 스토리지, 운영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설계를 하나로 묶는 AI 팩토리 아키텍처다.
즉 SK텔레콤의 AI 데이터센터는 SK하이닉스의 메모리와 엔비디아 GPU, SK텔레콤의 네트워크·운영 역량이 결합된 AI 생산시설이다.
엔비디아 협력은 데이터센터 밖 제조현장까지 확장된다.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은 엔비디아 옴니버스(Omniverse)를 활용해 반도체 팹의 디지털 트윈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복잡한 장비와 공정, 물류 동선을 가상공간에 구현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최태원식 AI 팩토리 밸류체인으로 재편
SK하이닉스가 HBM과 차세대 메모리를 공급하고, SK텔레콤이 AI 클라우드를 구축하며, SK이노베이션 계열이 LNG·전력·ESS 기반에 더해 SK실트론의 웨이퍼와 SK에코플랜트의 반도체 소재·인프라 재편이 연결된다.
SK실트론 매각 재검토설도 이 흐름 위에 있다. SK는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보유 지분 70.6% 매각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최종 서명 직전 일정이 미뤄졌다. 웨이퍼는 반도체 제조의 기초 소재로 SK하이닉스가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상황에서는 다시 계산될 수밖에 없는 자산이다.
SK에코플랜트의 변화도 같은 방향이다. 기존 건설 중심 회사였던 SK에코플랜트는 에센코어와 SK에어플러스에 이어 SK트리켐, SK레조낙,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 등을 품으며 반도체 소재와 AI 인프라 회사로 이동 중이다.
리밸런싱의 종착지, AI 인프라 기업
68개 계열사를 걷어내고 자산을 효율화한 결과, SK는 반도체 공급자를 넘어 AI 팩토리 인프라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HBM은 엔비디아의 AI 플랫폼으로 들어가고, SK텔레콤의 AI 클라우드는 그 플랫폼을 국내에서 운영하는 기반이 된다.
최태원식 체질개선의 나비효과는 이제 SK하이닉스의 HBM에서 SK텔레콤의 AI 클라우드, SK이노베이션의 전력 인프라로 번지고 있다. 리밸런싱으로 비운 자리에 AI 팩토리의 밸류체인이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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